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비담에게는 별명이 많다. 짐승, 초딩에 이어 닭고기를 좋아한대서 ‘백숙비담’, 영화 <스타워즈>를 떠올리게 하는 ‘신라판 아나킨 스카이워커’까지 새로운 별명이 붙을 때마다 비담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 아래 분석된다. 만화 같은 캐릭터 뒤에 숨은 복잡한 운명의 소유자 비담의 두 얼굴을 연기하는 배우 김남길에 대한 궁금증 역시 나날이 더해 간다. 비담에게는, 그리고 김남길에게는 그동안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까. 흙먼지 가득한 <선덕여왕> 세트장에서 땅거미 내리는 것도 잊은 채 김남길과 나눈 대화를 공개한다.

“미실과 첫 대면하는 장면에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선덕여왕>에서 비담의 이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비법은? (강창진 ckdwls***)
김남길:
분장을 까맣게 해서 그렇다. 미백했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던데 사실은 치과도 잘 안 간다. (웃음) 군것질을 잘 안 하고, 커피도 거의 안 마신다. 밥만 많이 먹는다. 분장을 워낙 까맣게 하니까 상대적으로 이가 하얗게 보이는 건데 그건 나뿐 아니라 다들 그렇다. 그리고 어두울 때는 특히 조명을 환하게 쏘니까 이에 반사되어 더 하얗게 보인다.

비담이라는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나 소품들이 있다면. (feverchris)
김남길:
<슬램덩크>의 강백호. 그리고 같은 작가의 <배가본드>를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는데 대본을 읽고 문득 그 느낌이 생각나서 다시 봤다. 또, <열혈강호>까지 몇몇 캐릭터를 합쳐 외형적인 분위기와 내면적인 느낌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화적인 면을 다 합쳐 만든 캐릭터라 사실 허구적인 느낌도 제일 강하고 정통 사극에서 가장 현실성이 없기도 하지만 그 신선함을 좋아해주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선덕여왕>에 자신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며 “와 나 소름 돋았어!”라고 느낀 장면이 있었다면? (peacecb)
김남길:
‘보면서’보다는 연기 ‘하면서’, 가면을 쓴 비담이 미실과 처음 재회하고 독대하는데 미실은 극 자체에서도 워낙 센 인물로 나오는 데다 (고)현정 누나가 워낙 포스가 있는 선배니까 엄청 긴장했다. 나중에 누나가 ‘심장 떨렸다’고 말해주시긴 했지만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안 밀리려고. (웃음) 그나마 가면을 쓰고 음성과 눈으로만 연기하면서 표정을 커버할 수 있었던 덕분에 비담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어느 순간 가면을 벗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 거지, 만약 초반부터 가면을 벗고 했다면 잔뜩 쫄아서 “어, 엄마…살려주세요” 했을 것 같다. (웃음)

“백숙보다는 치킨을 더 자주 먹는다”

사실 그 신에서부터 비담의 말투나 눈썹의 움직임, 표정 같은 것들에서 미실과의 유사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지. (jihyun2122)
김남길: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미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자체만으로도 긴장감 있게 봐줄 수 있었겠지만, 거기서 미실의 말투나 패턴을 따라해 본다면 그게 조금 허구성이 있다 할지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비담이 미실을 직접 본 적도 없고, 덕만이나 유신이 똑같이 흉내를 내서 알려줬을 리도 없지만 다행히 감독님도 재미있어 하시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 물론 그런 장치가 극을 너무 재미 위주로만 끌고 가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씩 감독님과 얘기를 맞춰 가면 될 것 같다.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애드리브로 추정되는 연기를 종종 보여주는데, 극에 가장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는 애드리브가 있다면? (임미경 rl**)
김남길:
애드리브는 감독님이 많이 허락해 주신다. 재미있는 것, ‘비담스러운’ 게 뭐가 있을까 상의를 하기도 하고, 애드리브의 적절한 선을 잡아주신다. 이를테면 남들은 심각한 분위기로 잠입하고 있는데 비담은 코를 파는 애드리브를 해도 감독님이 컷을 하지 않으신다는 건 괜찮다는 의미다.

