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월-화 밤 9시 55분
<선덕여왕>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미실(고현정) 때문만은 아니다. 덕만(이요원)의 영웅담을 그린 사극 안에 들어 있는 ‘모험무협활극성장드라마’의 특질을 제 한다고 해도 현재 방송 3사에서 방영중인 모든 드라마 중에서 가장 능구렁이 같은 호흡을 자랑하는데 그 비결이 있다. 비담(김남길)이 복야회가 뭔지 몰라 답답해해도 한참 뒤에야 설명해주는 것과 똑같다. 시청자들은 언제 다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기다리며 불안초조, 답답함에 빠져 지칠 즈음 마지막 몇 분 동안 이야기에 흠뻑 적셔놓는다. 어제도 시작하고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안 봐도 될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형용하기 어려운 배경음악을 동반하는 유신랑(엄태웅)과 덕만의 가슴 저미는 로맨스는 보는 이를 답답하다 못해 가슴을 짓이길 정도로 지겹게 반복됐다. 사실 <선덕여왕>을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어제 바위가 갈라지는 장면만으로도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말할 수 있다. 최근 아이돌 전성시대를 반영한 듯한 복야회의 액션 합은 <뮤직뱅크>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또 덕만 일행은 복야회의 산채에 기껏 잠입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는 중앙 광장에서 집결해 은폐, 엄폐하는 흉내를 낸다. 아무리 촬영 편의를 위한 것이라 한다 해도 동원 예비군도 그렇게 막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극의 주 시청자 층인 중장년층 남성은 물론 특히 이삼십 대 여성에게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덕만의 잭스페로우 풍 헤어스타일로 대변되는 어색한 장면과 상황 등을 보며 낄낄거리다가 또 늘어지는 이야기를 보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도 어느덧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는 데 있다.
글 김교석

MBC 밤 11시 20분
아마 발 빠른 방송사는 미리 서거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급하게 편성된 TV 평전이 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등장해 몇 번의 죽을 고비와 낙선을 겪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과정을 돌아보며 87년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하지 못한 과(過)와 이후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뤄낸 공(功)을 다시 복기하는 것이 평전이 보여준 전부였다. 물론 치사하게 긴급 편성된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공격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코멘트와 아전인수의 해석 없이도 충분히 감동적으로 볼 수 있었던 고인의 삶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팩트의 나열이 군더더기 없는 진실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정적들이 ‘잃어버린 10년’의 첫 5년으로 기록하는 재임기간 동안 고인은 IMF로부터 빌린 구제 금융을 청산하고, 평양 방문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 현 정권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국가 브랜드를 드높였다. 참 깔끔한 정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건조한 구성 때문에 울고 싶은 이의 뺨을 때려주진 못했지만 프로그램 말미, 역시 하나의 자료로 등장한 대통령 이임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전 한 번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생각해보면 고인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거꾸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시계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 편히 쉬소서, 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하수상한 시절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글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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