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참. 오마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MBC 의 김남일은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결혼을 준비하는 항아(하지원)가 너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다 이렇게 말한다. 기쁨과 아쉬움, 미안함 등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온갖 감정은 그 한 마디, 돌아서서 눈물 훔치는 뒷모습으로만으로도 그대로 전해진다. 화려하지도, 대단한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 장면은 배우 이도경의 연기 인생을 닮았다. 가난이 싫어 하루를 48시간으로 살면서도 연기를 놓지 않았던 시절, “사람 구실도 못하”면서 11년 연극 무대를 지킨 뚝심은 비록 세상을 삼키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 자신만의 큰 바다를 이뤘다. 손짓 하나도 그냥 나온 게 없고 뒷모습마저 말을 건네는 이도경의 힘은 수 십 편의 연극과 영화 의 얄미운 도상춘, 의 비열한 장철 등을 살아 있게 만들었고 의 김남일 또한 그에 의해 생기를 얻었다. 아직도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그 다양한 인생을 상상하는 것이 가장 재밌다는 이도경.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아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채워졌던 배우 이도경과의 대화를 전한다.“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전달되도록 애썼다” 출연으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것 같다.
이도경: 연극을 주로 하고 어쩌다 영화만 했을 때는 길거리에서 2,30명 정도 알아보는 정도였다. 근데 TV는 정말 무서운 것 같아. 이제는 젊은 애들도 사진 같이 찍자고, 싸인 해달라고 한다. 나도 사람이라 날 알아보는 분이 많으니 기분은 좋은데, 불편한 것도 있더라. 이제 어디 가서 음식 값도 못 깎고, 맛없으면 없다고도 못할 거 아닌가. (웃음)
영화 나 ,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인지 못 알아볼 정도로 드라마의 첫 등장이 신선했다. 어떻게 북한 전선부 차장 김남일이란 인물을 맡게 됐나.
이도경: 감독이나 작가한테 연락이 직접 온 건 아니고 제작진 중간 다리 맡는 쪽에서 제의를 했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주로 맡아왔던 역할이 거의 경상도 사람이었다. 다른 배역은 잘 안 온다. 근데 이번에 북한 사람 역할이 들어온 거다. 나이도 이제 60살이 다 되어 가고, 그런 인물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다가 내 자식도 연극을 할 거라고 하는데 애비가 돼서 자식한테 용기를 내고 도전을 하는 것도 보여 줘야 겠다 마음먹었다. ‘그래, 움츠러들 거 뭐 있노. 배워서 한 번 해보자’란 생각으로 쿨하게 OK 했다.
처음 맡게 된 북한 사람 김남일을 어떤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나.
이도경: 난 북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진짜 빨간 줄 알고 큰 세대다. 근데 사실 안 그렇잖아. 나이키 신발도 신고 수영복도 멋지게 입고 수영하고 그런 거 보면 북한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아랑 김남일도 딱 보면 그냥 엄마 없이 큰 딸과 애비이고 되게 돈독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로 일을 할 때의 김남일은 그야말로 딱 정치인이다. 항아 아버지일 때와 정치인 김남일일 때는 많이 다른 거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통령도 집에 가면 그냥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니까. 김남일이 아무리 고위 간부라고 해도 집에 가면 항아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로 보이겠지. 대본을 보면서 그런 걸 표현해야 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극 중에서 항아를 대하는 모습이 정말 ‘딸 바보’처럼 그려졌다. 말은 많이 안 해도 항아를 바라보는 눈빛, 손짓만으로도 딸을 사랑하는 게 잘 드러났다.
