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양준모 : 요즘 드는 생각인데, 7년 전과 다른게 행복한 긴장감과 사명감 같은 것들이 있다.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사실.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니까. 시국도 그렇고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 나라를 생각하시는 관객들이 작품을 보러 오시는 것 자체로 건강한 긴장감이 든다.
10. 사실 다시 출연을 결정하고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들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
양준모 : 연습을 하면서는 시국이 이렇지 않았다. 하면서 긴장감이 많이 들었다. 마치 군인처럼, 그런 긴장감이 생겼다. 2010년 이후로 다시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때만의 뜨거움이 있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10.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보다 뜨거움이 오르는 캐릭터를 많이 한 편인데도 안중근은 특별한 울컥함이 있나 보다.
양준모 : 처음 공연에 올랐을 때 안중근 의사와 나이가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에서 오는 동질감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서른 살의 배우가 안중근을 연기한다면 또 그만이 알 수 있을 거다. 학문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와 닿는 작품이 있는데 ‘영웅’이 그렇고, ‘스위니토드’가 그랬다.
10.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나라를 위해서 저렇게 희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렸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몇 배 더 강한 울림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된다.
양준모 : 내뱉는 가사 하나하나, 그게 가끔은 정말 연기하는 순간을 빠져나와 죄송하기도 했다. 이 감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부터 동양평화의 장면까지 내가 읊는 가사와 대사를 다 이해시키려고 했다.
10.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도 먹었기에, 7년 전에는 스쳐 지나갔지만 ‘이런 마음이었구나’라고 강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나 대사, 가사가 있겠다.
양준모 :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기억 못 할 텐데,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마지막 그날을 위해’라는 노래도 그렇고, 조마리아 여사가 수의를 주며 노래를 부를 때 2010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수의를 만들며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표현된다.
10. 사명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양준모 : 작품에 대해 재미있고, 멋있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라면 ‘영웅’의 리뷰 중 가장 기분 좋은 건 ‘독립을 위해 돌아가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는 말이다. 그게 우리가 작품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작품이 작품성을 내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특별한 감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거다.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한민국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모든 사람들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거다.
10. 매회 울컥하며 이어온 ‘영웅’, 어느덧 서울 공연의 막바지다.
양준모 : 매회 행복해하며 하고 있다. 우러나오지 않으면 눈물 연기를 잘 못하는 편인데, 다른 작품을 할 때와는 달리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눈물이 나온다. 연출이 진정하라고 할 정도로, 진심으로 눈물이 흐른다. ‘장부가’를 부른 뒤에 연출에게 ‘오늘도 (감정이 많이) 올라왔나요?’라고 묻는다. 첫 공연을 올리고 한동안은 계속 그랬다.
10. 그러고 내려오면 진이 빠져 있겠다.
양준모 : 7년 전에는 하루에 두 번 공연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끝나면 정말 말한 대로 진이 빠진다. 2회차 공연은 힘들 것 같다.(웃음)
10. 올라온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나. 쉽게 꺼지는 감정은 아닐 것 같은데.
양준모 : 이젠 작품 속 감정이 집에 돌아가서까지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장발장을 연기하면서는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들어서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돕기도 했다. ‘영웅’을 통해서는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이 공연이 끝난 뒤 ‘레미제라블’의 일본 투어를 위해 현지에 간다. 앞서 일본에 갔을 때도,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길은 나의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잘하는 것, 노래와 작품을 잘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거란 걸 알았다. 그때만큼은 내가 대한민국의 얼굴이 아닌가. 그래서 허투루 생활을 할 수 없다.
10. 작품이 배우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겠다.
양준모 : ‘스위니토드’를 처음 할 때 날카로웠다고 가족들이 그러더라. 스스로는 몰랐다. 이후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 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제 딸도 생겼고, 작품과 떨어져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배우는 자신의 상황과 대입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생각했을 때 지금이 오히려 더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시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걸 계속 억누르려고 애썼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기술적으로 옷을 입고 벗을 수 있게 말이다. ‘스위니토드’를 두 번째 할 때 해봤는데, 되더라. 무대 위 그 상황에만 집중하며 잘하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10. 매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최대치의 감정을 끌어내 캐릭터를 표현하는 일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하다.
양준모 : 존경까지…(웃음) 매회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제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준다. ‘자신과의 싸움’이니, 매일 이겨내야 한다고.
10. 빠져나오기 버거웠던 순간은 없었나.
양준모 : ‘오페라의 유령’의 장기 공연을 하면서 자꾸만 기능적으로 변하더라.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같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매일을 똑같이 새롭게 느끼는 게 쉽지 않다. 그만큼 정말 기술적으로 잘 해야 하는 거고, 그걸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영웅’은 매일 새로운 감정이 올라온다. ‘이번엔 느껴질까’하면서 무대에 오르면 더 많은 걸 얻는다. 정답은 없고 하면 할 수록 어려운 것, 배우의 숙명인 것 같다. 진짜 슬퍼서 울어야 관객도 공감할 수 있고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영웅’이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다행히 다른 세 명의 배우가 있어서 조금은 쉴 수 있다.(웃음)
10. 베테랑 중의 베테랑 아닌가.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기도 하겠다.
양준모 : 지금도 인터뷰 전 앙상블 친구들과 보컬 스터디를 하고 올라왔다. 작품을 할 때마다 많이 나누고 싶다. 줄 수 있는 경험을 나누고,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 보컬 코치, 트레이너이기도 하고 또 그게 내게도 도움이 된다.
10.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더 무겁기도 하고.
