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현빈, 이 남자는 웁니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현빈, 이 남자는 웁니다
SBS 의 ‘그 여자’는 통속적이다. 편곡도 멜로디도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이 거지같은 사랑’이 나올 때, 문득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그게 백지영의 힘이다. ‘이 거지같은 사랑’을 말할 때도, 그는 오열하지 않는다. 음정은 올라가도 음량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 백지영은 안다. 통곡하고 싶어도 아무 것도 아닌 척 살아야 하는 여자 마음을. 백지영은 통속적인 노래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게 길라임(하지원)의 사랑이다.

그 남자, 김주원(현빈)은 모른다. 길라임이 떨어져 지내자는 이유를. 하지만 현빈은 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그 여자’의 개사곡 ‘그 남자’를 부를 때, 현빈은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부른다. 멋 내려고 음을 끌거나, 어설픈 기교는 안 쓴다. 만 스물아홉의 나이에도, 현빈은 교회 합창단에 처음 온 소년처럼 노래할 줄 안다. 사랑은 잘 모르지만 사랑 때문에 슬픈 소년의 노래. 의 17회에서 길라임이 뇌사에 빠진 뒤, 김주원은 “그리고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라는 의 구절을 보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뭔가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울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건 안다. 그리고, 그게 김주원의 사랑이다.

소년의 순정, 남자의 어깨
[강명석의 100퍼센트] 현빈, 이 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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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남자가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추리닝을 자랑하면 어이없는 허세다. 하지만 현빈은 마치 소년처럼 자기 걸 봐달라며 떼쓰듯 말한다. 그러나 그는 철없는 소년만은 아니다. 김주원의 어머니(박준금)가 “사랑만 먹고도 살 수 있으면 그 길 가라”며 길라임과 이별을 요구할 때, 그는 애써 눈물을 참는다. 그는 슬플 때 울고 싶은 소년이지만, 그것을 참아야 하는 세상도 안다. 사회적으로 어른이지만 사랑에는 소년. 어른스럽지만 여전히 여리고, 일은 잘해도 사랑은 미숙하다. 단단해 보이는 어른의 모습에 소년의 여린 진심이 슬쩍 드러나면서 김주원은 진정성을 얻는다.

그게 현빈의 힘이다. 인정옥과 노희경의 작품에 출연하고, 재벌 2세를 두 번 연기해 두 번 다 성공시킨 배우. 그리고 MBC 의 조폭도 연기하는 배우. 캐릭터마다 전혀 다르게 연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감성으로 캐릭터를 해석하는 쪽이다. 동수도, 강국도, 삼식이도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 일을 잘한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즐기거나, 힘든 상황을 견디는 것이 남자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KBS 의 지오는 혼자 있을 때 펑펑 울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웃을 뿐이다. 세상이 힘들어도, 모두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자신이 묵묵히 견뎌야 한다는 걸 아는 소년. 또는,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는 소년. 널찍한 어깨는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상처에 덤덤한 대신 상처를 애써 참는 슬픈 눈을 가졌다. 현빈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TV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극히 드문 배우고, 그것이 같은 대중적인 멜로드라마와 만날 때 전형적인 설정 안에서 섬세한 감성의 결을 남긴다. 그가 처럼 고전을 리메이크한 멜로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소년의 순정은, 사랑 하나에 목맬 수 있던 예스런 사랑에 어울린다.

통속적인 이별의 순간을 진짜로 만들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현빈, 이 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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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의 17회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 전체에서도 독특한 순간이다. 그의 남자 주인공은 늘 일 잘하고, 자신감 넘치고, 그래서 여자를 리드했다. 반면 현빈은 김주원을 일은 잘하지만 내면에는 사랑과 자신의 어머니가 준 것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21살’ 감수성의 남자로 연기한다. 다른 남자가 김주원을 연기했다면, 길라임과 같이 눕겠다며 떼쓰는 김주원의 모습이 귀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현빈은 김은숙 작가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자다.

두 남녀의 몸이 바뀐 뒤, 은 에피소드는 많지만 스토리는 사라졌다. 계급문제도, 게이의 성정체성 문제도 의미 없을 만큼 날아갔다. 썬(이종석)은 게이가 아니었다 해도 전개에 큰 지장은 없다. 계급의 처절함을 보여 준다기엔 김주원의 어머니가 가끔씩 등장해 두 사람을 가로막는 건 숱한 드라마에서 본 풍경이다. 남은 건 김주원과 길라임의 ‘밀당’과 ‘사랑 고백을 다르게 말하는 100가지 방법’ 같은 대사들이다. 2회에 한 번쯤 김주원의 어머니가 두 사람을 흔들면, 그들은 갈등-화해-애정 신-알콩달콩한 연애를 반복한다. 이야기는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둘의 에피소드로 소소한 재미를 반복하다 갑자기 피치를 높인다. 17회에서 스태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설치물을 그대로 통과해 빠르게 달리다 길라임의 차에 ‘갖다 박은’ 운전자의 등장은 위기를 위한 위기다. 개연성은 없다. 대신 에피소드를 통해 쌓은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만 남았다.

그러나 마치 ‘그 여자’와 ‘그 남자’처럼, 17회는 시청자의 눈길을 멈췄다. KBS 에서도 동화를 읽던 이 남자는 에서도 를 읽는 그 순간 오열하지도, 굳게 눈물을 참지도 않았다. 대신 울기 직전, 그렁그렁 맺힌 눈물로 통속적인 비극을 모든 걸 견뎌내는 여린 소년의 진심으로 바꿨다. 김은숙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를 뛰어넘어, 현빈은 자신의 연기로 캐릭터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모두가 사랑의 통속성을 말할 때, 그 남자가 나타났다. 난 그 모든 게 처음 겪는 진심이라며 우는 남자가.

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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