이도경: 최대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처럼 연기하려고 했다. 우리 아버지만 해도 11남매 대가족을 키운 분인데, 그렇게 절약을 하고 그렇게 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안 입는 나팔바지 입고, 담배도 세 번에 나눠 태우는 분인 거지. 근데 내가 연극한다고 서울 올라와 있을 때 내가 TV에 나온 걸 보고 새벽에 전화해서 대뜸 “내다! 봤다!” 이러고 뚝 끊으시더라. 그 한 마디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이런 아버지가 드라마에 나온다고 하면 대사가 많지 않을 거다. “봤다” 이거 하나지. 그러면 그걸 어떻게 표현할 건가.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사랑하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할 방법이 없을까. 항아하고 내가 티격태격하고 말없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어도 시청자들이 안 보이는 그 마음을 읽어가도록 애를 썼다.
실제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드라마처럼 자상한 아버지인가.
이도경: 자식을 늦게 낳아서 스물 네 살 먹은 딸,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다. 평소에 등도 잘 두드려 주고 아들한테 뽀뽀도 자주 하는데 요즘에는 아들도 싫어하고 딸도 집에 오면 방에 들어가 버리더라. 근데 요즘에는 딸이 얼마 전 데려온 개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안 키우려고 했지만 애교 부리는 거에 내가 녹아버렸네. 이 나이에 우리 워낭이 만난 게 그렇게 행복하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워낭이 때문에 연기도 달라지는 것 같다. 받는 것만 사랑이 아니고 주는 사랑도 엄청나서 그런지 몰라도 내 정서가 말랑말랑해지니까 연기도 잘 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자면 항아를 워낭이하고 비교해서 연기하기도 했다. 항아야, 미안하다. 하하하.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배웠나. 실제로 경주 사투리가 굉장히 강하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강한 북한 사투리를 소화할 때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이도경: 아이고, 너무 힘들었다. 진짜 식겁했지. 옷이나 머리, 이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온통 북한 말에만 집중을 했는데 전혀 북한 특유의 사투리 맛이 살지 않더라. 사투리 지도해 주시는 분 말을 녹음해서 듣고 또 따라 해도 제대로 안 나왔다.
하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들렸다.
이도경: 에이, 말도 안 된다. 그냥 흉내만 낸 거다. 지역이 비슷해야 배우기도 쉬운데 경주 사람이 북한 말 하려니 혓바닥이 안 돌아갔다. 내 친구들도 “너 도경이 이 자식, 경상도 사투리에 북한 말만 섞어 가지고” 이러면서 뭐라고 하더라. 하하하. 근데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땐 죽어도 안 되던 게 현장에서 하면 항아가 너무 잘 하니까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기도 한다.
“머리 말고, 마음으로 느끼는 대로 표현해야 한다”
사투리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대사를 읽는 리듬이 정형화되지 않아서 귀에 잘 들어왔다.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인상적이었다.
이도경: 누가 나보고 호흡법이 다르다고 하더라. 난 매끄럽게 대사를 읽기보다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처럼 하려고 한다. 만약 대본에 ‘오늘 날씨가 좋은데, 어디 놀러 갈까?’ 이렇게 나왔다고 하자. 근데 배우들이 한 호흡으로 꼭 마침표 있는 곳에서 끊어 읽으면 맛이 제대로 안 살 거다. 주변에 있는 엄마들만 봐도 “오늘 참 날씨가 좋네. 음…놀러나 갈까?” 이런 식으로 어떨 때는 거꾸로 말하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끊어 읽지 않나. 그래도 다 감정이 전달된다. 중요한 건 말보다 정서다. 난 TV 토론 프로그램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보는데 토론하는 사람들 말 받아 적어보면 그렇게 리얼할 수가 없다. 머리 말고, 마음으로 느끼는 대로 표현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서 주로 상상이나 관찰을 많이 하나보다.
이도경: 당연하다. 배우는 상상력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 캐릭터는 어떤 심리인지, 이건 어떤 상황인지,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저 상황에서 그 말은 왜 할까 등을 무조건 되게 깊게, 되게 많이 상상해야 한다. 누가 더 상상을 많이 하냐에 따라 좋은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가 갈리는 것 같다. 대사만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러기 위해선 경험도 많아야 할 것 같다. 평소에는 어떤 노력을 하나.
