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시작된 서울디지털포럼 2009의 주제는 ‘스토리-새 장을 열다’이다. 2004년부터 매년 기술과 정보,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왔던 서울디지털포럼이 그 어느 때보다 각종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요즘, 오히려 스토리 즉 콘텐츠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의 형태가 변해도 꾸준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는 스토리의 힘을 이제야 주목하게 된 건 아닐까. 올해 역시 경제, 건축, 세계질서 등 폭넓은 주제의 포럼이 준비되었지만 첫 번째 공식 포럼이 ‘미디어 – 사라지는 경계와 시장의 미래’인 것은 그 때문이다. 마블 애니메이션 에릭 롤만 사장, 로이터 미디어의 요아킴 슈몰츠 부사장, 뉴욕대학교 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 클레이 셔키 교수가 참여한 이 포럼에서 논의된 것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변화하더라도 콘텐츠의 가치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포럼 참가자 중 5000여 가지 각기 다른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만화와 영화부터 비디오 게임까지 다양한 형태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세계적 캐릭터 사업자인 마블 애니메이션 에릭 롤만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적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제언을 들어보았다.

마블 코믹스가 세계적 만화 회사인 건 모두들 알고 있지만 마블 애니메이션, 그리고 더 넓게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조금 낯설다. 한국의 독자를 위해 회사 소개를 부탁한다.
에릭 롤만
: 이름처럼 우리는 디지털 코믹스와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 게임 등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를 다룬다. 각도로 따지면 360도 모두를 완벽하게 다루는 것이다. 우리 같은 회사는 없다. 각 분야의 성적을 보면 코믹스와 비디오 게임에선 세계 최고이고, 영화 역시 대부분 개봉하면 각 1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다. 재밌는 건 5000여 개 캐릭터를 보유하고 이토록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하지만 우리 회사 직원은 전 세계적으로 400여 명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언맨, 헐크 등 마블 캐릭터가 충출동하는 영화를 제작 중”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그토록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결국 콘텐츠 유통을 확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마블은 어떤 방식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실현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궁금하다.
에릭 롤만
: 당신들이 잘 아는 것처럼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의 캐릭터를 각각의 플랫폼에 두고 또 각각 외주를 줘서 개별적인 작품으로 제작을 했다. 캐릭터마다 그에 따른 각각의 관객이 있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고 그들에 맞춰 제작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마블의 경우 개별 캐릭터가 아닌 그 캐릭터들이 사는 마블 유니버스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관리하지 않는 자발적인 마블 팬 사이트만 수백, 수천 개다. 때문에 과거의 캐릭터 유통과는 전혀 다른 스케일의 프로젝트인 <어벤저스>를 기획하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있는 그 어벤저스를 말하는 것인가.
에릭 롤만
: 그렇다. 과거엔 영화사에 외주를 줘서 <엑스맨>이나 <스파이더맨>을 제작했는데 몇 년 전 메릴린치와 투자 계약을 맺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어벤저스>를 만들 계획이다. 이것은 제작비만 무려 6억 달러, 마케팅까지 고려하면 그 10배까지 들 수 있는 거대한 계획이다. 단순히 여러 마블 영웅이 나오는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과거 이미 개봉했던 영화들이 하나의 세계로 합쳐지는 거다. <인크레더블 헐크>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등장했던 것이나 <아이언맨>에서도 초인 관리 기관인 쉴드의 국장 닉 퓨리(새뮤얼 잭슨)가 나온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면 이미 출연했던 배우들도 <어벤저스>에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에릭 롤만
: 이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아이언맨 2>에 출연할 새뮤얼 잭슨과 스칼렛 요한슨과의 계약이 끝났다. 내년에 개봉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와도 연계되어 <어벤저스>라는 거대한 마블의 세계가 드러날 것이다.

“한국의 ‘뿌까’라는 캐릭터는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말한 것처럼 마블의 세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있고, 다른 문화권인 한국에도 마블 마니아들이 있다. 이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마블만의 보편적 성격이 있을까.
에릭 롤만
: 무엇보다 우리의 캐릭터는 있을 법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분노하는 울버린처럼 마블의 영웅들은 비범한 능력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처음에는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평범한 개성과 아이언맨처럼 경우 수 년 뒤 기술이 발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 개연성, 그리고 모두들 가상의 도시가 아닌 뉴욕에 사는 존재라는 것들이 보편적 공감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 부분에서 DC 코믹스와 우리의 차이가 있다. DC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슈퍼맨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절대자이지만 그래서 개성이 부족하다

DC 코믹스 얘기를 꺼냈는데 콘텐츠 유통에 있어 두 기업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에릭 롤만
: 우리는 캐릭터들을 현재에 맞게 계속 재창조한다. <스파이더맨>만 봐도 시리즈마다 주인공의 정체성에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슈퍼맨은 어떤 버전에서나 같은 옷과 같은 성격의 슈퍼맨이지 않나.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캐릭터를 보며 신선해 하는 것 같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원하는 등 한국에서도 캐릭터를 이용한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대한 제언을 부탁한다.
에릭 롤만
: 한국에서 만든 ‘뿌까’라는 캐릭터를 보면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캐릭터 상품으로서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팔리지만 내가 봤을 땐 그림만 있고 스토리가 없다. 그것은 빈껍데기다. 일본의 경우처럼 <드래곤볼>이나 <포켓몬스터>처럼 스토리가 있고 TV가 꺼진 뒤에도 포켓몬 카드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 부분에선 미국보다 일본이 뛰어난 면이 있다. 사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의 경우 장난감 하나를 사면 끝이지만 포켓몬 같은 경우 우리 아이들도 계속해서 시리즈를 수집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쓴소리를 하자면 너무 예술적 퀄리티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인 중에 애니메이션 작화를 잘 한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건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디 워>의 경우 스토리도 없고 왜 캐릭터가 화를 내는지 설명해주지도 않은 채 그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형식만 흉내 냈을 뿐이다. 그래서 참패한 거다. <사우스 파크>를 보라. 높은 퀄리티는 아니지만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모두가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스토리의 힘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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