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해 이것듀롸~”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KBS <개그 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영미 선배’가 ‘국민 선배’로 떠올랐다. 여자 연기자들만 모인 분장실을 배경으로 선후배간의 미묘한 권력 관계를 코믹하면서도 예리하게 잡아낸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지금 웃음의 중심축은 안영미에게 가 있다. 후배들에게는 독한 시어머니지만 선배 앞에서는 입 안의 혀처럼 사근사근하게 변신하는 ‘영미 선배’의 캐릭터는 표정과 말투, 몸짓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살아 있는 안영미의 연기를 통해 120% 발휘된다. 2004년 KBS 공채 19기 개그맨으로 데뷔한지 5년, 오랫동안 ‘유망주’ 였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우량주’였던 안영미를 만났다. 골룸 분장을 벗고 난 162cm, 48kg의 가냘픈 체구에서 나오는 우렁찬 웃음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크게 히트했다. 여기저기서 인터뷰나 출연 요청이 많겠다.
안영미
: 많아졌는데 다 하지를 못하고 있다. 정말 희한한 건, 내가 골룸 분장을 하고 나오면서부터 미니홈피에 쪽지로 “패션쇼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이 많이 온다는 거다. 옷 같은 거 다 협찬해 준다고. 그리고 ‘소비자 고발’에서 자주 끼는 안경도 협찬해 준다고 연락처까지 적어 보내는데 전화는 안 해보고 있다. 왠지 다 장난치는 것 같아서. 연락했는데 “뻥이지롱!” 그럼 무슨 망신인가. 하하하하!

“사람들이 따라하는 건 그만큼 일상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처음 구성하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사실 ‘강선생님’이 없었던 걸로 안다.
안영미
: 처음엔 선배 역의 나와 막내들 역의 (정)경미 언니, (김)경아 언니 이렇게 셋이었다. 내 캐릭터 역시 후배들을 구박하거나 까칠하게 구는 선배가 아니라 그냥 골룸 분장한 상태로 전화 받으면서 “아니, 몇 달 돈 안 냈다고 가스를 끊으시면 어떡해요?”처럼 현실적인 얘기 심각하게 하고 후배들에게 연기 가르쳐 준답시고 과장된 연기 보여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개콘>의 김석현 감독님께선 그 위의 선배 캐릭터가 하나쯤 더 있는 게 안정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마침 ‘순정만화’가 끝나면서 유미가 들어왔고 지금의 ‘대선배-선배-막내들’ 이라는 구성이 됐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구도는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진 거다. 게다가 난 원래 그렇게 까탈스런 선배는 아닌데. 하하!

그렇다면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선배인가?
안영미
: 만만한 선배? 하하. 별명이 ‘동원방청객’이다. 금요일마다 감독님께 새로 만든 코너를 검사 받는데 내가 가면 후배들이 다 “와, 안영미 선배 왔다!”하면서 끌고 간다.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은 냉정하게 보고 판단을 하시니까 잘 안 웃으시지만 나는 혼자 열 사람 웃는 만큼 웃어주니까. 하지만 개그맨들에게는 그런 게 좀 필요하다. 뭔가 더 할 수 있고 더 오버해서 살릴 수 있는 것도 괜히 주눅 들어 못 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그럴 때 우리끼리 많이 웃어주면 힘이 나니까. 그런데 가끔은 나도 안 웃을 때가 있다. 그러면 감독님이 “야, 안영미도 안 웃는다!”하면서 내려 보내신다. 하하.

그런데 이번 ‘분장실의 강선생님’ 무대에서는 강유미가 더 많이 웃는 것 같다. (웃음)
안영미
: 유미가 원래 웃음이 많은 편이다. 나는 긴장을 너무 심하게 해서 무대에서는 못 웃고. 감독님도 늘 “너희는 웃으면 안 된다. 너희가 진지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웃기는 거다”라고 신신당부하시는데 우리 코너 첫 주랑 둘째 주에 유미가 못 참고 웃으니까 “앞으로 또 웃으면 벌금 5만원”이라고 하셔서, 그 뒤로 유미는 절대 안 웃는다. 하하. 그런데 나도 지난 주 녹화 때 속으로 웃음이 터져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보니까 그 심정을 알겠다.

“똑바로 해 이것들아!” “우리 땐 상상도 못할 일이야” 같은 대사가 금세 유행어가 됐다.
안영미
: 유행어로 하려던 건 아니고 연기하다 자연스럽게 나온 말들이다. 내가 그 동안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고. 하하. 실제로는 그보다 더 격한 말들도 쓰지만 방송용으로 순화시킨 게 “이것들아!”다. 그 안에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는 거다. 그걸 사람들이 많이 따라하는 것도 특이한 표현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대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난 털 난 요괴 귀를 달아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니까!”

매주 분장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거기 들이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안영미
: 유미나 경미 언니 같은 경우는 전신 분장을 하니까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나도 제대로 하려면 그 정도 걸리는데 ‘소비자 고발’ 녹화 먼저 하고 분장을 시작하다 보니까 좀 한계가 있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은 매주 분장이 바뀌는 데 비해 나는 골룸을 기본으로 조금씩만 바꿔 가니까 “왜 계속 골룸만 해요?”라는 반응도 있고 해서 계속 변화를 주는 게 굉장히 힘들다. 심지어 이젠 털 난 요괴 귀를 달아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니까! 하하.