이도경: 그냥 카페에 앉아서 사람 구경을 많이 한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 커플은 사귄 지 오래 됐구나, 저 사람들은 불륜이다. 대충 보이지 않나. 그렇게 관찰하면서 머릿속으로 만화를 그린다. 그래서 나 혼자 되게 잘 논다. (웃음) 아, 가끔 촬영도 없고 할 일 없을 땐 고향 친구들하고 잘 노는데 그 놈들하고 놀면 마음이 ‘초딩’으로 돌아가 버린다. 스크린 골프 치면서 돈 천 원으로 얼굴 붉히면서 싸우는데 난 또 그런 걸 유심히 보는 거다. 오고 가는 대사, 표정을 보면서 연구를 많이 한다. 이제는 그런 게 직업병처럼 됐는데도 난 그런 게 참 재밌다.
데뷔한 지 40년이 되어 가고 연극 로는 11년 장기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여전히 연기를 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도경: 사실 한, 두 달 하는 연극은 끝날 때 되면 아쉬울 정도로 재밌다. 근데 는 몇 천 번을 하니까 나중에는 공연 시작 5분 전에 갔다. 하기 싫어서. 괜히 ‘극장에 불 나 버려라’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명감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다. 늘 보러 오는 관객이 있고 자식들한테도 이왕 장기 공연하는 거 역사에 획을 긋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 청춘을 로 다 보냈다. 누가 나보고 차도 있으면서 강남 길 모른다고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대학로만 왔다 갔다 하니까. 그리고 사실 돈도 되니까 11년이나 한 거다. 내가 부처님도 아니고 돈이 안 생기면 못 하지. (웃음)
연극배우는 배고프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 했다고도 들었다. 실제로 이랑씨어터라는 극단을 갖고 있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풍요롭게 연극을 했던 건가.
이도경: 처음엔 비참하게 살았다. 연극 한다고 서울 왔는데 집도, 절도,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요즘은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나. 그 때는 연극하면서 아르바이트하면 ‘헝그리 정신이 없다’, ‘마음이 변했다’, ‘예술 정신이 없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라 돈도 못 벌고.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되게 노력을 많이 했다. 어느 날 학장한테 찾아가서 “돈은 없는데 연극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조명이나 분장술을 배우라고 하더라. 조명은 남만 비춰주고 나는 안 보여서 싫었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분장 일을 시작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미친 듯이 일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또래 연극하는 사람들보다 괜찮게 살게 됐다. 그러면서도 연극은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고 그 선택을 후회해 본 적도 없다. 가난은 너무 너무 싫다.
계속 분장 일과 연기를 병행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단까지 만들 생각을 했나.
이도경: 어느 날 전북 무주에서 달력을 촬영 한다 길래 분장을 하러 갔다. 열두 번 찍는 거라 배우도 굉장히 많아서 내가 분장 보따리 들고 이 방 저 방을 다녀야 했다. 근데 자세히 보니 다 학교 후배들이더라. 그 순간 ‘아,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왜 이걸 들고 돌아다녀야 하나’ 싶었다. 그 때 아이가 아파서 병원비도 많이 들어갈 땐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분장 도구를 다 던져버렸다. 그러면서 ‘왜 연기자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팔자일까, 내가 제작을 하면 고생도 덜 하고 작가도 선택하고 내 느낌과 정서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훌륭한 동료들이 내 주위에 있었고 몇 시간 잠도 못자면서 연극 를 무대에 올렸는데 3년 만에 20만 관객이 찾았다. 그 땐 정말 돈 세느라 쥐날 뻔 했다. 그렇게 극단을 만들 수 있었다.
“연기만 하면 난 그렇게 행복하고 그 다음은 모르겠다” 분장과 연기를 계속 하면 분명 몸도 피곤하고 쉽게 그만 둘 수도 있는데 에너지가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원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현실을 바꾸려고 돌파하는 성격인가.
