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PMC: 더 벙커’에서 북한 엘리트 의사 윤지의를 연기한 배우 이선균./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PMC: 더 벙커’에서 북한 엘리트 의사 윤지의를 연기한 배우 이선균./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올해 초 종영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배우 이선균이 확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민간 군사기업 PMC의 핵심팀 블랙리저드 캡틴 에이헵(하정우)이 지하 30m 벙커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영화 ‘PMC: 더 벙커’에서다. 이선균은 극 중 북한 엘리트 의사 윤지의 역을 맡았다. 그는 하정우의 선택과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키’를 가진 인물이다. 모든 대사를 북한 사투리로 소화했으며, POV(1인칭 캠)를 장착한 채 달리고 넘어지며 직접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다. ‘PMC: 더 벙커’를 시작으로 ‘악질경찰’ ‘기생충’ ‘킹 메이커’ 등 내년까지 네 편의 영화를 선보일 이선균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PMC: 더 벙커’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선균: 김병우 감독, 하정우와 함께하고 싶었다. 제작사 김병찬 대표와 인연도 있고, 김병서 촬영감독은 대학 선후배 사이다. 아내(전혜진)가 ‘더 테러 라이브’에 출연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 ‘악질경찰’을 찍고 있을 때 제안을 받았다. 원래 ‘악질경찰’이 끝나면 쉴 생각이었다. 내가 끌고 가는 작품이라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 사람들과 못할 것 같았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다.

10. 분량이 적어서 아쉽지는 않나?
이선균: 오히려 적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감안했던 일이다.

10. 윤지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나?
이선균: 하정우가 연기한 에이헵은 자신의 과거와 관련해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그 때문에 선택과 갈등을 계속한다. 내가 연기한 윤지의는 이런 에이헵이 선택을 하게 하는 ‘키’를 가지고 있다. 배우들이 몸을 던져 액션을 할 때 나는 에이헵에게 영향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

10. 다른 배우들이 만만치 않게 고생했을 것 같다.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을 하지 않았나?
이선균: POV 캠을 손에 묶고 연기했다. 감독님은 카메라를 고정할지, 흔들지, 누가 앵글에 잡혀야 할지 계속 주문했다. 연기와 앵글을 동시에 주문해서 쉽지만은 않았다.

10. 북한 사투리 연기는 어땠나?
이선균: 윤지의는 해외 유학파 출신이다. 이런 이력을 살리기 위해 관객들이 친숙한 개성식 사투리가 아니라 서울 표준어가 섞인 사투리를 해야 했다. 사투리 연기 지도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이 녹음한 대사를 계속 듣고 공부했다. 현장에서 동시 녹음을 할 때는 발음이 더 셌다. 하다 보니 톤이 너무 세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후시 녹음을 하기 전 감독님과 상의했다. 너무 튀지 않는다면 억양을 줄이고 감정을 전달하기 쉽게 하자고 말했다.

10. 총소리, 폭탄 소리 때문에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선균: 나도 감독님도 고민한 부분이다. 현장감을 전달하는 게 먼저인지, 대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먼저인지 고민했다. 현장감이 중요하다는 게 감독님의 생각이었고 나도 동의했다.

10. 하정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선균: 하정우는 실제로도 캡틴 같다.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다. 늘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하정우가 한 달 먼저 촬영을 시작했고, 그 다음에 내가 촬영했다. 둘이 교신은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고 호흡하는 일이 많진 않았다. 하정우가 날 보고 반장이 학교에 전학을 온 것 같다고 했다.

10. 영화에서 하정우와의 관계가 급진전 된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선균: 원래는 하정우와 살아온 인생, 가정사 등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영화에선 나오지 않지만, 윤지의는 북한 포로수용소에 아내와 아들이 갇혀있는 설정이다. 이데올로기보다 가족과 사람이 먼저다. 하정우는 영화에서 밝혀졌듯 출산을 앞둔 아내가 있고, 사고 이후 PMC로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관계 설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속도감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감독님이 이렇게 선택한 것 같다.

10. 하정우와 최근에 하와이를 다녀 왔다고 들었는데.

이선균: ‘PMC: 더 벙커’의 대박을 기원하면서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하정우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더라. 내가 1시간 40분 늦게 골인했다.

배우 이선균은 영화 ‘PMC: 더 벙커’에서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 대해 “실제로도 캡틴 같다”고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선균은 영화 ‘PMC: 더 벙커’에서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 대해 “실제로도 캡틴 같다”고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구멍이 뚫린 길을 걷는 장면은 CG인가?
이선균: 아니다. 3m 높이의 세트에서 구멍을 뚫어 놓고 연기했다. 안전장치가 없어서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다. (웃음) 그 장면이 영화에서 더 큰 공간으로 확장된 것을 보고 감탄했다.

