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신드롬. 관광객들이 개똥과 소매치기로 가득한 파리의 실체에 놀라 정신적으로 받는 충격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걸 가장 격하게 겪는 사람들은 파리에 대한 환상이 큰 데다 결벽증적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이다. 한 일본인 중년 남자는 평생 꿈꾸던 파리 여행을 갔다가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고도(古都)의 모습에 놀라 “파리를 청소합시다!”라고 외치며 거리를 방황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단다. 해마다 20명이 넘는 일본인이 파리 신드롬을 겪는다. 그중 4~5명은 정신적인 공황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본국으로 송환 당한다. 그들을 비웃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Miss Dior Cherie’의 광고를 한번 보시라. 브리짓 바르도의 ‘Moi Je Joue’가 울려 퍼지는 마카롱 빛깔의 도시는 파리가 아니라 파리의 판타지다. 이걸 보고 파리로 향한 한국의 소년소녀들 중 몇몇은 마레지구에서 개똥을 밟고 몽마르트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뒤 에펠탑 아래에서 절규하게 될거다. “심지어 훈남도 없어요 어머니이이이임!”을 외치면서.

나도 파리 신드롬을 겪은 적 있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던 2001년 어느 날 밤. 지하철은 오줌 냄새로 가득했다. 거길 빠져나오니 무서운 청소년들이 뒤를 쫓아왔다. 수트 케이스를 질질 끌고 카페로 몸을 피신했는데 갑자기 변이 마려웠다. 카페의 화장실은, 어머나 세상에, 쪼그리고 앉는 한국식 좌변기였다. 숙소는 가격에 비해 형편없었고 침대에는 이상한 얼룩이 가득했다. 나는 체념한 채 파리도 수백만의 인간이 살아가는 수많은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다음날의 파리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신혼 첫날밤 아내의 ‘쌩얼’을 처음으로 마주한 뒤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마음으로, 나는 파리와 진짜 사랑에 빠졌다.

글. 김도훈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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