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이정화 : 어느 순간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좀 더 섬세한 표현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극을 하고 싶다”고 소문 내고 다녔죠.(웃음) 2, 3년 됐어요. 그러던 중에 ‘조제’의 출연 제안을 받아 흔쾌히 결정했어요.
10. ‘조제’는 알고 있었던 작품입니까?
이정화 : 영화는 예전에 봤어요. 제안을 받고 다시 보니 느낌이 다르더군요. 깊이 빠질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딱이었죠. 조제란 캐릭터도 독특하고요.
10. 조제란 인물은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이정화 : 영화를 참고하면 관객들이 비교할 것 같았어요. 처음엔 머리카락도 영화 속 조제처럼 짧게 자르려고 했는데, 연출이 연극은 연극대로 짧든 길든 상관없다고 해서 색깔만 어둡게 하고 길이는 그대로 했습니다. 좀 더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을 더 많이 봤어요.
10. 같은 역을 맡은 두 명의 배우(문진아·최우리)가 있어서 더 고심했겠습니다.
이정화 : 연습 초반에 저를 보고 “조제가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반응이 있어서 어떻게 깨야 할지 고민했어요. 같은 역을 맡은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큰 힘이 됐죠. 모니터도 해주고 서로의 매력도 찾아줬어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며 연구했죠. 언니들이 저에게 기괴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걸 “잘 살려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연구했어요. 사실 조제는 첫 장면부터 신비하고 궁금한 인물이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풀어냈죠.
10. 어느 순간 노래가 나오는 뮤지컬과 달리 잔잔하게 감정선을 따라 흘러가는 연극이 쉽지만은 않았겠죠?
이정화 : 맞아요, 뮤지컬은 감정이 격해질 때 음악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잖아요. 그와 달리 연극은 스스로 감정을 쌓아가지 않으면 ‘그걸 왜 해?’라고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10. 첫 도전이라는 불안함은 없었습니까?
이정화 : 굉장히 불안했어요.(웃음) “좋다”고는 하는데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기괴함’이라는 나만의 색깔은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죠. 그럴 때 동료 배우들이 용기를 줬어요. 처음엔 저를 보고 ‘대극장 무대에 오르다 와서 소극장 연기가 맞을까?’란 우려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짧은 시간에 여러 시도를 하고 노력하는 걸 보고 ‘뜻이 있어 왔구나’라고 생각을 바꿨다고요.(웃음)
10. 다리를 쓰지 못하는 배역이라 더 어렵고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이정화 : 장애를 가진 역할은 처음이니까 어색했어요.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니까요. 사실 공연 전 상·하체를 분리하는 운동을 했어요. 일종의 자세 교정 같은 건데, 그걸 하고 나니까 상반신과 하반신을 나누는 느낌을 대충 알겠더군요. 딱히 공연을 위해서 한 운동은 아니었는데 잘 맞아떨어졌죠. 어떤 날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아닌데도 눈물이 쏟아져요. 스스로도 ‘이렇게 벅찰 일인가?’ 싶죠.(웃음) 감정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도 연극만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10. 세 명의 다른 상대 배우(서영주·김찬호·백성현)와 연기를 한다는 점도 감정의 변화에 한몫하겠죠?
이정화 : 처음에는 파트너를 섞지 말고 둘씩 짝을 이뤄 공연하자고 했어요. 그래야 더 깊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초반 이후부터 상대 배우를 달리하면서 공연을 했는데, 신선하고 풋풋한 느낌이 들더군요. 관객들도 더 좋아하고요.
10. 세 명의 배우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정화 : 서영주는 진지하고 조심스러워요. 공연할 때도 저를 소중하게 대해줘서 첫사랑의 풋풋한 느낌이 들죠. 실제 어린 친구라 배려심도 많고요. 김찬호는 웃기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요.(웃음) 엉뚱한 면이 많아서 공연할 때도 즐거웠죠. 백성현과는 공연을 딱 두 번 했는데, 그만의 매력이 있었어요.
10. 지난 29일 막을 내렸습니다. 첫 도전이라 더 서운하죠?