이도경: 그런 쪽이다. 늘 그런 건 아닌데 연기에 관한 일은 좀 공격적으로 하는 것 같다. 극장을 지을 땐 아파트를 담보로 했으니까. 가 잘 돼서 산 아파트였는데 연극도 잘 되고 아파트 값도 오르니까 판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단 극장을 짓고 극단을 만들기로 했고 내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연극판이 기울고 있지만 그 때는 생각보다 잘 됐다.
극단 대표로서의 고민도 크겠다.
이도경: 예전에는 정말 몇 백 개가 넘는 극단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망해서 건물 내놓는 극장, 극단이 한 둘이 아니다. 제작자도, 배우도, 다 힘들다.
연극에 인생을 건 셈인데 요즘처럼 연극을 쉽게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이도경: 물론 힘들지만 사실 연극은 할 만큼 했고 이제 다른 장르를 하고 싶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내가 안 해봤던 걸 하고 싶어진 거다. 나이가 드니까 연극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물론 이 나이에 연극계가 아닌 새로운 판에 들어가서 내가 모르는 연기를 하는 게 두렵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어린 친구들 연기도 많이 보고 나름 응용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연극은 막 표현하려고 하고 던져 주려고 하고 심어 주려고 하는데 드라마는 그렇게 하면 혼자 튀어 보일 수도 있더라. 드라마는 하모니니까 어느 정도로 표현해야 되는지 배우게 됐고 나름 재밌어지고 있다. 조금씩 해보니까 내 연기를 조절하는 새로운 기계가 마음 속에 생긴 것 같다.
연극계에서는 이미 명성을 얻는 베테랑인데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나 비중이 높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는 않을까.
이도경: 젊은 사람들은 여러 주인공을 맡을 기회가 많지만 난 나이도 들었고 (웃음) 나한테 맞는 게 아니면 앞으로는 주인공 맡기 어렵다. 뭐, 할 욕심도 없고. 자연스럽게 난 단역이나 조연을 많이 하게 될 거다. 근데 난 조연 연기가 더 힘든 것 같더라. 주인공은 작품이 흘러가는 큰 흐름에 타면 되는데 조연은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연기하는 데 제약이 있다. 가끔 갑자기 배역 받고 온 사람들이 대사는 다 외웠는데 어떤 톤인지 몰라서 나한테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볼 때도 있다. 시간에 쫓기면 더 잘 할 수 있어도 못한다. 잘못 하면 튀어 버리고 방해가 되니까 조연 연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연극에서는 코미디 배우로 입지를 다졌고 영화에서는 조폭, 할아버지 등의 연기도 했다. 다양한 역할을 맡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지만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 것 같다
이도경: 예전에는 독특하고, 희한하고, 얄궂은 역할만 하고 싶었다. 근데 요새는 참 평범한 거 하고 싶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연기.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거 하는 게 쉽다고 하지만 난 아닌 거 같다. 평범하다는 게 과연 정말 평범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평범한 거 말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의미를 주는 걸 해 보고 싶다. 난 평범한 연기를 하지도 못하고 해본 적도 없어서 반성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오히려 내가 못 하는 걸 해보면서 배우고 싶다.
역시 연기에 대한 에너지가 넘친다. (웃음) 그렇게 꾸준히 열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동력이 뭘까.
이도경: 남들 인터뷰한 거 보면 다른 인생을 사는 즐거움 때문에 연기를 한다고 하는데 난 그냥 팔자 같다. 연기만 하면 난 그렇게 행복하고 그 다음은 모르겠다. 중간에 다른 직장을 다닌 적도 없고 연기 외에 다른 걸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한데 다른 걸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아, 요즘에는 내가 연기를 안 했다면 뭘 했을까 억지로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아마 나무로 뭘 만드는 일을 했을 것 같다. 내가 나름 손재주가 좀 좋거든. (웃음)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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