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사은품으로 받은 마스다 미리의 ‘어른 초등학생’ 마우스패드는 거실 벽에 붙여진 채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른인 ‘나’와 어린아이인 ‘나’의 말풍선 대화가 담긴 표지컷이다.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냐는 어린 나의 물음에 어른인 나는 답한다. “어린아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어.”
그림을 말끄러미 쳐다보던 딸이 나에게 물었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즉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재촉하는 눈길에 마냥 미룰 수가 없어서 말했다. “내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면,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거의 일만 했던 시간으로 가는 거야. 그럼 엄마는 돌아가지 않을래.”
동화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눈사람 아저씨’의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는 자신의 부모님 즉 에델과 어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실화, 게다가 부모님의 이야기라 해서 감정에 치우쳐 부러 눈물을 짜내거나 갈등을 돋우거나 하지 않고 꽤 솔직하고 담백하다. 로저 메인우드 감독에 의해 완성돼 지난 10일 국내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도 마찬가지다.
1920년대의 런던에서 메이드인 에델과 우유 배달부인 어니스트 사이에 사랑이 움튼다. 결혼을 하고, 아들 레이먼드를 낳고 키우면서 나란히 노년을 맞이하는 40년을 함께한 그들의 이야기는 단 몇 줄로 요약된다. 그러나 극적인 긴장은 영화 곳곳에 흐른다. 충분히 드라마틱했던 시대의 모습도,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 가족의 모습도 품고 있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결혼 후 한 집에서 일생을 보낸다. 여백이 많았던 집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그들의 흔적으로 채워진다. 가구 하나, 가전제품 하나가 들어와서 공간을 채우더라도 그들 부부에게는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문명으로 대표되는 TV와 냉장고처럼 대단한 발명으로 가득 찬 시대였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화벨이 울리면 놀라서 도망치기 바쁜 에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에델과 어니스트’를 보고 집에 돌아오자 익숙했던 물건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리고 개중 몇몇의 사연을 더듬게 됐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이 전화가 있는 집 아이들의 손을 들게 했다. 전화 개통이 붐이었는지, 나중에는 전화가 없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전화가 없는 3인조로 긴 시간 손을 들어야 했다. 나의 푸념에 마지못해 아빠가 전화를 개통했다. 집안의 가장 웃어른처럼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던 전화기와 친해지기에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근검한 아빠에게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저 부모 세대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마주할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그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충분히 특별하다. 그들은 늘 주인공이었다. 레이먼드 브릭스처럼 누군가의 아빠와 엄마로 살며 잊혀진 부모님의 이름을 찾아 드리고 싶다.
‘재원과 이남’
나의 부모님의 이름이다. 벌써, 특별해진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 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림을 말끄러미 쳐다보던 딸이 나에게 물었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즉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재촉하는 눈길에 마냥 미룰 수가 없어서 말했다. “내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면,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거의 일만 했던 시간으로 가는 거야. 그럼 엄마는 돌아가지 않을래.”
동화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눈사람 아저씨’의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는 자신의 부모님 즉 에델과 어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실화, 게다가 부모님의 이야기라 해서 감정에 치우쳐 부러 눈물을 짜내거나 갈등을 돋우거나 하지 않고 꽤 솔직하고 담백하다. 로저 메인우드 감독에 의해 완성돼 지난 10일 국내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에델과 어니스트’도 마찬가지다.
1920년대의 런던에서 메이드인 에델과 우유 배달부인 어니스트 사이에 사랑이 움튼다. 결혼을 하고, 아들 레이먼드를 낳고 키우면서 나란히 노년을 맞이하는 40년을 함께한 그들의 이야기는 단 몇 줄로 요약된다. 그러나 극적인 긴장은 영화 곳곳에 흐른다. 충분히 드라마틱했던 시대의 모습도, 크고 작은 갈등을 빚는 가족의 모습도 품고 있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결혼 후 한 집에서 일생을 보낸다. 여백이 많았던 집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그들의 흔적으로 채워진다. 가구 하나, 가전제품 하나가 들어와서 공간을 채우더라도 그들 부부에게는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문명으로 대표되는 TV와 냉장고처럼 대단한 발명으로 가득 찬 시대였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화벨이 울리면 놀라서 도망치기 바쁜 에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에델과 어니스트’를 보고 집에 돌아오자 익숙했던 물건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리고 개중 몇몇의 사연을 더듬게 됐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 때 선생님이 전화가 있는 집 아이들의 손을 들게 했다. 전화 개통이 붐이었는지, 나중에는 전화가 없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전화가 없는 3인조로 긴 시간 손을 들어야 했다. 나의 푸념에 마지못해 아빠가 전화를 개통했다. 집안의 가장 웃어른처럼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던 전화기와 친해지기에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근검한 아빠에게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에델과 어니스트’는 그저 부모 세대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마주할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그들의 평범한 이야기는 충분히 특별하다. 그들은 늘 주인공이었다. 레이먼드 브릭스처럼 누군가의 아빠와 엄마로 살며 잊혀진 부모님의 이름을 찾아 드리고 싶다.
‘재원과 이남’
나의 부모님의 이름이다. 벌써, 특별해진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 관련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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