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어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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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죽인 죄로 7년 째 복역 중이던 애나(탕웨이)에게 어느 날 어머니의 죽음이 전해진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72시간의 특별휴가를 받은 애나는 시애틀 행 야간버스에 오르고,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듯 뛰어든 남자 훈(현빈)을 만난다. 마음과 몸이 굳게 닫쳐버린 애나와는 달리 이 남자, 훈은 몸도 마음도 활짝 열려있다. 늦겨울과 한여름의 기운을 가진 남과 여. 가슴팍에 두 손을 꽂은 채 걷던 남자와 땅을 향해 두 팔을 늘어트린 여자는 어느 늦가을, 안개 낀 도시의 모퉁이에서 잠시 서로의 손을 마주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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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화양연화(花樣年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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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끝은 무엇일까, 결혼일까 아니면 이별일까. 만약 그렇다면 애나는 이미 그 종점의 풍경을 모두 봐 버린 여자다. 결혼서약을 깨고서라도 복원하고 싶었던 운명적인 사랑은 그저 ‘남의 포크를 탐하던’ 남자의 이기심으로 종결된다. 애인은 떠났고 남편은 죽었고, 사랑 따윈 필요 없다. 그런 그녀 앞에 바람처럼 훈이 나타난다. 그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남자를 원하면 좋은 남자가, 나쁜 남자를 원하면 나쁜 남자가 되어준다고. 그리고 이 완벽한 타인들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밥을 먹고, 놀이동산에 가고, 시장을 구경하고, 잠깐 서로의 육체를 원하기도 하고, 마침내 입술을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누구랑 같이 있는 거… 좋잖아요?”

사랑의 과정과 결과, 혹은 시간에의 강박을 버리고 72시간이라는 스톱워치를 켠 채 시작되는 는 오히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실험을 시작한다. 애나와 훈은 각각 정반대편에서 출발해 서로 잠시 스쳤다가 결국 또 다시 반대편에 당도한다. 깃털보다 가볍게 살던 남자는 조금 무거워지고, 바윗덩이 같은 추를 안고 살던 여자는 그 무게를 조금 내려놓는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남녀가 짧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지만 같은 순진한 설렘도 같은 막연한 희망도 남기지도 않는다. 는 사건의 축적에는 별 관심이 없다. 드라마틱한 일들은 모두 이 교차점 이전 혹은 이후에 일어난다. 대신 그래프가 교차하는 그 3일간의 여정을 고요하게 응시하며 훈과 애나 사이를 떠도는 미세한 무드의 변화에 집중한다. 쓸쓸함에서 따뜻함으로, 김우형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에 이어 안개의 도시에 출몰한 유령들의 풍경을 탁월하게 잡아낸다.

훈과 애나는 한국어와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한다. 하지만 서로 온전하지 않은 타국의 언어는 훈이 “하오(좋네요)”와 “화이(나쁘네요)”만을 반복하며 애나의 지난 아픔을 경청해주는 장면처럼 언어적 이해를 뛰어넘는 기적을 연출한다. 그렇게 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과 물리적 시간에 대한 사랑의 신화를 깨며 그들은 마침내 ‘늦은 가을(晩秋)’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득 찬 가을(滿秋)’을 맞이하게 된다. 어쩌면 긴 여운을 남기며 애나가 기다리고 있는 건 훈도, 다가올 봄도 아닐 것이다. 인생에서 어떤 사랑은, 가을 날의 짧은 며칠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는 2월 23일 업데이트되는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글. 백은하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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