이정화 : 지방 공연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외에서도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같이 연기한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하는 연극인데 동료들이 잘 도와줘서 완성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아쉬운가 봅니다.
10. 조제를 표현하면서 삶에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습니까?
이정화 : 조제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가요. 결국 용기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줬죠. 누구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망치려고 하는데,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고요. 이번엔 그 반대에 서 있는 조제를 연기하면서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 여러 감정을 이해하게 된 서른에 ‘조제’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겠습니다.
이정화 : 그간 참여한 작품을 돌아보면 작품과 배우도 다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조제’도 그렇죠. 최근 출연하기로 한 뮤지컬 ‘아이러브유’도 15명의 역할을 소화해요. 제가 언제 해보겠어요?(웃음) 노래도 하면서 연기로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조제’를 하고 나서 용기도 얻었으니 순서가 잘 맞죠.
10. 연기의 어떤 점이 매력입니까?
이정화 : 상대 배우가 내게 뭘 전하고 싶은지, 그걸 알아들을 때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무대 위에서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 ‘진짜’로 다가올 때가 있죠. 늘 새로운 게 무대 예술의 가치인 것 같습니다. 때론 영화처럼 좋은 장면을 돌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공연이 아련해서 좋아요.
10.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이정화 : 일하는 게 정말 즐거운 요즘이에요. 20대엔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고민했다면, 이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힘이 풀렸다는 거예요. 예뻐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고, 극 중 인물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니 가야 할 길을 알겠더군요. ‘믿고 보는 배우’가 가장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장르를 조금씩 넓히고 있으니 더 노력해서 기대에 부응하는 배우가 되도록 할게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2010년 뮤지컬 ‘투란도트’로 데뷔한 이정화는 지난해까지 줄곧 뮤지컬 배우로 소극장과 대극장을 넘나들었다. 노래로 감동을 전하는 벅찬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어느 한 구석에선 연기에 대한 갈증이 피어올랐다. “연극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길 2년여, 마침내 지난달 막을 올린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연출 김명환, 이하 조제)의 출연을 제안받았다. 첫 도전 치고는 제법 난도가 높았다.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고 사회성도 부족한 쿠미코(조제)의 삶을 표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 소설(1984)이 원작이며 2004년 일본에서 영화로도 나왔다. 연극은 한국이 처음이다.10. 데뷔 7년 동안 뮤지컬만 해오다가 연극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정화는 작품 특유의 먹먹한 감정선을 이어가기 위해 애썼다. 처음 하는 일인 만큼 모든 게 낯설었지만 연기를 깊이 알아간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극 중 인물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연기의 맛’을 느꼈고, 앞으로 더 다양하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다. 이정화는 이제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30대를 보낼 계획이다.
이정화 : 어느 순간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어요. 좀 더 섬세한 표현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극을 하고 싶다”고 소문 내고 다녔죠.(웃음) 2, 3년 됐어요. 그러던 중에 ‘조제’의 출연 제안을 받아 흔쾌히 결정했어요.
10. ‘조제’는 알고 있었던 작품입니까?
이정화 : 영화는 예전에 봤어요. 제안을 받고 다시 보니 느낌이 다르더군요. 깊이 빠질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딱이었죠. 조제란 캐릭터도 독특하고요.
10. 조제란 인물은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이정화 : 영화를 참고하면 관객들이 비교할 것 같았어요. 처음엔 머리카락도 영화 속 조제처럼 짧게 자르려고 했는데, 연출이 연극은 연극대로 짧든 길든 상관없다고 해서 색깔만 어둡게 하고 길이는 그대로 했습니다. 좀 더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을 더 많이 봤어요.
10. 같은 역을 맡은 두 명의 배우(문진아·최우리)가 있어서 더 고심했겠습니다.
이정화 : 연습 초반에 저를 보고 “조제가 여성스러워 보인다”는 반응이 있어서 어떻게 깨야 할지 고민했어요. 같은 역을 맡은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큰 힘이 됐죠. 모니터도 해주고 서로의 매력도 찾아줬어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며 연구했죠. 언니들이 저에게 기괴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걸 “잘 살려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연구했어요. 사실 조제는 첫 장면부터 신비하고 궁금한 인물이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풀어냈죠.
