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석│워밍업은 끝났다
오창석│워밍업은 끝났다
잘 생겼다. 갸름한 얼굴, 깊은 갈색 눈동자, 그 위로 그림자를 만들어낼 만큼 긴 속눈썹. 이름도 얼굴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지만 배우 오창석은 길 가다 마주치면 한번쯤 돌아보게 될 만큼 타고난 미남이다. 물론 ‘연예인 얼굴’의 척도인 길거리 캐스팅도 당해 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가수를 키우는 유명 기획사 분이었는데 ‘노래는 못해도 된다, 대학도 보내주겠다’는 거에요. 아니, 가수를 키울 거면 당연히 노래 잘하는 애로 데려가야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왜 대학을 자기네들이 보내줘요? (웃음)” 성미가 만만치 않던 소년은 결국 본인이 원하던 미대에 진학했지만 “회사 선배들 눈치보고 매달 월급 받으면서 사는 한국 디자이너의 삶이 전혀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진로를 변경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그동안 “어우, 그걸 어떻게 해요. 오글거리고 부끄럽잖아요”라고 생각했던 연기의 길로.

뚜렷하고 강한 직선처럼
오창석│워밍업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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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첫 연기수업을 받으며 “머리가 하얘지는 쾌감”을 느꼈지만, 그는 남보다 늦은 시작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재수 생활에 과 대표를 거쳐 군대까지 다녀온 경험들은 그가 미지의 분야에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첫 광고에서 머리가 헝클어진 채 라면으로 해장하는 회사원으로 등장하고, 첫 영화 에서 게이 캐릭터에 도전한 것 역시 전적으로 그의 결정이었다. 연기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경험한 그는 풋풋하진 않지만 솔직한 신인의 분위기를 풍겼다.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나 같은 신인은 잴 것 없이 무조건 해야된다”는 자세 때문인지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보통 신인들이 만들어낼 법한 솔직한 ‘이미지’를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그는 여자 후배와 관계를 갖는 게이 영수의 모습이 “뭣도 모르는 ‘찐따’” 같고 “KBS 에서는 사실 연기한 게 없다”고 털어놓으면서, 차마 기자가 선뜻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먼저 풀어나간다. ‘뭘 그렇게 망설이세요?’라는 질문이 담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게이 역할을 맡은 것이 꼬리표가 되면 어쩌냐’는 우려에 오히려 “만약 전도연 씨가 영화 를 안 찍었다면 터닝 포인트가 없었을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받아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뚜렷하고 강한 직선에 가까운 오창석이 “실질적인 데뷔작”인 영화 에서 섬세하고 연약한 곡선에 가까운 게이 영수를 연기한 건 일종의 반전이었다. 늘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 긴 속눈썹마저 외롭게 느껴지는 영수는 애인 운철(장서원)을 향해 “난 널 참 좋아했어. 근데 그냥, 더 좋아진 게 생긴 거야”라고 이별을 얘기하는 동시에 자신의 불확실한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이다. 그는 “나한테 없는 감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영화 와 를 보면서 “영수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연구”했고, 끊임없이 김종관 감독과의 타협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 결과, 실제 그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본래 영수의 눈빛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극에 잘 스며들었다. 그는 이제 SBS 에서 현장출동요원 역할을 맡아 한껏 비주얼을 드러낼 예정이다. 전혀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던 그가 “내 몸에 맞는” 캐릭터를 대면했을 때 뿜어낼 에너지가 기대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배우는 4500만 국민을 상대해야 되는 사람”
오창석│워밍업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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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워밍업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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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기를 시작한 뒤 3년의 시간동안 오창석은 연예계가 “쓸데 없는 자존심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과 “배우는 주변사람 3~40명이 아니라 4500만 국민을 상대해야 되는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으며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요컨대 그는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배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배우다. “빨리 유명해져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이런 것보다 우선 내 필모그라피를 먼저 쌓고 싶어요.” 오창석의 다음 목표가 막연한 꿈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신인에게 꼭 필요하지만 체화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자세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면 아래 존재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워밍업이 끝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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