10. 낙하산 장면이 압권이다. 어떻게 찍었나?
이선균: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이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다. 하정우의 모든 관절에 와이어를 달고 사방에서 직접 당기면서 조정했다. 그걸 카메라가 돌면서 찍었다. 여덟 컷인데 마치 한 컷처럼 보이게 했다. 정말 대단했다.

10. 김병우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이선균: 하정우의 표현대로 이과생답게 영화를 만든다. 똑똑하고 꼼꼼하다. 정말 촘촘하게 준비한다. 복잡한 벙커 등 여러 공간을 레고로 만들어서 보여줬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대기실에 와서 그날 찍을 장면과 컷을 설명해 줬다. 자신의 의도를 굉장히 명확하게 설명한다. 기자간담회 때 봤듯 화법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나는 정말 좋았다.

10. 영화를 보니 어떤가? 만족스럽게 나왔나?
이선균: 100% 만족한다거나 아쉽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내가 어떻게 봤느냐보다 관객이 어떻게 보실지가 궁금하다. 사실 아쉬운 점이 보이긴 하지만 장점이 더 많은 영화다.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시도를 많이 했다. 기술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0.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영화 ‘악질경찰’ ‘PMC: 더 벙커’ ‘기생충’ ‘킹 메이커’ 등 최근에 출연했거나 출연할 작품을 보면 장르나 인물이 다 다르다.
이선균: 예전에는 안 했던 걸 해도 비슷한 걸 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연속으로 다른 작품, 다른 역할을 맡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같이 하고 싶은 감독님들에게 제안을 받아서 더 고맙다. 그분들에 대해 믿음이 있었기에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계속해서 좋은 작품,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고 있다. 포커할 때 패가 안 좋아서 죽으려고 하는데 계속 에이스가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한때 ‘내가 배우를 계속해도 되나?’ 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 가장의 책무로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최근에 여러 작품이 격려처럼 다가와서 너무 감사하다.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게 정말 고마운 일이다.

10. 올 초에 방송한 ‘나의 아저씨’로 호평을 받았는데, 자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이선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만든 작품이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고민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성찰할 기회였다.

10.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이선균: ‘이게 먼저다’라는 건 없다. 하고 싶었던 감독님들이 제안해서 쉼 없이 하는 것 같다. 솔직히 감독님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만든 전작을 보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된다. 결정도, 시작도 감독님이 하는 것이다. 배우가 현장에서 예민하지 않고 즐겁게 촬영하려면 감독을 믿고 따라야 한다.

10. 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
이선균: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진 않았다. 주어진 것을 잘 하려고 고민한다.

배우 이선균이 출연작 ‘나의 아저씨’는 자신을 돌이켜보게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선균이 출연작 ‘나의 아저씨’는 자신을 돌이켜보게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10. 멜로 연기를 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선균: 이제 나이가 들어서 멜로를 하면 욕먹을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여배우보다 남자배우들과 호흡하는 일이 더 많다. 특히 한국영화에 여배우들의 역할이 많지 않아 문제다. 최근에 ‘미쓰백’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한지민 씨도 멋있고 예쁘더라.

10. 44세의 나이를 실감하나?
이선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흰머리도 많이 난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이나 비타민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10. 아내 전혜진과 작품 활동에 대해 상의하는 편인가?
이선균: 매니저랑 한다. 하하. 예전에는 많이 했다. 대사 외울 때 서로 도움을 줬다. 쪽대본이 나와도 숙지를 하고 가야 해서 리딩 파트너가 돼 줬다. 배우로서 혜진 씨를 존경한다. 서로 진지하게 논하지 않아도, 딱 보면 어떤지 알기 때문에 ‘고생한다’라는 한마디가 위로가 된다.

10. 배우 생활을 오래 했다. 아직도 힘든 부분이 있다면 뭘까?
이선균: 배우는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평가받는 직업이다.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된다. 평가받는 일은 사실 가장 힘들다. 28년 동안 연기했다. 꾸준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오랫동안 현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다.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나이를 대변하는 역할을 많이 할 테니까.

10.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는?
이선균: 드라마 ‘태릉선수촌’과 ‘나의 아저씨’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절반 이상을 스마트폰으로 봤다. 꼭 TV 화면으로 다시 보고 싶다.

10. 올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이선균: ‘나의 아저씨’가 가장 컸다. 2007년 하면 ‘커피프린스 1호점’이 떠오르듯, 2018년 하면 ‘나의 아저씨’가 떠오를 것 같다.

10. ‘PMC: 더 벙커’를 볼 관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선균: 재미있게 보시겠지만 낯설고 어지럽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분이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점’을 생각하고 봐 주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 기술적 업그레이드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10. 내년 계획은?
이선균: 한 해를 대표하는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2018년이라는 달력에 ‘나의 아저씨’를 채웠다면 2019년에는 대표작이 많을 것 같다. ‘PMC 더: 벙커’를 시작으로 ‘악질경찰’ ‘기생충’ ‘킹 메이커’…쌓아둔 게 많다. 하하.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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