“양지보다 음지, 앞 거래보다 뒷거래, 딱 질색인 거 정정당당.” SBS 드라마 의 민주화는 매 장면 손짓, 발짓 과장된 제스처까지 섞어가며 목청을 한껏 높인다. 게다가 하는 말마다 백치미와 민폐가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그 모습,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기를 쓰고 음모를 꾸미지만 매번 신미래(김선아)에게 당하는 모습이 오히려 귀엽다. 추상미라는 배우에게 귀엽다는 말을 할 줄이야. 추상미는 한순간도 만만한 여자였던 적이 없다. 따박따박 ...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보통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는지를 물어본다. 하지만 “잡지, 신문, 인터넷에 음악, 영화, 연애 칼럼을 쓰고 있고, 블로그 ‘3M흥업’을 통해 세상과 격렬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동시에 MBC ,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의 시즌 2의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김태훈의 정체를 그런 방식으로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
정재영은 다양한 필모그래피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가진 배우다. 근작들만 꼽아보더라도 무표정한 원칙주의자인 의 정도만, 의리 있는 척하지만 부하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의 깡패 이원술, 뛰어난 검술을 숨기고 살아가는 부보상단 행수인 의 설주를 거쳐 현재의 에 이르렀다. 이런 다양한 역할 안에서 정재영만이 보여주는 어떤 공통적인 모습이 있다면 바로 예상치 못한 웃음을 통해 캐릭터뿐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에 일종의 숨통을 트여준다는 것이다. 가...
돌이켜보면, 최은경의 등장이야 말로 '아나테이너'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똑 부러지게 생긴 아나운서들과 달리 동그란 얼굴로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그녀는 뉴스데스크에 앉아서 촌철살인을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웃어야 할 때 웃고, 눈물이 날 때 울어버리는 친근한 진행자로서 재능을 드러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과정은 비록 '아나운서' 최은경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었을지언정 다정하고 편안한 방송인으로서 그녀의 장점을 더욱 공...
많은 사람들이 독립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동일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굉장히 '자의식 강한' 영화라는 이미지다. 말하자면 독립영화는 감독의 천재적 재능이 만개한 걸작, 혹은 혼자만의 형식 실험에 도취되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얼치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 옴니버스 영화 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윤성호 감독의 작품을 만난다면 이런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글을 읽는 당신은 윤성호 감...
MBC 은 '재발견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 세련된 도시여인의 대명사였던 김남주 가 능청스러운 주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사극 속의 강인한 남자였던 최철호 는 그가 얼마나 코미디에 대한 재능이 많은지 증명했다. MBC 시트콤 에서 궁상맞은 대리의 모습을 보여주던 윤상현 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룹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재벌 2세로 변신해 우리를 놀래켰다. 그리고, 선우선 이다. ...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8년 봄, 야구장 외야석 잔디에 누워 맥주를 마시면서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는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몇 년 뒤, 프로야구 태동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한 소년 역시 “80년대식으로 화끈한 야구”를 선보였던 해태 타이거즈의 어린이 회원 점퍼를 입고 동네를 활보하면서 꿈을 꾸었다. 소년은 자라서 소설가도 야구감독도 아닌, 영화감독이 되었다. 김현석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유난한 '야...
“저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많은 작품에서 최선을 다하면 재능이 발견되기도 할 것 같아요. 끝까지 노력해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요.” KBS 의 제작 발표회에서 만난 김아중은 뜻밖의 말을 던졌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톱스타 중 한 명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라. 그것도 영화 에서 1인 2역에 가까운 분장 연기와 노래까지 소화하며 스타가 된 김아중이 말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김아중은 정말 어느 것...
다니엘 헤니를 처음 만난 건 흑백의 화장품 광고에서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종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남자가 호수에서 걸어 나오던 그 순간, 모든 여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첫 등장부터 판타지의 재림이었던 다니엘 헤니는 충실히 그 판타지를 재현했다. 보통의 드라마에서 질투나 음모 이상의 지분을 갖지 못하던 두 번째 남자 주인공, 그러나 그 순정이 담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MBC 의 헨리는 오랫동안 다니엘 헤니 그 자체였다. 그...
“아, 이 분이 그…” 의 김양수 작가를 인터뷰하러 갔을 때, 문을 열어준 그의 아내를 보고 크게 웃을 뻔 했다. 둘 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지만, 나는 의 에피소드를 통해 김양수 작가의 아내를 볼 수 있었으니,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왠지 친한 사람 같았달까. 은 그런 작품이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네이버 웹툰을 통해 두 번씩 꼬박꼬박 연재되는 이 만화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스펙터클한 ...
“제가 원래 진짜 말이 없어요.” ‘무릎팍 도사’도 ‘젊은 할배’라고 두 손 든 과묵한 김래원은 심지어 바르기까지 하다. 주일마다 성당에 가고, 어떤 질문에도 예의 바르게 “네, 아니오” 이상의 대답을 아낀다. 20대의 혈기보다는 30대의 진중함이 풍기는 그에게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묻자 그제서야 제 나이로 돌아간다. 무게 있는 중저음이 한 톤 높아지고, 조근...
어떤 여배우들은 꽃잎 같고 열매 같다. 그러나 윤진서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다가도 바람에 금세 나부끼는 잎사귀 같은 여배우다. 여리고 곱기만 한 것도 아니요, 묵직하게 존재를 알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자리는 아련하면서도 자유로운 특유의 온도 때문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영화들은 부터 , , 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이지만, 그녀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한눈에 정의하기 어려운 ...
공효진. 이 여자를 뭐라 하면 좋을까. 스타일리시한 패셔니스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배우? 사실 그녀를 불러올 때 주로 쓰이는 이런 말들은 수식을 위한 수식에 불과하다. 공효진은 그냥 공효진이다. 대체 불가능한 공효진이라는 단어. 그녀가 아닌 의 날라리 영주나 MBC 의 센 척하지만 속마음은 보드라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공효진이라는 단어는 , MBC 등을 거쳐 에서 딱 맞는 빈칸을 찾아 들어갔다. 스스로도 ...
“하하, 정말요? 그럼 정말 뽑을 곡이 많은데..” 농담반 진담반으로 '운전할 때 듣는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말하자, 이수근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나무 자르기부터 집짓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국민 일꾼', 혹은 이제는 버스까지 운전할 줄 아는, 못하는 운전이 없는 코미디언. KBS 의 '1박 2일'은 그의 이미지를 그렇게 바꿔 놓았다. “처음 버라이어티 쇼를 시작할 때는 어떻게든 사람들 눈에 띄어 보려고 튀는 행동들을 했었어요. 그런데 방송...
예전에 어떤 패션잡지에서 봉준호 감독을 똘똘이 과학자처럼 꾸며놓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본인은 그 과한 설정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지만, 꽤나 어울리는 콘셉트였다고 기억한다. 현장에서의 꼼꼼한 연출과 준비로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은 봉준호 감독은 태양 아래 도기를 빚는 세심하고 숙련된 장인보다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차율 제로의 로봇 만들기에 도전하는 괴짜 과학자의 이미지와 더 가까운 까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