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건대, 그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웰컴 투 동막골>의 인민군 소년 병사는 국군 병사들과 우정을 나눴고,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는 여자가 되길 원하는 천하장사였다. 쉽게 볼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이들 캐릭터에 익숙해질 즈음, <우리 동네>의 연쇄 살인마는 무표정한 사이코패스의 얼굴로 다가왔다. 굳이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따지면 비정상에 가까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배우로서의 욕심, 혹은 자의식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작품을 선택할 때 제 뜻보다는 남들이 바라는 쪽으로 가면 의욕도 조금은 떨어지기 때문에 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해요. 내가 이번에 한 연기는 이래서 타당하고, 여러분을 이렇게 설득시키겠다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연극 <에쿠우스>를 통해 신경증에 걸린 소년 알런 역에 도전하는 것 역시 류덕환이 가진 연기에 대한 욕심, 더 정확히 말해 연기를 잘하겠다는 욕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연기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우정(<웰컴 투 동막골>)을, 남자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천하장사 마돈나>)을, 그리고 말에 대한 숭배의 감정(<에쿠우스>)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고 있다.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대중 역시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자의식 강한 배우는 좋은 배우가 된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리스너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다음의 뮤지션들처럼.
“뮤지크 소울차일드의 모든 음반을 다 좋아해요. 자신의 감정에 빠져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가사에 맞게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게 좋아요. 앨범마다 느낌도 다르고 음악 스타일도 다른 게 마치 연기하는 사람 같아요. 가령 < Soulstar > 앨범의 ‘For the night’ 같은 경우 여자에게 오늘 밤을 같이 보내자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내뱉듯 편하게 말을 하죠.” 소울에 기반한 스타일에 탁월한 그루브 감을 결합한 뮤지크 소울차일드는 소위 ‘소몰이’라 불리는 바이브레이션 과잉의 뮤지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보컬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으로서 류덕환이 추천한 < Luvanmusiq >의 ‘Buddy’를 수많은 래퍼들이 리믹스한 건 우연이 아닌데, 테크닉의 과시보다는 가사 전달에 방점을 둔 그의 음악은 말의 호흡과 음악 리듬이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싫을 정도로 슬픔을 잘 표현하는 밴드인 것 같아요.” 아마도 이것은 넬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일 것이다. 넬의 등장으로 한국 음악계의 멜랑콜리는 한층 더 깊고 넓어졌다. 하지만 비교적 뚜렷한 성향 안에서도 < Separation Anxiety >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안으로 침잠하는 느낌이 강해 더욱 깊은 애잔함을 준다. “하필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넬의 음악을 접했어요. 안 그래도 속상한데 < Separation Anxiety >을 들으니 너무 슬픈 거예요. 곡을 차례대로 듣는데 4번 트랙까지 울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참 독특한 게 ‘기억을 걷는 시간’ 같은 경우 정말 모든 감정을 지우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데 슬픈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게 참 독특한 매력이었어요.”
“이 앨범은 정말 자취방에 있는 한 구질구질한 남자애가 자신의 인생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귀찮은 듯 얘기해주는 그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그게 귀에 참 잘 들어와요. 이 사람이 이래서 아팠구나, 이런 삶을 살고 이렇게 참아냈구나. 그러면서도 정말 독특한 게 마치 술자리에서 남의 인생을 듣는 듯 편한 느낌의 가사에 탁월한 사운드 메이킹이 결합했다는 거예요. 어떤 느낌이냐면 사운드 프로바이더스 같은 뮤지션의 멜로디에 우리말 가사가 덧씌워진 그런 느낌? 그러면서도 사운드와 가사 사이의 위화감 없이 어색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죠.” ‘핫’한 힙합 뮤지션들을 배출해냈던 PC통신 동호회 SNP(Show `n` Prove) 출신 크루시픽스 크릭의 데뷔 앨범으로 참여 보컬들의 라임도 탁월하지만 크루시픽스 크릭이라는 프로듀서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힙합 인스트루멘탈도 가득하다.
“역시
“너바나와 같은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에 대한 류덕환의 정의는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것이다. 오버드라이버 기타 굉음과는 거리가 먼 어쿠스틱 사운드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너바나라니. 하지만 “너무나 다른 음악을 하지만 단순한 코드, 단순한 멜로디, 단순한 창법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너바나와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보면 그의 의견도 어느 정도 수긍할만하다. 너바나처럼 극렬한 방식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가사 역시 그렇다. “‘Homesick’ 같은 경우 도심의 조명 아래서 아픔도 겪고 돈도 많이 못 벌지만 가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직설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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