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인터뷰에서 “조연에게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고 대본도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현장에 정말 많은 준비를 해 가는 배우로 유명한데요. 의 초랭이 역을 연기할 때도 수십 가지의 아이디어를 내셨다고.
유해진 : 아이, 수십 가지씩은 안 되구요. (웃음) 어차피 감독님이나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나 다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모인 거잖아요. 저도 그 일원으로서 조금 더 나은 건 없을까를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런 면에서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인데 그건 제가 튀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네요. 오히려 너무 튀는 게 있으면 여기선 그걸 없애고 그냥 흘러가는 낫지 않을까 감독님께 “제 생각은 이게 어떨까 하는데 감독님은 어떠십니까” 해서 그거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가는 거고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 전체의 그림을 보시는 감독님의 생각에 따라 제 생각을 접을 때도 있구요. 사실 답이 없을 때는 우선 문제만 제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딱 떠오르진 않는데 감독님, 좀 다른 건 없을까요?” 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보려고는 해요.
“중 2 때 처음 본 연극 너무 충격이고 정말 좋았죠” 배우들마다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흔한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SBS 때도 김두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넣어 보면 성인 김두수가 왜 그런 악인이 되었는가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 감독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는 게 배우에게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닐 것 같거든요.
유해진 : 그래서 방법을 조심히 해야죠. 정말 조심히 합니다. (웃음) “이런 방법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넌지시 건네죠. 그게 아니면 깨끗하게 접구요. 그런데 어차피 다들 고생하면서 모여서 하는 거니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이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건 좀 아까운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외에, 평소에도 좀 적극적인 성격이신가요?
유해진 : 아니에요. 사석에서는 전혀 그런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작품을 할 때는 그렇게 같이 참여하고 같이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거든요.
혹시 연극을 하실 때 배운 방식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유해진 : 그런 것도 꽤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연예인이 되고 싶다. 스타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연기 자체에 빠져서 극단을 찾아갔을까 하는 게 궁금하기도 해요.
유해진 : 그래서 첫 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청주에 살았는데 당시 집 근처에 문화회관 같은 게 있었어요. 무슨 행사 같은 걸 한다고 하면 슬쩍 개구멍으로 들어간다던지 해서 봤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추송웅 선생님의 모노드라마 공연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와, 내가 앞으로 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가 보다’ 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충격이고 정말 좋았던 거죠. 마침 사춘기일 때니까 그런 감동이 확확 다가왔고, 그게 정말 큰 행운이고 중요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보통은 대학에서 전공을 하려고 할 텐데 고등학생이 바로 극단을 찾아 간 이유는 뭐였나요.
유해진 : 사실은 고등학교도 예고를 보내달라고 졸랐는데, 현실적으로 집안 형편도 그러기는 힘들었고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제가 연기하겠다는 걸 싫어하셨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해서 청소년 여름 연극캠프 같은 걸 계기로 청주의 청년극장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선배들 잔심부름하고 연기하시는 모습 멀리서 보고 슬쩍슬쩍 따라해 보고 그랬죠.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는데 두 번 떨어졌어요” 그렇게 연기라는 걸 제대로 배우고, 남들 앞에서 처음 내 연기를 보여주게 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배우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상상만 해도 공포스럽거든요.
유해진 : 당연히 저도 무대에 처음 섰을 때 굉장히 긴장되고 힘들고 두려웠어요. 그리고 그것도 이상한 경험이었지만 영화 하면서 처음으로 몇 백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을 때는 더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연극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별로 나아지진 않았겠지만 정말, 받을 수 있는 돈이 차비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촬영장 몇 번 나가지도 않았는데 이런 돈이 들어오는 게, 이거 정말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싶게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연극이 지금 눈앞에 있는 관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었다면 영화는 과연 이 돈을 받은 만큼의 뭔가를 줘야 한다 이런 건가요?
유해진 : 네, ‘내가 그걸 해 내고 있는 건가? 그리고 이렇게 큰 액수가 맞나?’ 싶었죠. 첫 월급 타셨을 때 기분이 그렇지 않으셨어요? 아 좀 다른가? 저는 원래 기준이 항상 ‘조금’ 이었는데 그게 몇 배로 들어오니까 혹시 이 사람들이 나한테 잘못 넣어줬나 의심이 들기도 하고. (웃음) 그게 아마 97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럼 이건 그보다 더 전의 이야긴데요. 학교 다닐 땐 어떤 아이였던 것 같으세요?
유해진 : 되게 내성적인 애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꾸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어요.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부러 남 앞에도 좀 서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꽤 활달한 애가 됐죠. 그러다 지금은 다시 옛날 성격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웃음)
대학에서 첫 전공은 의상디자인으로 하셨잖아요.
유해진 : 원래는 연극영화과로 시험을 봤는데 두 번 떨어졌어요. 그래서 의상과를 생각했죠. 처음에는 그냥 군대 가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무슨 과라도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아무 과나 가기는 싫고, 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을 가고 싶은데 의상은 그래도 관련이 있으니까 택했죠.
연극영화과에 떨어지셨을 때는 심정이 어떠셨나요. 심사위원들이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요.
