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느 출판사로부터 연애에 관한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대답하는 내 말꼬리는 길면서도 높았다. “네에? 연애요오? 제 연애 전적은 100전 1무 99패, 승률이 0.1할도 안 되는데요?”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실패담을 쓰시면 되잖아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재미있게 읽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연애를 힘들어하는 여자들, 요즘 참 많잖아요?” “무슨…, 자학 개그 할 일 있습니까? 게다가 제 연애 전적이 100전 1무 99패라는 말씀은 겸손에서 우러난 거지, 사실이 아니에요. 진짠 줄 아셨어요? 에이, 설마… 으하하핫!”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은근슬쩍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지난 며칠 간 ‘실패담’이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헉!’ 하는 단발마의 한숨을 ‘오!’로 바꿔놓다
각설하고, 오늘은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 이하나 이야기다. 이하나로 말할 것 같으면 MBC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의 트레이닝복 룩을 제외하곤 ‘꺄아아악’ 하는 환성이 우러나는 룩보다는 ‘헉!’ 하는 단발마의 한숨이 우러나는 룩을 더 많이 선보였던 아가씨다. 특히 시상식에서 그녀의 감각은 빛을 발했는데 드레스 컬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발 귀신 같이 찾아내는 법이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 찾는 법, 드레스 입고 어정쩡하게 걷는 법에 대해서는 책을 써도 될 정도로 정통한 모습을 보여왔다(내가 ‘무작정 들이댔다 무지막지하게 차이는 법’에 대해 책을 쓴다면 이하나의 드레스 선택 실패담을 엮어 ‘실패담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대체 누구지? 지난 주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회색 카디건을 입은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포토월에 서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던 이하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저지 티셔츠의 네크라인과 카디건의 네크라인이 보여주는 세련된 조화도 멋지고, 거기에 더해진 목걸이도 멋지고, 아기자기한 아플리케가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 ‘전원 소녀’ 풍의 카디건도 특이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건 제 이름을 건 음악 방송 진행자가 도서관이나 동네 찻집에서 친구를 만나러 갈 때처럼 입고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이소라의 <백설공주> 속 왕비 드레스, 윤도현의 하라주쿠 풍 록커 룩을 돌이켜볼 때, 이하나의 ‘평범 룩’은 너덜너덜한 카디건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하던 커트 코베인과도 견줄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룩이었다.
나도 한 번 쑥쓰럽게 들이대 볼래요
최근 외국의 패션 잡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Low-key’, 우리나라 패션 잡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무심한’이다. 사전에서 ‘low-key’를 찾아보았더니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이라고 나온다. 결국, ‘무심한’이란 뜻이겠지.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보여준 이하나의 카디건 룩은 요즘 유행하는 ‘로우 키’ 룩의 모범답안이 아닐까 싶다. 블링블링, 뭔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지만 오히려 말수를 줄임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룩의 전형. “무대에 서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난 객석을 채운 관객과 다를 게 없어요. 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 보다 오늘 만나게 될 뮤지션에 더 관심이 간다구요”라고 목청 높여 외치는 조용한 카디건.
면이 좀 남아서 말인데,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말인데 내 연애 승률이 형편 없는 이유는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는 데 서툴러서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순간을 이하나의 카디건 차림처럼 ‘로우 키’로 일관하다가 때때로 이하나의 어법, 약간의 더듬거림과 벅찬 한숨(‘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이 있는 말투로 상대를 향한 설렘을 전달했다면 성공률이 조금은 더 높았을 것을, 내 들이댐은 언제나 ‘하이 키’ 내지는 ‘하이킥’이었다. 그러니 새해엔 옷 입기도 연애도 ‘살살’ 해야지. 이하나 말처럼 “대세는 이하나(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운 웃음)”가 정말인지 몰라도 대세가 ‘로우 키’인 건 확실해 보이니까(이쯤에서 나도 쑥스러운 웃음!).
심정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헉!’ 하는 단발마의 한숨을 ‘오!’로 바꿔놓다
각설하고, 오늘은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 이하나 이야기다. 이하나로 말할 것 같으면 MBC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의 트레이닝복 룩을 제외하곤 ‘꺄아아악’ 하는 환성이 우러나는 룩보다는 ‘헉!’ 하는 단발마의 한숨이 우러나는 룩을 더 많이 선보였던 아가씨다. 특히 시상식에서 그녀의 감각은 빛을 발했는데 드레스 컬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발 귀신 같이 찾아내는 법이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 찾는 법, 드레스 입고 어정쩡하게 걷는 법에 대해서는 책을 써도 될 정도로 정통한 모습을 보여왔다(내가 ‘무작정 들이댔다 무지막지하게 차이는 법’에 대해 책을 쓴다면 이하나의 드레스 선택 실패담을 엮어 ‘실패담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대체 누구지? 지난 주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회색 카디건을 입은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고 포토월에 서서 어색하게 손을 흔들던 이하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저지 티셔츠의 네크라인과 카디건의 네크라인이 보여주는 세련된 조화도 멋지고, 거기에 더해진 목걸이도 멋지고, 아기자기한 아플리케가 앞면을 장식하고 있는 ‘전원 소녀’ 풍의 카디건도 특이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건 제 이름을 건 음악 방송 진행자가 도서관이나 동네 찻집에서 친구를 만나러 갈 때처럼 입고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이소라의 <백설공주> 속 왕비 드레스, 윤도현의 하라주쿠 풍 록커 룩을 돌이켜볼 때, 이하나의 ‘평범 룩’은 너덜너덜한 카디건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하던 커트 코베인과도 견줄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룩이었다.
나도 한 번 쑥쓰럽게 들이대 볼래요
최근 외국의 패션 잡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Low-key’, 우리나라 패션 잡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무심한’이다. 사전에서 ‘low-key’를 찾아보았더니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이라고 나온다. 결국, ‘무심한’이란 뜻이겠지.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보여준 이하나의 카디건 룩은 요즘 유행하는 ‘로우 키’ 룩의 모범답안이 아닐까 싶다. 블링블링, 뭔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지만 오히려 말수를 줄임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룩의 전형. “무대에 서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사실 난 객석을 채운 관객과 다를 게 없어요. 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 보다 오늘 만나게 될 뮤지션에 더 관심이 간다구요”라고 목청 높여 외치는 조용한 카디건.
면이 좀 남아서 말인데,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말인데 내 연애 승률이 형편 없는 이유는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는 데 서툴러서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순간을 이하나의 카디건 차림처럼 ‘로우 키’로 일관하다가 때때로 이하나의 어법, 약간의 더듬거림과 벅찬 한숨(‘당신을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이 있는 말투로 상대를 향한 설렘을 전달했다면 성공률이 조금은 더 높았을 것을, 내 들이댐은 언제나 ‘하이 키’ 내지는 ‘하이킥’이었다. 그러니 새해엔 옷 입기도 연애도 ‘살살’ 해야지. 이하나 말처럼 “대세는 이하나(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운 웃음)”가 정말인지 몰라도 대세가 ‘로우 키’인 건 확실해 보이니까(이쯤에서 나도 쑥스러운 웃음!).
심정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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