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식 예능을 즐긴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느낌이다. 공중파에서의 지분을 착실히 늘려나가던 시기에 MBC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에서 “공중파에서 욕만 가능하면 나도 유재석 급”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욕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과되지 않은 직설화법을 공중파 예능에서 구사하고 있다. 때로 그것은 MBC <세바퀴>에서 이경실의 이혼 경력을 마일리지라는 재치 있는 표현으로 재빨리 공론화시켜 토크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녹색지대 권선국의 이혼을 아무렇지 않게 밝힐 때는 재미보단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즉 공중파에서 가능한 직설 혹은 독설의 최대치의 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그의 유머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지만 조금 삐끗하면 줄에서 떨어질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오빠밴드’에서 멤버들을 챙기는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 건 그래서 흥미롭다. 스스로는 “얄팍한 음악적 지식이 있다는 이유로 매니저라는 생뚱맞고 날로 먹는 캐릭터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음악과 밴드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라디오 스타’ 너머 김구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모와 성민 같은 동생들과 ‘유마에’ 유영석을 툭툭 건드리는 공격적인 농담이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크게 거슬리지 않는 건 아마 이러한 바탕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오빠밴드 멤버들이 합주하면 좋을 노래의 추천을 부탁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미국을 동경하던 이모 덕에 블론디의 ‘Call Me’나 립스 잉크의 ‘Funky Town’ 같은 곡을 즐겨 들으며” 팝 마니아가 된 그는 그 프로 밴드의 공연 넘버로도 손색없을 다섯 곡을 추천해줬다.




1. Styx의
“우리 오빠밴드에 동질감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80년대에 소위 ‘음악 좀 듣던’ 사람이라면 이 노래의 위대함을 알 거에요.” 김구라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까지 쓰며 가장 먼저 추천한 곡은 7, 8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국 록밴드 스틱스의 ‘Best Of Times’다. “전성기 시절 들국화의 역사적인 라이브 음반에도 수록되어 386세대에겐 더 친숙한 노래일 겁니다. 오빠밴드의 음악적 리더 ‘유마에’가 오빠밴드의 레퍼토리로 일찌감치 탐을 낼 정도죠. 제가 볼 땐 멋진 피아노 연주가 곡의 핵심이라 늘그막에 자기 파트에서 튀어보려는 사심이 들어간 것 같지만.” 그의 말대로 맑은 톤의 건반 연주에 역시 청아한 보컬이 얹히며 멜로디 라인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곡으로 코러스의 후크가 인상적이다.



2. Bon Jovi의
‘오빠밴드의 전천후 플레이어 홍경민을 위해 선택한’ 두 번째 추천곡은 본 조비의 ‘Never Say Goodbye’다. “드럼은 기본에 기타, 베이스, 색소폰까지 정말 어딜 가도 굶어죽지 않을 친구죠. 흔히 한국의 리키 마틴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봤을 땐 한국의 본조비가 더 잘 어울려요. 실제로 경민이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Good!’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LA 메탈 역사에 있어 불후의 명곡으로 꼽힐 ‘Livin` On A Prayer’가 포함된 앨범에 수록된 록발라드로 본 조비 특유의 허스키하면서도 팝적인 느낌의 보컬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곡이다. 특히 곡의 제목이기도 한 ‘Never Say Goodbye’라는 후렴구는 쉬운 멜로디 때문에 귀에서 맴도는 중독성이 있다.




3. Meredith Brooks의
‘오빠밴드’의 수확 중 하나는 흔히 패셔니스타로만 알려진 서인영이 상당한 수준의 보컬리스트라는 걸 느끼게 해줬다는 점인데 메레디스 브룩스의 ‘Bitch’는 그런 그녀를 위해 추천한 곡이다. “기타리스트이자 여성 싱어 송 라이터, 그리고 록계의 이경실이라 칭하고 싶은 메레디스 브룩스의 대표곡이죠. 그녀의 날렵한 기타와 도발적인 가사, 대중적인 멜로디가 잘 어울려 그녀에게 세계적인 성공을 안겨다 주기도 했는데 비록 인영이가 그녀처럼 기타 치며 노래하지는 못 하지만 ‘돌아이’적인 당당함만큼은 그녀를 압도할 수 있을 겁니다.” ‘I`m a bitch’라는 도발적인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을 부정하는 내용의 곡으로 역시 여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언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왓 위민 원트>의 OST에도 수록됐다.



4. Huey Lewis and The News의
밴드의 매니저답게 김구라는 멤버 각각에 어울리는 곡을 골고루 추천해주려 했는데 ‘1980년대 가장 미국적인 사운드를 구사한 록밴드’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Stuck With You’는 ‘아동탁’ 탁재훈을 위한 곡이다. “저는 탁재훈을 ‘할리웃’이라고 불러요. 빠듯한 공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도 여유 있게 샤워하고 드라이까지 하며 나타나거든요. 항상 느물느물한 그에게 잘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무인도에서 ‘짱 박히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남자의 로망이잖아요. 안 그래요?” 영화 <백 투 더 퓨쳐>의 주제가이자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The Power Of Love’에서 알 수 있듯 휴이 앤 더 루이스의 음악은 기타 스트로크와 보컬의 악센트가 기막힌 그루브를 만들어내는데 이 곡 ‘Stuck With You’ 역시 비교적 느린 템포에서도 흥겨운 그루브가 돋보인다.



5. Steve Vai의
김구라가 앞서 추천한 곡 중 사실 오빠밴드의 역량으로 쉽게 카피할 수 있는 곡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타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스티브 바이의 연주곡 ‘The Crying Machine’이야말로 가장 부담스러운 곡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록계에서 가장 화려한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는 록 기타리스트들을 꿈꾸는 기타 키드라면 한번쯤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빠밴드의 천재 기타리스트 정모에게도 예외는 아니죠.” 그의 설명대로 기타 키드라면 완주를 욕심낼 곡으로 스티브 바이 특유의 테크닉이 불을 뿜는다. 특히 단순한 테크닉 과시가 아니라 마치 기타를 이용해 이야기를 하는 듯한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인 곡이다.


“라디오 정통 팝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김구라│오빠밴드의 공연 넘버로 손색없는 음악들
“운이 좋아 얻어 걸린 거죠.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의 설정이 자연스럽게 나의 얄팍한 음악 지식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줬으니까”라고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김구라에게 있어 음악은 방송 생활 중에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주제다. “지난번 <음악여행 라라라>를 하차하면서 아쉬운 감이 많았어요. 기회만 주어진다면 지극히 상투적인 다짐이지만 음악적 얘기와 대중성이 공존하는 음악프로를 꼭 하고 싶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라디오에서 정통 팝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죠.” 공격적인 독설로 기억되는 그가 이렇게 어떤 대상에 이토록 애정을 보이는 것은 어색한 한편, 그래서 더 기대감을 준다. 상대방을 공격해 웃음을 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음악에 대한 무한애정을 정색하고 드러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날 때 과연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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