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진짜 힐링은 여기에 없다
[위근우의 10 Voice] 진짜 힐링은 여기에 없다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질 점도 많다는 것입니다.’ 모 기업의 광고에서 상냥한 목소리의 내레이터가 젊은 청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들려주는 말이다. 상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 말은, 하지만 지금의 부족함을 그 자체로 긍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좋아질 점이 많으니 힘내라는 건, 좋아져야 한다는 강요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다. 목소리는 이렇게도 말한다. ‘출발이 늦은 사람이 아니라 준비를 더 충분히 한 사람일 뿐’이라고. 다시 말해 어떤 결여는 쓸모 있는 한에서만 긍정될 뿐이다. 광고의 다른 버전 역시 마찬가지다. ‘땅에서 기회를 찾을 수 없다면 바다에서 돋보일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그것은 결국 어떻게든 남들도 인정할 일을 찾아내라는, 잉여는 용납할 수 없다는 냉혹한 자본 논리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 광고의 메시지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경제적 효율성으로 판단하고 재단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걸 비난하는 건 새삼스럽다. 중요한 건, 이런 요구를 이처럼 친밀하고 사적인 위로의 말로 전달하는 이유다.

‘힐링’이 TV로까지 넘어 온 이유
[위근우의 10 Voice] 진짜 힐링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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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갈등의 문제가 결국은 개인의 심리에서 출발한다고 결론 내린 정신분석학자 엘튼 마요의 연구 이후, 사람의 감정은 경제적인 효율성을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되었다. 지금 당장 서점에서 성공에 대한 책을 들춰보라. 한 챕터 이상을 감정적 소통 능력에 대해 할애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감정 자본주의라는 말로 이름 붙인 문화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심리학적인 치료 내러티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생산성 있는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해선 건강한 자아를 가진 한 개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치료를 모티브로 하는 SBS (이하 )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이들은 연예인으로서의 차태현과 옥주현, 유준상 등을 초대하지만 동시에 한 개인으로서의 그들의 멘탈을 걱정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치료 내러티브와 동일하다. 최근 종영한 MBC ‘무릎 팍 도사’가 고민 상담의 모티브로 그 시작을 알렸다면 는 좀 더 노골적이다. 그들은 이혼의 위기를 앞둔 김영철이나 계속되는 부침을 겪은 차태현, 백만 안티의 주인공인 옥주현 등을 섭외하고 고백과 자기 성찰을 중심으로 힐링 타임을 갖는다. 김영철은 아내를 향해 사과의 영상 편지를 띄우고, 옥주현은 사업 실패로 겪었던 마음고생을 말하며 눈물지었다. 냉정히 말해 이것은 감정적 고백을 사고 파는 일종의 거래일 수 있다. 다만 그 보상이 단순히 출연료나 홍보가 아닌, 치료 받고 재활에 성공한 건강한 이미지라는 것이 이 토크쇼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 사람은 이처럼 긍정적인 자아를 가졌으니 연예인으로서 사랑받을 만하다는 결론.

딜레마 속 정답을 찾아서
[위근우의 10 Voice] 진짜 힐링은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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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의 방법론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건, 그 위로가 허상이나 착각이라서가 아니다. 허상이 그다지 견고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치료 내러티브는, 그리고 감정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위해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긍정하고 끌어들이지만, 그 과정은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부여된 공과 사의 구분을 지워버린다. 좋은 직원인 동시에 좋은 개인인 것이 아니라 좋은 직원이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상황. 에서 “지금이 일 같나, 사석 같나”라는 질문에 장혁이 “그 중간” 같다고 말한 건 의미심장하다. 방송은 분명 일이지만 프로그램은 사석 같은 분위기를 원한다. 그 안에서 두 영역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제 ‘연예인은 공인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강호동과 지드래곤을 통해 사적인 잘못과 실수가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확인했다. 과연,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위로가, 치료가 가능할까. 의 딜레마는, 청년의 자아실현을 응원하는 척하는 광고 문구 등에 전방위로 노출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며 허상으로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은 어쩌면 TV가 꿈과 환상의 서사로 시청자를 제대로 속일 수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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