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슬프고, 한편 잔인하다. 30일 언론시사에서 공개된 영화 에서는 다양한 정서가 느껴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수(엄정화)를 중심으로 그녀가 휘말리는 사건들은 스릴러와 미스터리, 액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표절 의혹에 시달리는 백희수는 슬럼프를 딛고 새 작품을 발표하지만 그것 역시 표절 논란에 휩쓸리고, 집필을 했던 시골 별장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하우스 호러와 미스터리,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물 흐르듯 하나의 영화에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는 호러물임에도 미스터리의 끈을 놓지 않는 동시에 드라마도 포기하지 않는다. 또 한국의 스릴러, 호러물이 흔히 범하기 쉬운 충격적인 반전을 무리하게 노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이야기를 짜나간다. 분열증적인 모습과 히스테리를 오가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잃지 않은 엄정화는 원톱 주연의 몫을 해냈고, 영화에 참여한 모든 주, 조연에게서 내공이 느껴지는 고른 연기도 인상적이다. 다음은 영화가 공개된 후 이뤄진 기자간담회의 내용을 정리했다.에는 표절, 살인, 미스터리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 한다.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이정호 감독: 영화는 한 작가가 스스로 믿지 못할 일을 겪은 후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후반부에 각자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잊고 있는 혹은 잊혀진 기억들이 까발려졌을 때 겪게 되는 상황들이 실제로 있을 법하게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표절이라기보다는 장르영화의 클리셰를 많이 썼다” 전작인 때도 극을 이끌어나가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 에서도 영화의 중심에 섰다. 연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한편 부담도 됐을 것 같은데.
엄정화: 개봉 때가 되니까 걱정이 좀 되긴 한다. (웃음) 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재밌게 공감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영화를 믿고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영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쁘고, 열심히 하고 싶었다. 의 순정이는 딸을 잃은 엄마이기 때문에 모든 감정에 슬픔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의 희수는 자기의 욕망,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더 큰 여자다. 실제로 내가 일을 못하게 됐을 때를 생각해보고 표절처럼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는다면 어떨까, 엄정화 자신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힘든 부분들까지도 좀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여러 설정들에서 나 등의 공포영화가 연상되기도 했다. 표절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정호 감독: 영화를 처음 기획하면서 사실 이런 질문도 예상했다. 시나리오 쓰면서도 많이 고민했는데 영화에는 클리셰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 마을 분위기나 를 보진 못했지만 그런 작은 부분들마저도 표절 아니냐고 말씀하신다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릴러, 공포, 미스터리 같은 장르영화에는 기본적인 규칙과 동선이 있다. 그런 것들, 즉 클리셰를 이번 영화에서는 많이 썼다. 표절이라는 것은 대사에도 나오지만 본인 스스로 의식하고 행하느냐 의식하지 않고 예전의 기억들이 무의식을 통해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나오느냐 하는 경계에 있다고 본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구분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판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본인만이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양심에 달린 것 아닌가싶다.
외딴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배우들에게는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고된 촬영이었을 것 같다.
이정호 감독: 모든 장면들이 어렵고 힘들었다. 보시다시피 영화 안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배치되어 있다. 가장 공들인 부분도 서로 다른 장르들을 물 흐르듯이 하나의 영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였다. 중반부에 백희수가 2년 동안 글을 쓰지 못한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되는 장면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 엄정화 선배의 촬영 당시 에너지가 눈물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건 후반부의 액션 신이다. 지하실에서 여러 명의 인물들이 집에 있는 초자연적인 기운에 트라우마가 하나씩 폭발되면서 아수라장의 카오스에 이르는 과정을 공들여 찍었다. 아마 그때 배우들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거다.
엄정화: 수중 신도 많이 힘들었다. 오래 숨을 참기가 어려웠고, 물속에 들어갔을 때 공포가 대단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어둡게 나와서 서운하다. (웃음) 격투신도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별장 안에서 집의 기운 때문에 공포를 느끼거나 딸과 함께 있는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이 매순간 어려웠다.
류승룡: 엄정화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같이 수중 신을 찍었는데 폐쇄공포증이 있어 힘들었다. 나에 비하면 엄정화는 인어공주다. (웃음) 극중에서 백희수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오열하는 걸 지켜볼 때 역시도 힘들었다. 마른 울음,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슬픈 울음에 마음이 아팠다.
“엄정화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몇 안 되는 배우” 요즘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의 비중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데 엄정화를 원톱으로 한 선택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이정호 감독: 올해도 사실 남성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데, 는 애초에 시작부터가 여자가 주인공이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가진 불안한 정서 그리고 모성이 이야기에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자 작가로 설정했다. 또 엄정화는 에서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 이미지에서 벗어나 엄정화라는 배우에게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 기획하면서 그런 엄정화의 또 다른 영역을 같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여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이 장르별로 조금씩 있기 마련인데 엄정화는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극중에서 유난히 남자들과 격투 신이 많은데 가장 힘들게 한 배우는 누구인가?
엄정화: 사실 남편 역을 맡은 류승룡이 제일 힘들게 했다. (웃음) 물에 빠진 희수를 구하는 장면에서도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너무 아팠고, 또 뺨을 맞고 코피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상대배우가 이렇게 든든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느꼈다. 이런 남편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웃음)
엔딩 크레딧을 보니 목소리 출연 최강희라고 나오던데.
이정호 감독: 최강희는 프로듀서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고, 의 시나리오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후반 작업 때 도와줄 게 있으면 하고 싶다고 해서 목소리 출연에 흔쾌히 응해줬다. 영화 속에서 백희수를 중심으로 속삭이는 집안의 소리들을 최강희가 해주었다. 아마 보시는 분들은 여러 가지 효과를 넣어서 알아듣기 쉽지 않겠지만 시도해보았다.
최근 스릴러를 표방한 한국영화들이 많이 개봉을 했는데 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정호 감독: 스릴러 영화들이 많이 나왔지만 우리 영화만의 차별성을 가지고자 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여러 가지 장르들이 백희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관통하도록 중점을 두었다. 기존의 정통 스릴러에서는 좀 벗어나 있고, 하나의 영화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먹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니까 관객들도 재밌게 봐줬으면 한다.
류승룡: 우리 영화는 좀 신선한 충격이 될 거 같다. 영화가 여러 가지 면에서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둘 거라고 확신한다. 4월에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얼마 없는데 선전하길 바란다.
사진제공. 에코필름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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