10. 어느 순간 노래가 나오는 뮤지컬과 달리 잔잔하게 감정선을 따라 흘러가는 연극이 쉽지만은 않았겠죠?
이정화 : 맞아요, 뮤지컬은 감정이 격해질 때 음악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잖아요. 그와 달리 연극은 스스로 감정을 쌓아가지 않으면 ‘그걸 왜 해?’라고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연극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10. 첫 도전이라는 불안함은 없었습니까?
이정화 : 굉장히 불안했어요.(웃음) “좋다”고는 하는데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기괴함’이라는 나만의 색깔은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죠. 그럴 때 동료 배우들이 용기를 줬어요. 처음엔 저를 보고 ‘대극장 무대에 오르다 와서 소극장 연기가 맞을까?’란 우려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짧은 시간에 여러 시도를 하고 노력하는 걸 보고 ‘뜻이 있어 왔구나’라고 생각을 바꿨다고요.(웃음)
10. 다리를 쓰지 못하는 배역이라 더 어렵고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이정화 : 장애를 가진 역할은 처음이니까 어색했어요.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니까요. 사실 공연 전 상·하체를 분리하는 운동을 했어요. 일종의 자세 교정 같은 건데, 그걸 하고 나니까 상반신과 하반신을 나누는 느낌을 대충 알겠더군요. 딱히 공연을 위해서 한 운동은 아니었는데 잘 맞아떨어졌죠. 어떤 날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아닌데도 눈물이 쏟아져요. 스스로도 ‘이렇게 벅찰 일인가?’ 싶죠.(웃음) 감정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도 연극만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이정화 : 처음에는 파트너를 섞지 말고 둘씩 짝을 이뤄 공연하자고 했어요. 그래야 더 깊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초반 이후부터 상대 배우를 달리하면서 공연을 했는데, 신선하고 풋풋한 느낌이 들더군요. 관객들도 더 좋아하고요.
10. 세 명의 배우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정화 : 서영주는 진지하고 조심스러워요. 공연할 때도 저를 소중하게 대해줘서 첫사랑의 풋풋한 느낌이 들죠. 실제 어린 친구라 배려심도 많고요. 김찬호는 웃기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요.(웃음) 엉뚱한 면이 많아서 공연할 때도 즐거웠죠. 백성현과는 공연을 딱 두 번 했는데, 그만의 매력이 있었어요.
10. 지난 29일 막을 내렸습니다. 첫 도전이라 더 서운하죠?
이정화 : 지방 공연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외에서도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같이 연기한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하는 연극인데 동료들이 잘 도와줘서 완성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아쉬운가 봅니다.
10. 조제를 표현하면서 삶에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습니까?
이정화 : 조제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가요. 결국 용기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줬죠. 누구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망치려고 하는데,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고요. 이번엔 그 반대에 서 있는 조제를 연기하면서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 여러 감정을 이해하게 된 서른에 ‘조제’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겠습니다.
이정화 : 그간 참여한 작품을 돌아보면 작품과 배우도 다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조제’도 그렇죠. 최근 출연하기로 한 뮤지컬 ‘아이러브유’도 15명의 역할을 소화해요. 제가 언제 해보겠어요?(웃음) 노래도 하면서 연기로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조제’를 하고 나서 용기도 얻었으니 순서가 잘 맞죠.
이정화 : 상대 배우가 내게 뭘 전하고 싶은지, 그걸 알아들을 때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무대 위에서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 ‘진짜’로 다가올 때가 있죠. 늘 새로운 게 무대 예술의 가치인 것 같습니다. 때론 영화처럼 좋은 장면을 돌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공연이 아련해서 좋아요.
10.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이정화 : 일하는 게 정말 즐거운 요즘이에요. 20대엔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고민했다면, 이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힘이 풀렸다는 거예요. 예뻐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고, 극 중 인물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니 가야 할 길을 알겠더군요. ‘믿고 보는 배우’가 가장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장르를 조금씩 넓히고 있으니 더 노력해서 기대에 부응하는 배우가 되도록 할게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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