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이혜리, '꽃달'서도 여전한 '덕선이' 딜레마
밝은 캐릭터 매력있지만, 스펙트럼 넓혀야 할 때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이혜리./사진제공=KBS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이혜리./사진제공=KBS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혜리, '응팔 덕선이' 꼬리표…매력있지만 아쉬움은 계속

배우 이혜리는 이번에도 또 '혜리'였다. 씩씩하고 밝은 캐릭터에 말도 많고, 표정도 많고, 몸개그까지 많다. 멋진 캐릭터지만, 캐릭터가 한정되는 것은 독이 될 수 있다.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종영 뒤 6년. 다른 작품에서 만난 혜리에게 가끔 '덕선이'의 모습이 보이는 건 여전했다. 그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나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20일 첫 방송된 KBS2 새 월화드라마 '꽃 피면 달 생각하고'(이하 '꽃달')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주령의 시대, 밀주꾼을 단속하는 원칙주의 감찰과 술을 빚어 인생을 바꿔보려는 밀주꾼 여인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사진 = 꽃피면달생각하고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제공
'꽃 피면 달 생각하고' / 사진 = 꽃피면달생각하고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제공
극중 혜리가 연기하는 강로서는 양반의 신분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날품팔이 신세로, 돈을 위해서라면 똥 밭을 헤치고 혜민서 빨래도 대신하는 억센 인물이다. 여기에 자릿값을 뜯는 패거리에게 활을 겨누고 상투를 잡아 뜯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담대함까지 지녔다.

그래서일까. 시대도 다르고 신분도 다른데 자꾸만 '응팔'의 덕선이가 떠오른다. 한입 가득 음식을 넣는 먹방 장면과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들까지 그대로였다.

이는 혜리가 무거운 짐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혜리하면 떠오르는 대표 캐릭터가 덕선이인 탓에 비슷한 성격의 배역을 연기할 때마다 비교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덕선이는 혜리를 '연기돌' 꼬리표를 없애 준 인생 캐릭터지만, 반대로 '덕선이' 꼬리표를 붙게 만든 양날의 검이 됐다.
'딴따라'(왼), '투깝스' 이혜리./사진제공=SBS, MBC
'딴따라'(왼), '투깝스' 이혜리./사진제공=SBS, MBC
혜리가 '덕선이' 캐릭터만을 고집했던 건 아니다. 그는 '응팔' 이후 차기작으로 '딴따라'를 선택, 억척스럽지만 그늘 있는 캐릭터로 보다 진지하고 무거워졌지만 '응팔'과 달리 자연스럽지 않은 연기로 논란이 일었다. 이어 선택한 '투깝스'에서도 연기력 논란이 일어 심경을 담은 자필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렇듯 덕선이와는 결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면 혜리 특유의 개성 있는 발성과 표정 연기는 오히려 약점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혜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덕선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청일전자 미쓰리', '간 떨어지는 동거'처럼 말이다. 연기력 논란은 피해갔지만, 덕선이의 모습은 계속 남았다.

덕선이가 혜리의 인생 캐릭터가 된 데에는 '덕선=혜리'였기에 가능했다. 연기가 아닌 실제 혜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꽃달' 역시 강로서가 아닌 혜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기에 사람들은 덕선이를 보는 듯 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스틸컷./사진제공= 꽃피면달생각하고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제공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스틸컷./사진제공= 꽃피면달생각하고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피플스토리컴퍼니 제공
배우란 매 작품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직업. 자신의 성격과 비슷한 캐릭터만을 연기한다면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은 넓힐 수 없다. 자신과 전혀 다른 캐릭터의 옷을 입을 줄 알아야 완성형 배우로 거듭 나는 법. 익숙함은 안전한 길이지만 반전을 꿈꾸기는 점점 어려워 질 수 있다.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제 욕심 때문에 반대되는 캐릭터를 한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타이밍에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간동거' 종영 인터뷰)

배우로서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혜리에게는 그러한 매력이 충분히 존재한다. 잘할 수 있는 캐릭터 안에서 조금씩의 변화와 고민을 거치며 성장할 수 있다. '꽃달' 역시 혜리에게는 로맨스 코믹 사극이라는 새로운 '변화'였을 터. 사극 장인 유승호와 '금주령'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만난 혜리가 '꽃달'을 통해 얼만큼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연기 활동을 시작하고 어느덧 10년, 혜리의 고민이 깊어질 시기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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