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그가 콤비 서경석과 떨어져 새로이 만든 MBC <오늘은 좋은 날>의 ‘허리케인 블루’는 그 똑똑하고 반듯하던 청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코너였다. 비쩍 마른 몸으로 프레디 머큐리 분장을 한 채, 퀸의 ‘Bohemian Rhapsody’를 립싱크 하는 그의 모습은 무엇보다 평소 그의 이미지 안에서 예상할 수 없었기에 충격적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단순히 변화를 쫓기보다는 자신의 단정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쥔 상태에서 그것이 무너질 때의 웃음을 활용할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그의 별명으로 통용되는 국민 약골 캐릭터 역시 공부만 하는 샌님 이미지를 스스로 희화화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즉 그는 언제나 반듯하고 예의바른 이윤석이지만 동시에 ‘남자의 자격’에서 멘토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에 기뻐 날뛰는 이윤석이기도 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간극 안의 괴리감이야말로 이윤석만의 독특한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는 ‘남자의 자격’ 밴드에서 연주하고 싶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며 그가 골라준 다음 헤비메탈 넘버들이 절묘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이윤석이 추천한 첫 곡은 부활 2집 < Remember >의 ‘Jill`s Theme’다. “현재 ‘남자의 자격’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늘 자랑스럽고 기쁜 부활 (김)태원이 형의 연주곡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파워풀하고 헤비한 연주곡들을 좋아하지만 이 연주는 그야말로 제 감성을 자극했어요. 좋은 기타 연주를 들으면 그 곡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 곡이 그랬어요. 듣고 있으면 나의 유년시절, 어머니와의 추억, 미래 나의 묘지 등 다양한 상념이 찾아오는, 아름답고 애잔한 곡이예요. 태원이 형이 예능에선 참 허전한 구석이 많은 형이지만 이런 실력과 음악성이 있기에 부활이라는 그룹을 오랜 세월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웨스턴>을 위해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동명의 영화음악을 부활의 스타일로 편곡한 연주곡이다.
“록에 입문하게 된 곡”이라 이윤석이 소개한 곡은 80, 90년대 메탈 마니아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그 곡,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We`re Not Gonna Take It’이다. “이 곡을 듣기 전에는 팝 위주로 들었었는데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Cum On Feel The Noize’ 등의 곡과 함께 이 곡을 듣고 그때부터 록에 정을 붙이게 됐어요. 특히 트위스티드 시스터 같은 경우에는 괴기스런 분장과 과격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기 때문에 굉장히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이상한 뼈다귀 물어뜯고. (웃음) 사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접목한 것이고, 지금 보면 좀 재밌고 귀엽기도 하지만 그땐 어쨌든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보통의 곡은 기타가 먼저 들리는데 이 곡은 도입부의 드럼 ‘둥 탁 둥둑탁’하는 소리가 먼저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남자의 자격’ 밴드에서 이 곡을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윤석이 추천하는 곡들은 소위 80년대 형님들의 곡이라 할 만한 곡들인데 이 곡 건즈 앤 로지스의 ‘Sweet Child O` Mine’도 마찬가지다. “나의 기타 영웅 중 한 명인 슬래시의 연주는 깔끔하고 흡입력이 있어요. 그럼에도 동시에 외모는 지저분하고 터프하죠, 늘 담배 혹은 위스키 병을 물고 기타를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로커의 표상으로 내게 다가왔어요. 술과 담배와 음악이라는 쾌락에 몸을 담근 퇴폐의 표상이랄까. 저는 현실에서 정반대의 삶을 추구하고 있지만 지구 편 어딘가에서 나 혼자 꿈꾸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 혹은 그들을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했었죠. 그런 슬래시의 연주가 담긴 곡 중 이 곡은 참 예뻐요. 한번 들으면 바로 귀에 꽂히는 기타의 선율 때문에 지금까지 한 500번은 들은 것 같아요, 정말 엑슬 로즈의 음색과 슬래시의 기타는 천생연분의 부부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은 이혼했지만. (웃음)”
메탈 마니아 중 상당수는 LA 메탈에서 스래시 메탈과 멜로딕 스피드 메탈로 옮겨 탄 뒤, 좀 더 빠르고 과격한 걸 찾다가 데스 메탈로 넘어간다. 네 번째 추천 곡으로 사탄 숭배의 대표주자 디어사이드의 ‘Lunatic Of God`s Creation’을 고른 이윤석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harder, faster를 외치던 저는 결국 데스 메탈과 블랙 메탈에 꽂히게 되었죠. 보컬인 글렌 밴?의 카리스마적이고 사악한 창법과 사상, 행동, 외모, 모든 것이 데스 메탈을 웅변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된 폭력성, 공격성, 사악함을 음악을 통해 토하듯 뱉어내는 데스 메탈은 현실에서 남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훨씬 건전한 문화 행위라고 생각해요. 마음속에 화병이 있거나 누군가 죽이고 싶도록 밉거나 세상을 부숴버리고 싶을 때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신촌의 주혹새라는 록바에 가서 이 노래를 들으며 미친 듯 헤드뱅잉을 해요. 한 달을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음악 주사인 셈이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윤석이 고른 마지막 넘버는 멜로딕 스피드 메탈 밴드인 블라인드 가디언의 ‘Mr. Sandman’이다. “멜로딕 스피드 메탈의 선구자는 헬로윈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곡을 무척 좋아하여 추천합니다. 메탈의 매력이 무엇인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4인조 여성 보컬 그룹 코데츠의 곡을 리메이크했는데 같은 노래라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걸 보여주죠. 원곡처럼 발랄한 자장가와 같이 시작하다가 중반부 이후 전자기타 음의 출력의 높이기 시작하면서 폭풍 같이 휘몰아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데 모범적인 점강법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영화 <백 투 더 퓨쳐>에서 마이클 제이 폭스가 척 베리의 ‘Johnny B. Goode’을 연주하던 장면이 떠오르는 곡이기도 해요. 다들 재즈풍 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던 무도회장에서 그는 가볍게 보조를 맞추며 연주하다가 결국 헤비메탈 기타 연주와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관객은 어리둥절해하죠. 그 장면이 이 한 곡에 함축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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