우는 척 하는 손동작 하나로 큰 웃음을 주었던 ‘닭손’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건가.
안영미
: 예전에 유미랑 미국 개그 프로그램을 봤다. 예쁜 여자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마지막 한 명은 이마가 정수리까지 벗겨지고 손을 이상하게 꼰 채로 “아임 프리티~”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재밌어 보여서 응용하려고 했는데 자칫하면 장애인 비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로봇이나 장난감 인형 손을 끼우기로 했다. 그런데 감독님께 아이디어 검사 받기 전에 시간이 없어서 경미 언니랑 경아 언니가 편의점에서 급히 사온 닭발 장난감을 쓴 거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그대로 녹화를 했다.

양갈래로 길게 난 코털을 새침하게 귀 뒤로 넘기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안영미
: 하하, 아무래도 여자가 코털 같은 걸 붙이면 웃기니까 한 건데, 거기에 예전 토크쇼에서 본 아이디어를 집어넣었다. 어떤 여자가 술 마시고 토하는데 뒤에서 남자 선배가 등을 쳐 주니까 그 와중에도 예쁜 척 하려고 라면 가닥이 줄줄 넘어온 걸 머리카락처럼 넘기면서 “어머, 선배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는 얘기. 한 10년 전에 본 건데 재밌어서 써먹어 봤다.

‘디테일 개그’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기억력이나 관찰력이 좋은 편인가?
안영미
: 기억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데 ‘필’이 꽂히면 평생 기억하는 편이다. 10년 전에 본 거든 20년 전에 본 거든 인상적이었던 건 다 기억해둔다. 원래 연기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드라마나 연극을 볼 때도 그 사람, 그 캐릭터의 특징을 연구한다.

“요즘 유미 말로는 내 캐릭터가 진짜 얄밉다더라”

‘분장실의 강선생님’ 에서는 어린 선배의 나이 많은 후배 군기 잡기가 소재로 쓰이고 있는데 후배 역을 연기하는 정경미와 김경아가 실제로 나이 많은 후배다. 너무 리얼한 상황 아닌가? (웃음)
안영미
: 어떻게 보면 군대랑도 비슷한데, 예전에 개그계에서도 일부 선배들이 자기가 더 어린데도 상대가 후배라는 이유로 반말을 하거나 구박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게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짚어주고 싶었다. 물론 연기 할 때는 내가 못된 선배 역할이니까, 지난주에는 후배 개인기 뺏어 쓰면서 “넌 하지 마. 니가 하면 안 살아서 그래. 진짜로. 내가 해야 살아. 어쩔 수 없어. 세상의 이치야. 너 지금 니 꺼 내가 써먹는다고 뭐라 그러는 거니? 개그에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어? 억울하면 너도 뜨던가!”하는 대사를 하고 있는데 맨 앞자리 관객들이 “어우, 진짜 얄밉다” “쟤 너무한다!”하는 말이 들리는 바람에 대사를 까먹을 뻔 했다. 하하. 초반엔 안 그랬는데 요즘 유미 말로는 내 캐릭터가 진짜 얄밉다고 한다. 드라마도 욕하면서 보는 것처럼, 하하!

코너의 무게중심이 자신에게 와 있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안영미
: 많이 떨린다. 초반에는 생전 처음 주목을 받는 데다 사람들이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기사를 읽을 때나 미니홈피에 올라오는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도 그게 내가 아니라 남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코너, 팀이 조명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조금이라도 못 웃겼을 땐 코너가 망가질 것 같아서 정말 불안했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부담스러워하지 마라. 너는 그냥 너다. 주변에서 잠깐 그러는 거니까 흔들리지 마라”고 하셔서 정신을 차렸다. 요즘에는 인터넷 기사도 잘 안 보고 미니홈피도 잘 안 들어가고 코너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요즘에는 강유미에게로 개그의 포인트가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막내들’ 역의 정경미와 김경아에게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안영미
: 물론이다. 우리는 하나의 시트콤처럼 코너를 만들고 있는데 초반에는 내 골룸 분장과 “야 이것들아!”가 주목받았다면 점점 유미 캐릭터가 힘을 받고 있다. 사실 그런 선배들이 마냥 속 좋아 보여도 알고 보면 더 무서운 법이다. 내가 없을 때 막내들이 유미한테 “안영미 선배님은 좀 어려워서요. 나중에 저희랑 같이 술 한 잔 해요~” 그러면 “그래그래 얘들아, 나도 너희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그래 놓고 나중에 나한테 “내가 이 나이에 새파란 후배들이랑 술도 마셔야 하고…참 그렇다? 내가 편한가 봐. 언니라고 부르더라구. 뭐 이 나이에 언니 소리 들으면 좋지 뭐.” 하면서 은근히 언질을 주는 거다. 그럼 내가 “이것들이 미친 거 아냐?”하면서 버럭 하는 식으로. 좀 더 나중에는 막내들 캐릭터에도 미묘한 관계 변화를 줄 거다. “선배님, 경미가요. 아 맞다. 얘기하지 말랬는데!” 하면서 뭔가를 슬쩍 이른다던지 하는 식으로.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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