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영화 의 애나(탕웨이)는 시애틀을 떠도는 안개 같다. 훈(현빈)이 일부러 의문형으로 만들어 거는 말에도 제대로 답하지 않고, 사람을 곁에 두고 자주 넋을 잃는다. 여기 아닌 다른 곳 혹은 과거의 어느 시절에 두고 온 중요한 것 때문에 공백이 생겨버린 애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훈도, 관객도 잘 알 수 없다. 뿌연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도 잘 보이지도 않는 여자. 훈과 애나의 만남 역시 안개 같다. 서로에게 너무나 큰 간절함이었던 이들의 만남은 날이 개면 사라지고 마는 안개처럼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허락된다.

탕웨이는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어떠한 장치 없이 연기한다. 심지어 그녀만을 5분이 넘게 롱테이크로 비추는 엔딩에서는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로지 이 여인의 얼굴에, 어깨에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것이 없이 내려앉아 있다고 말한다. 장면에 내던져진 게 아니라 장면을 가득 채우는 배우의 아우라. 탕웨이는 학습으로는 얻어질 수 없는 그것을 첫 영화 로 획득해 에 이르러 증명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기대되면서도 우려가 앞서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화에 비현실적인 공기만이 감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기자의 노트북 배경화면을 궁금해 하고, 사내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던지는 탕웨이는 그녀의 말대로 “호기심이 강한 어린애” 같았다. 물론 연기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말할 때면 곰곰이 생각한 뒤 답을 할 만큼 신중했고, 자신의 의견에 힘을 더하는 제스처는 대범했다. 다음은 로 한국을 찾은 탕웨이와 나눈 대화다.

“현빈은 천사 같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한국 관객에게는 이후 햇수로 4년만이다.
탕웨이: 벌써 그렇게 됐나.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정도로 많이 흘렀을 줄이야. (웃음) 4년 동안 일하고, 공부하고,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하나 하나 공부하고 터득해야한다. 그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내 안에 남아있는 거라서 그냥 많은 것들을 배우려고 했다. 밥 하는 것도 배우고, 어떻게 하면 착한 딸이 될까 열심히 연구했다. (웃음) 그 사이에 다음 영화 때문에 레이싱 자격증도 땄고. 다양한 것들을 습득해서 내 걸로 만들어가면서 마음이 커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느꼈다. 그러면서 다음 일을 준비하는 거다. 그렇게 나를 채우고 또 텅 비게 만들다보면 새로운 감독이 나타나서 나의 빈 도화지에 뭔가를 그려주니까. 그 때를 기다였다.

의 많은 부분에서 애나는 카메라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영화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의 얼굴만 비추기도 하고 먼 곳에서 그저 서 있는 당신을 가만히 응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대사나 움직임을 거의 쓰지 않고 그녀의 감정을 보여줘야 했는데.
탕웨이: 처음 애나라는 캐릭터를 준비할 때는 많이 힘들었다. 애나는 고향이 아닌 곳에서 이미 10여년을 산 사람이지만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래서 애나가 되기 위해서 그곳에서 생활을 해봐야 했다. 촬영이 시작하기 전에 일찍 시애틀에 갔다. 시장도 가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조금이라도 애나랑 가까워지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정도 그런 생활을 한 후에 애나가 나한테 들어온 순간, 그 생활의 경험을 애나라는 인물에 던졌다. 그렇게 하면서 애나의 삶과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 근데 이건 말로 표현이 되는 어려움인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을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텅 비어있는 사람이 돼야했는데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겠고, 훈을 만나기 전까지 애나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애나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탕웨이: 애나는 한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나왔다. 그러나 이미 누구도 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공허함, 고독, 적막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누군가 나타났을 때 감정은 그런 경험이 없는 이상 상상하기도 힘들다. 집도 없고, 일도 없고, 핸드폰은 있지만 전화할 사람도 없고. 그렇게 마음까지 얼어있던 사람이 훈이라는 불을 만났으니까 처음에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겠나. 뜨거움을 느꼈다가 점점 그 불 속에서 얼음이 녹은 거다. 그래서 지금도 훈은 사람이 아니고 천사가 아니였을까 믿고 있다. 물론 현빈도 천사고. (웃음)

한국 감독, 한국 배우와 영어로 연기하는 건 어땠나.
탕웨이: 김태용 감독님은 영어를 잘 한다. 나보다도 더 잘하는 거 같다. 둘이 영어로 얘기를 하면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 (웃음) 사실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문제가 있을까봐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통역하는 분을 불러서 얘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통역가가 감독과 나의 대화를 못 알아듣는 거다. 그건 지금도 믿을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인데 감독님과 나 사이에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둘만의 언어가 생겼다. 예를 들어 한 테이크를 찍고 나서 감독님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어….탕웨이…” 하고 걸어오신다. 그러면 내가 “아, 오케이. 다시 가죠” 한다. (웃음) 촬영감독님과도 말하지 않고 서로 얼굴만 봐도 알겠더라. 눈빛을 보면 ‘이건 오케이구나, 이건 다시 가야겠구나’가 보였다. 를 하면서 가장 훌륭한 감독과 촬영감독을 만난 거 같다. 거기에 현빈까지. 현장에서 감독님, 촬영감독님, 현빈이 내 옆에 있으면 애나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걸 느꼈다.