비담은 닭고기를 좋아하던데 실제로도 그런지. (김수정 sjlov***)
김남길:
좋아한다. 백숙도 좋아하지만 자주 먹게 되는 음식은 아니니까. 간단히 치킨 집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먹을 때가 많다. 맥주는 곁들이지 않는다. (웃음)

비담에게는 <스타워즈>를 떠올리게 하는 ‘신라판 아나킨 스카이워커’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래서 신라판 아나킨에게 궁금한 것은, 살면서 이 사람의 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 있었는지? (sj678085)
김남길:
멋진 별명이다. 그런 거 좋아한다. (웃음) 음, 남자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우리 아버지를 제일 존경하지만 ‘아버지’같은 느낌을 떠나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서태지가 떠오른다. 존경보다는 존중에 더 가까운 건데, 서태지의 음악적인 부분을 워낙 좋아하고, 그 사람이 느끼는 방식으로부터 내 연기가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서태지가 대중문화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많은 흐름을 바꿔놓은 것처럼 연기적인 면에서 그런 걸 본받고 싶다.

“김남길이란 이름은 나에게 잘 맞는 옷”

‘이한’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다가 ‘김남길’이라는 본명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지연 mong2***)
김남길:
사실 굉장히 큰 결정이었다. <굳세어라 금순이>에서도 ‘이한’이었고 <연인>에서도 ‘이한’이었는데 드라마의 반응이 좋았던 덕에 스포트라이트도 한두 번쯤 받은 뒤였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알려왔던 이름을 버리고 가는 데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강우석 감독님이 <강철중> 크레딧을 어느 이름으로 올릴지 물어보려 전화하셨을 때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어차피 배우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연기니까 사람들이 어정쩡하게 알 바에는 아예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배우로 봐 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예명을 쓸 때와 본명으로 돌아왔을 때의 본인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o604123)
김남길:
예전에는 ‘이한’이라는 이름을 써도 현장에서 사람들이 부를 때 나인 줄 몰랐던 적이 많다. 내 것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던 것 같다. 본명을 쓰기 시작한 뒤에는, 사실 이 이름이 좀 촌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감정 잡는 신에서 누가 “야, 남길이 감정 잡으니까 좀 조용히 해라”라고 해서 스태프들이 다 웃어버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남길아!” 하면 바로 예에 하고 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서 좋다.

팬 카페에 글을 남길 때 자신을 ‘아빠’, 팬들을 ‘딸’로 지칭한다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남혜림 had***)
김남길:
내가 팬 카페 접속하는 걸 보고 어떤 선배가 “넌 아무리 피곤하다고 난리를 치다가도 거기 들어갈 때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하더라. 원래 가정이 편안해야 밖에서 일할 때도 마음이 편한 거고 내가 연기하는 거나 출연했던 작품들을 좋아하는 분들만 모인 곳이니까 팬 카페를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안에서는 내가 가장인 거다. 그래서 나는 ‘아빠’, 여성 팬들은 ‘딸’, 남성 팬들은 ‘아들’이 됐는데 요즘 <후회하지 않아> 이후로 오랜만에 ‘아들’이 많아졌다.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가 “남자 팬이 ‘아들’이면 나도 니 아들이냐”라고 하시더라. (웃음)

요즘 촬영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얼마 전 팬 카페에 글을 올렸던데.
김남길:
하하, 맨날 눈팅만 하고 나왔는데 운영진들이 글 좀 쓰라고 하도 뭐라고 해서. 사실 팬들이 현장에 왔다가 알천(이승효)이랑도 몇 번 보고는 “알천 오빠는 팬들한테 잘 해준다, 글도 잘 써준다”고 비교하길래 “아 그럼 알천 팬 카페 가입하던가!” 그러다 또 낼름 써버렸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원래 대중들이란 다 그렇게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좋아하는 건가. (웃음)

[스타ON]은 <10 아시아>(www.10asia.co.kr)와 네이트(www.nate.com)가 함께 합니다.

인터뷰. 최지은 (five@10asia.co.kr)
인터뷰.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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