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물을 “엄청 싫어했던” 작가가 그린 뱀파이어 웹툰. 남자 작가가 만들어 낸 간지럽고 풋풋한 10대들의 로맨스. 쉽게 상상되지 않는 조합이 석우 작가의 <오렌지 마말레이드>에는 모두 있다.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뱀파이어 정체성을 숨기고 조용히 학교생활을 해나가려는 백마리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정작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훈남’정재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을 보면 너무 멋있게 나오거나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지더라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뱀파이어물을 엄청 싫어했어요.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최대한 평범하게, 최대한 멋지지 않게 풀어가고 싶었어요. 물론 막상 작업을 해보니 남녀 간의 풋풋한 대사나 상황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고, 특히 소녀의 감성을 따라가기가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웃음)”

그래서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주인공은 단순히 뱀파이어가 아니라 ‘본인을 자신 있게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봐왔던 뱀파이어의 환상을 버리고 ‘만약 이 세상에 정말 뱀파이어가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어요. 그러면 뱀파이어라는 설정과 상관없이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우리 주위에도 남들의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백마리와 정재민의 안타까운 감정선도 감정선이지만, 오늘 들킬까 내일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백마리의 속마음을 잘 표현해내는 것이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관건이다. 다음은 매주 백마리의 마음을 헤아려줘야 하는 석우 작가가 추천해 온 ‘감성이 필요할 때 듣는 음악들’이다.




1. 가을방학의 <1집 가을방학>
“<오렌지 마말레이드> 스토리를 짤 때 자주 듣는 음악이에요. 여자 주인공이 첫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넣고 싶었던 음악이기도 했고요. ‘가을방학’은 가을만 방학이 없어서 슬프다는 내용의 곡인데, 약간 황당한 가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감도 되고 감정이입도 되는 노래더라고요. 특히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라는 가사가 정말 마음에 와 닿아요.”



2. 리딤(Riddim)의 < On The Terrace (EP) >
“‘Just Let It Go’는 제 작품에 노래를 제공해 주시고 계시는 리딤밴드의 음악입니다. 비록 작품에 한 번도 쓰이진 않았지만 젊을 때의 풋풋한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에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삶을 너무 힘들게, 너무 괴롭게 살아가지 말라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두렵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당당하게, Just Let It Go! 했으면 좋겠어요.” 리딤의 또 다른 곡 ‘날 꺼내줘’는 <오렌지 마말레이드> 8화에서 들어볼 수 있다.



3. Elizabeth Bright의 <피아노 지브리 (Piano Ghibli)>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주제곡이죠.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힘들 때 눈을 감고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회에 찌든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을 때 들으면 좋은 노래에요. 음악과 선율이 아름다워서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거든요.” 특히 ‘닫혀가는 추억의 그 안에서 언제나 / 잊고 싶지 않은 속삭임을 듣는다 /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거울 위에도 / 새로운 경치가 비춰진다’는 가사를 가만히 읊조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힐링송’이다.



4. 토이의 <6집 Thank You>
석우 작가의 네 번째 추천곡은 토이의 6집에 수록된 곡이자 윤하의 청량한 보이스가 돋보이는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이다. “우울한 느낌이 필요할 때 자주 듣는 노래에요. 가사를 보면 소녀의 감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게 윤하의 목소리와 어울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특히 ‘언제부턴가 우리 둘의 약속은 점점 나만의 것이 되어가고’라는 가사에 공감이 많이 돼요. 옛 사랑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거든요. 그래서 비 올 때 들으면 완전 우울해진답니다.”



5. Jet의 <1집 Get Born>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을 들으며 옛사랑을 떠올렸다던 석우 작가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Jet의 ‘Look What You`ve Done’을 마지막 추천곡으로 선택했다. “Jet의 ‘Look What You`ve Done’는 예전에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꽂힌 노래에요. 바다를 보면서 계속 무한 복해서 들었던 곡이거든요. 가사의 뜻도 모르는데 왠지 지난 시간들이 눈앞에 지나가는 느낌이더라고요. 뭔가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악 같습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석우 작가는 데뷔 후 줄곧 ‘다음 주는 어떻게 재밌게 그릴까’라는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래서 만화가라면 당연히 읽어봤어야 할 만화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거창한 작가관도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느 순간 재미있는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 밤새며 고민을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지만 점점 만화 그리는 것에 재미가 붙었나 봐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부족한 내용을 보여주기도 싫고. 저도 모르게 만화가가 되어 있었던 것 같네요. 하하.” <오렌지 마말레이드> 연재를 끝내면 “당장은 그저 놀고 싶다”는 석우 작가. 아무래도 <오렌지 마말레이드>와는 전혀 다르게 그려보고 싶다는, “정말 어둡고 피가 낭자하는 호러작품”과의 만남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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