“날 연기한 캐릭터로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그렇게 즐거운 현장이었지만 사실 영화의 무게를 가장 많이 지탱하고 있는 애나를 연기하는 건 힘들었을 텐데.
탕웨이: 가장 힘들었던 건 점점 애나라는 인물이 되어가면서, 애나의 마음을 느끼면서 얻은 고통이다. 애나가 됐을 때는 너무나 외로워서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현장에서 훈을 봤을 때는 항상 행복했다. 혼자라고만 생각했던 애나한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훈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훈이랑 손잡고 뛰어다니는 신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 촬영 때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숨이 찼는데 짜릿했다. 밤새 뛰어다녔는데 아무도 없는 공간, 촉촉이 젖은 바닥에 울리는 구두 소리, 트렌치코트 자락이 난간에 스치는 느낌까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뒤에서는 훈이 따라오고, 아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구나, 보호 받는 느낌도 들어서 좋았다. 사실 애나가 훈에게 의지했다는 건 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애나가 그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연기했던 거였다. 어제, 오늘 이렇게 인터뷰 하면서 이제서야 배역에서 나오고 있다. 점점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너무 즐겁다.

작품이 끝났다고 해서 금방 그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는 편은 아닌가보다.
탕웨이: 일이 끝나고 나면 후회를 많이 한다. 계속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렇게 한 거지’ 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흘러야 ‘됐다, 다음에 잘하자’로 정리된다. 그래서 완성된 작품에서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두렵다.

대범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다. 한국에서는 로 방문한 베니스 영화제 때 브래드 피트가 여신 대하듯 악수를 청하고 당신은 여유롭게 응수하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웃음)
탕웨이: 칭찬으로 알겠다. (웃음)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부부는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이안 감독님이 오지 않아서 혼자 있었는데 우연히 마주쳤다. 가 인상적이었는지 너무 잘 봤다고 악수를 청하더라. 그래서 기분 좋게 악수를 했는데 마침 안젤리나 졸리가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다. 아이를 좋아해서 배를 만져 봐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해서 되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웃음) 배가 굉장히 말랑말랑하고 아이가 곧 나올 것처럼 엄청 컸는데 쌍둥이를 임신한 배를 만져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 것 같다. (웃음) 실제 탕웨이는 어떤 사람인가. 영화 외의 경로로는 탕웨이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탕웨이: 사실 사람들이 나를 내가 맡았던 캐릭터들로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탕웨이는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고, 호기심이 강하다. 그리고 굉장히 어린애 같다. (웃음) 구정 때 고향인 항저우 집에 가서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넌 어떻게 2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냐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미쳤냐고 나 늙었다고 어떻게 그 때랑 똑같냐고 했더니 외모가 아니라 말투나 움직이는 스타일 같은 게 너무나 초등학교 때 그대로라고 하더라. (웃음)

“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탕웨이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다”
에서 함께 한 현빈이 출연한 드라마 을 봤다고 하던데.
탕웨이: 다 봤는데 재밌었다. 원래 만화책 보는 걸 미친 듯이 좋아하는데 움직이는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동화적인 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꿈꾸는 걸 좋아한다. (웃음) 그래서 영화라는 작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라는 세계가 남들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 하겠지만 영화 속에서 살아보니까 정말 현실적이다. 어떤 인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행동하니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데 오히려 영화를 하게 되면 훨씬 더 현실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면서 뭔가 완전해지는 걸 느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라든가 감정, 욕망, 무지함 등의 모든 감정들을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하게 꺼낼 수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연기하는 게 좋다. 아마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래서 이 일에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다 (웃음) 영화라는 것은 가장 진실된 환상의 세계랄까.

연기를 처음 시작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탕웨이: 처음 연기의 맛을 느꼈던 건 학교에서였다. 연출학과를 다녔는데 연기를 하는 수업시간이 있었다. 그때 과제가 큰 작살에 찔린 고래를 연기하는 거였는데 (웃음) 계속 ‘나는 고래다, 나는 고래다’ 상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진짜 누군가가 나를 찌르고 있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드는 거다. 그래서 기절해버렸는데 친구들이 내가 진짜로 기절한 걸 모르고 연기한 걸로 생각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 (웃음)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수업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 내가 뭘 한 거지’ 떠올려 보니까 너무 짜릿하더라. 연기라는 게 정말 재미있는 일이란 걸 느꼈다. 그래서 그 뒤로도 친구들은 내게 연기는 마약 같은 거라고 말한다. 너무 많이 흡수하면 중독되니까 작품을 많이 하지 말라고도 하고.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나한테 연기가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제는 영화를 어느 정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는 당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탕웨이: 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실제로 애나와 훈 같은 상황에서 만났을 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 둘이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졌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너무 행복하다. 사랑을 믿지 않거나 사랑에 상처를 받았거나 내게 더 이상은 사랑이 오지 않는다고 절망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보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사랑은 믿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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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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