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엔 2009년 상반기 엔터테인먼트 결산, 지난주엔 상반기 드라마 결산, 그리고 이번 주는 KBS 얘기다. 물론 이번 기획이 상반기 언론 결산은 아니다. 하지만 TV 속 예능과 드라마가의 상반기 트렌드가 TV 밖 현실의 모습을 어느 정도 일관되게 반영한 것처럼 KBS가 국민이 지켜줘야 할 ‘고봉순’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권의 ‘김비서’가 되는 과정 역시 현 정권이 갖고 있는 어떤 경향을 다른 어느 방송사보다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갈수록 정권에 밀착한다기보다는 닮아가는 KBS의 메커니즘과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잊지 말아야 할 KBS 수난과 변질의 기록을. 여기에 현재 KBS의 문제점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PD 집필제에 대한 김옥영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의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더했다. 아마도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당신의 목소리 역시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KBS는 뉴스의 천국이다. 물론 다양한 뉴스를 발 빠르고 심층적으로 전달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다양한 뉴스를 어떤 방송사보다 발 빠르게 만들어 낸다. 최근 며칠 사이에 한쪽에선 연봉 계약직원에 대한 정리해고 방안이 나오고, 한쪽에선 일선 PD와 기자들이 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진행했고, 다른 한쪽에선 PD 집필제에 대한 여러 작가협회의 반대 성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KBS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혼돈이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한 이병순 사장이 혹 아마추어처럼 여러 분야를 통솔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실수를 노출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모든 일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장의 논리가 KBS 전체를 장악하는 지배적 담론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시장주의와 효율성의 함정

KBS는 공영방송입니까?│상식의 브레이크가 망가진 관용마차
등 11개 프로그램에서 PD 집필제가 시행되면서 콘텐츠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
최근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PD 집필제 시행에 대한 KBS의 근거는 PD 역량 강화와 경비절감이다. PD 역량 강화란 결국 기획과 촬영, 편집에 원고 작성까지 가능한 만능 플레이어를 만들겠단 뜻이기에 결국 KBS가 PD 집필제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인적 효율성과 금전적 효율성이다. 이것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낸다는 시장주의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시장주의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시장의 논리가 공영방송 KBS가 추구해야 할 공익의 영역까지 지배할 때 발생한다. 효율성의 영역에선 20의 투자로 프로그램이 100의 퀄리티를 내던 것을 10의 투자로 60의 퀄리티를 낼 수 있다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게 된다. 심지어 양에 있어서는 똑같이 60분 분량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더욱.

이런 선택은 흔히 합리적이라는 말로도 번역되지만 경제적인 효율성과 행위의 합리성이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가령 시청자가 공영방송을 통해 기대하는 프로그램의 퀄리티가 90이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위 합리성의 사고로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통이 생긴다. 물론 KBS 구성작가협회부터 최근의 라디오작가협회까지 줄기차게 주장하고 걱정하는 것과 달리 작가 없이 PD의 역량만으로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유지할 확률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올해 초 작가가 나간 후 충원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미디어비평>은 최근 신문의 한 칸 만평이 과거의 네 컷 만화를 대신했다는 주장을 했다가 전국시사만화협회로부터 “네 칸 만화가 광수생각, 비빔툰처럼 다른 유형의 형태로 발전한 것임은 취재를 위한 기초적인 조사와 확인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구성작가의 역할 중 취재를 위한 자료 조사가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영방송? 제작비 절감만이 지상 과제

왕종근이 10여년간 진행하던 도 최근 제작비 절감을 위해 내부 인력으로 교체되었다.
왕종근이 10여년간 진행하던 도 최근 제작비 절감을 위해 내부 인력으로 교체되었다.
이처럼 그 자체 시장 논리에 기댄 PD 집필제를 고집하는 KBS가 작가협회의 반발, 특히 방송작가의 생존권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귀를 기울일 것 같진 않다. 실례로 최근 KBS 경영개혁단은 사내 연봉 계약직 400여 명에 대해 30명만을 무기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로 흡수하거나 계약 해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한 15년차 연봉계약직 사원은 사내게시판을 통해 “몇 푼의 돈과 신분 보장 문제를 떠나서 지난 15년의 제 삶이 깡그리 무시당하고 지워져버리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좌시할 수 없음”을 밝혔지만 경제적 효율성의 참고 데이터에 인격적 존중 항목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현재 KBS의 운영 방식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노동 유연성을 확대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서울 한 가운데에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조금 높여주면 신도시 몇 개를 만드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듯, 지난 해 가을개편에서 11명의 외부 MC를 내부 인력으로 교체하면서 교체 인원의 프로그램 진행 능력에 대한 근거 제시보단 연 25억 원 제작비 절감 효과만을 말하는 KBS에게서 무엇이 더 좋은 방송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KBS의 변화는 그래서 한 개별 방송사의 일시적 변화라기보다는 전국가적인 공공역역에 스민 경제논리가 방송까지 장악했을 때 나타나는 총체적 국면의 일환이다. 사실 이런 정부와의 유사성이야말로 현재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일선 기자들마저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봉하마을 주민들의 출입 저지로 KBS는 마을 어귀에서 뉴스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봉하마을 주민들의 출입 저지로 KBS는 마을 어귀에서 뉴스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KBS는 지난 2월 용산참사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보다는 철거민의 화염병과 시너를 문제 삼은 정부의 주장을 거의 곧이곧대로 기사에 인용한 반면, ‘경찰의 물대포 때문에 불씨가 없었다’는 피해자 유족들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정부에 밀착한 편파적 언론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정부와의 밀착성보다 더 근본적인 건 앞서 말한 유사성이다. 정부처럼 경제영역의 시장논리로 움직이는 KBS에게 있어 굳이 회사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나 지켜야할 당위는 없다. 최근 본부장 및 보도국장 불신임투표에 참가했던 한 KBS 기자는 “정연주 사장이 있을 땐 삼성이든 뭐든 내가 취재해서 가져온 아이템이 방송 안 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데스킹이 지난해졌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누적되자 일선 기자들의 자기 검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현재 KBS가 언론의 비판 기능을 상당히 상실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지난 달, 봉하마을과 덕수궁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KBS PD와 기자들이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없었던 건 이러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다.

그래서 KBS의 정부 친화적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은 결국 공공영역의 합리성을 대신한 시장논리에 대한 비판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시장논리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경제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대신하는 것이 문제다. 즉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KBS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시장주의를 거부하는 ‘좌빨’이라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바깥의 약자들의 목소리까지 전달할 수 있는 공공성이 시장논리에 훼손당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시청자의 공익적 요구에 부응하는 존재라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 KBS의 현재에 대한 비판은 좌파냐 우파냐, 진보냐 보수냐는 문제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 논리가 모든 사회영역에 퍼져나갈 때 일종의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공영방송 KBS가 오히려 시장 논리를 내면화했다는 건 정치적 지향성과 상관없이 비상식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관영방송, 혹은 ‘김비서’라는 비아냥거림으로 이 비상식적 상황을 견뎌내고 있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상식의 회복이다. 물론 의식 있는 내부의 PD와 기자들조차 “노조가 싸울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단체 행동을 위한 동력”이 없다고 토로하는 현재, 과연 어떤 방식의 실천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누구도 쉽게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브레이크를 고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비상식의 절벽을 경험할 거라는 사실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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