유해진 : 그 때는 또 인물 위주로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아 내가 너무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시험에 대한 공포가 생기더라구요. 짧은 시간 안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되게 부담이라 청심환을 먹고 가도 덜덜덜덜 떨고 그랬어요.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유해진 : 아이, 수십 가지씩은 안 되구요. (웃음) 어차피 감독님이나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나 다들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모인 거잖아요. 저도 그 일원으로서 조금 더 나은 건 없을까를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런 면에서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인데 그건 제가 튀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네요. 오히려 너무 튀는 게 있으면 여기선 그걸 없애고 그냥 흘러가는 낫지 않을까 감독님께 “제 생각은 이게 어떨까 하는데 감독님은 어떠십니까” 해서 그거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가는 거고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 전체의 그림을 보시는 감독님의 생각에 따라 제 생각을 접을 때도 있구요. 사실 답이 없을 때는 우선 문제만 제기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딱 떠오르진 않는데 감독님, 좀 다른 건 없을까요?” 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보려고는 해요.
“중 2 때 처음 본 연극 너무 충격이고 정말 좋았죠” 배우들마다 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흔한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SBS 때도 김두수의 어린 시절 얘기를 넣어 보면 성인 김두수가 왜 그런 악인이 되었는가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 감독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는 게 배우에게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닐 것 같거든요.
유해진 : 그래서 방법을 조심히 해야죠. 정말 조심히 합니다. (웃음) “이런 방법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넌지시 건네죠. 그게 아니면 깨끗하게 접구요. 그런데 어차피 다들 고생하면서 모여서 하는 거니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이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건 좀 아까운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외에, 평소에도 좀 적극적인 성격이신가요?
유해진 : 아니에요. 사석에서는 전혀 그런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작품을 할 때는 그렇게 같이 참여하고 같이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거든요.
혹시 연극을 하실 때 배운 방식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유해진 : 그런 것도 꽤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연예인이 되고 싶다. 스타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연기 자체에 빠져서 극단을 찾아갔을까 하는 게 궁금하기도 해요.
유해진 : 그래서 첫 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청주에 살았는데 당시 집 근처에 문화회관 같은 게 있었어요. 무슨 행사 같은 걸 한다고 하면 슬쩍 개구멍으로 들어간다던지 해서 봤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추송웅 선생님의 모노드라마 공연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와, 내가 앞으로 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가 보다’ 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충격이고 정말 좋았던 거죠. 마침 사춘기일 때니까 그런 감동이 확확 다가왔고, 그게 정말 큰 행운이고 중요한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보통은 대학에서 전공을 하려고 할 텐데 고등학생이 바로 극단을 찾아 간 이유는 뭐였나요.
유해진 : 사실은 고등학교도 예고를 보내달라고 졸랐는데, 현실적으로 집안 형편도 그러기는 힘들었고 부모님이 보수적이셔서 제가 연기하겠다는 걸 싫어하셨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해서 청소년 여름 연극캠프 같은 걸 계기로 청주의 청년극장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선배들 잔심부름하고 연기하시는 모습 멀리서 보고 슬쩍슬쩍 따라해 보고 그랬죠.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는데 두 번 떨어졌어요” 그렇게 연기라는 걸 제대로 배우고, 남들 앞에서 처음 내 연기를 보여주게 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배우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상상만 해도 공포스럽거든요.
유해진 : 당연히 저도 무대에 처음 섰을 때 굉장히 긴장되고 힘들고 두려웠어요. 그리고 그것도 이상한 경험이었지만 영화 하면서 처음으로 몇 백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을 때는 더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연극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별로 나아지진 않았겠지만 정말, 받을 수 있는 돈이 차비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촬영장 몇 번 나가지도 않았는데 이런 돈이 들어오는 게, 이거 정말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싶게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연극이 지금 눈앞에 있는 관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었다면 영화는 과연 이 돈을 받은 만큼의 뭔가를 줘야 한다 이런 건가요?
유해진 : 네, ‘내가 그걸 해 내고 있는 건가? 그리고 이렇게 큰 액수가 맞나?’ 싶었죠. 첫 월급 타셨을 때 기분이 그렇지 않으셨어요? 아 좀 다른가? 저는 원래 기준이 항상 ‘조금’ 이었는데 그게 몇 배로 들어오니까 혹시 이 사람들이 나한테 잘못 넣어줬나 의심이 들기도 하고. (웃음) 그게 아마 97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럼 이건 그보다 더 전의 이야긴데요. 학교 다닐 땐 어떤 아이였던 것 같으세요?
유해진 : 되게 내성적인 애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꾸려고 굉장히 노력을 했어요.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부러 남 앞에도 좀 서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꽤 활달한 애가 됐죠. 그러다 지금은 다시 옛날 성격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웃음)
대학에서 첫 전공은 의상디자인으로 하셨잖아요.
유해진 : 원래는 연극영화과로 시험을 봤는데 두 번 떨어졌어요. 그래서 의상과를 생각했죠. 처음에는 그냥 군대 가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무슨 과라도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아무 과나 가기는 싫고, 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을 가고 싶은데 의상은 그래도 관련이 있으니까 택했죠.
연극영화과에 떨어지셨을 때는 심정이 어떠셨나요. 심사위원들이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요.
유해진 : 그 때는 또 인물 위주로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아 내가 너무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시험에 대한 공포가 생기더라구요. 짧은 시간 안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되게 부담이라 청심환을 먹고 가도 덜덜덜덜 떨고 그랬어요.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