양준모 : 무대에서 목표로 하는 건 인간적인 표현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다. 인간적이란 건, 살인자를 연기하더라도 관객들이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숙제이다. 공연을 하면서도 찾게 되고, ‘영웅’에도 그 포인트들이 있다. 이토를 쏘기까지 안중근 장군의 삶과 마음이 잘 나와있다. ‘영웅’이 주는 단어의 이미지가 있는데 수많은 고통과 시련, 그리움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오롯이 작품에 나와있다. 역사적인 자료엔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안중근 장군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나와 있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래서 가사에는 ‘뛰는 내 심장이 들리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온다. 좀 더 인간적으로 극대화했다.
10. 캐릭터의 감정선이 잘 표현돼 있는 작품을 한다는 것, 배우로서도 만족스럽겠다.
양준모 : 정말, 그렇다. 최근 ‘레미제라블’의 일본 연출이 ‘영웅’을 보고 ‘양준모의 인격으로 안중근의 모든 감정이 이해가 됐다’고 말하더라. 연출의 시각인데다, 번역이 된 말이라 정확한 의미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간 작품을 통해 잘 쌓아왔고, 잘 표현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봐도, 더군다나 일본인이 봐도 작품에 잘 나와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10. ‘영웅’을 보고, 확실히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양준모 : ‘영웅’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마지막 감옥신, 동양평화를 위해 집중하는 장면인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 주변 지인이나 꼬마 아이까지 작품을 본 이들에게 다 물어봤다. ‘어느 장면이 가장 좋으냐’고. 모두 하나같이 ‘동양평화’라고 하는데, 가장 뿌듯했다.
10. 한번 더 한다면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품이 또 있을까.
양준모 : ‘스위니토드’와 ‘영웅’이었다.(웃음)
10. 모두 목표를 이뤘다. 게다가 ‘영웅’은 중국에서도 올렸고.
양준모 : ‘영웅’처럼 우리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있지 않나.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외국인에게도 잘 보여주는 것, 그게 우리 숙제다. 중국 관객들도 많이 울고 공감하시더라.
10. ‘영웅’에 이어 ‘레미제라블’을 위해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마음가짐이 또 다르겠다.
양준모 : 당시 ‘레미제라블’을 올리며 지진 트라우마도 생겼고 가족들과 다 같이 가야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았는데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게 내겐 보람 있는 일이다. ‘한국을 싫어하는데 저 사람(양준모)의 공연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을 한 번 더 듣기 위해서 간다. 다른 게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고 한국의 얼굴일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 아닐까.
10. ‘레미제라블’을 한 번 했지만 일본어로 모두 소화해야 하기에 바로 또 그 리듬을 익혀야겠다.
양준모 : 첫 공연을 준비할 때 6개월이 걸렸다. 사실 쉽게 준비하면 한 달 정도에 됐을 수도 있지만, 노력하는 김에 ‘다시 나를 부를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해서 매일 한겨울에 산에 오르며 외우고 또 외웠다. 동경 첫 공연 때 다시 콜을 받았다.
10. 또 한번 목표를 이뤘다. 이번엔 가족들과 같이 간다고 하니, 더욱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고. 믿고 따라주는 아내에게도 늘 고맙겠다.
양준모 :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가장 먼저 모니터를 받는다. 작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무엇보다 음악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날카로운 조언도 해준다.
10. MBC ‘라디오 스타’에서 들려준 아내와의 일화도 인상적이었는데, 예능 프로그램은 첫 출연 아니었나.
양준모 : 예능은 처음이었다. 뮤지컬만 하는 사람이니 신선하게 봐주신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꼭 네명이서 나가야 한다고 해서.(웃음) 평소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라디오 스타’를 아내와 같이 재미있게 봤다.(웃음) 작품에 관련된 다큐 프로그램에는 종종 나갔는데 예능은 말주변도 없고, 작품 얘기 외엔 못 한다.
10. 작품과 작품 사이 휴식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데, 이번엔 좀 어렵지 않을까.
양준모 : 작품을 끝나고 아무리 연이어 들어가더라도 좀 쉬었다가 하는 편이다. 여행을 가서 무조건 쉰다. ‘레미제라블’은 열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회 공연을 이어간다. 그래서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쉬려고 한다.(웃음)
10. 오페라 ‘리타’란 작품을 통해서는 연출가로서도 이름을 올렸다. 다양한 영역에 도전한다.
양준모 : 같은 작품의 연출을 3년 했지만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배우라면, 배우의 마음을 흔드는 건 연출이다. 그런 면에서 말도 잘 해야 하는데 설명이 잘 안된다. 연기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노래에 대한 설명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
10. 천재들은 설명을 못하긴 하던데.(웃음)
양준모 : 예를 들어 태어나면서부터 잘 했다면 그럴 수 있다. 나는 노래에 있어서 숱한 트레이닝과 연구를 했다. 그래서 설명을 잘 할 수 있다. 연기는 배우면 하고 있는 것과 이론이 부딪힐 것 같아서 작품으로, 경험을 통해 배우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왔다.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 수 있지만, 연출로서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반감만 생길 뿐이지 않나. 그래서 ‘리타’는 배우들이 만든 작품이다. 나는 연출보단 프로듀서의 역할을 했다.
10.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면 안주할 법도한데, 늘 도전이다. 다음이 궁금할 정도로.
양준모 : 클래식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도 클래식 레슨을 받고 있고,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것이 목표이다. 구체적으론 유학까지 생각하고 있어서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는다.(웃음) 쉬질 못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편이다. 클래식을 했던 사람으로 순수 예술이 그리워진다.
10.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는데,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양준모 : 가수는 기능적으로 가창을 하는 사람이라면, 배우는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페라도 배우다. 배우로 불리는 게 좋다.
10. 뮤지컬, 음악, 클래식, 오페라까지 이 모든 건 양준모에게 모두 같은 의미일까.
양준모 : 내게는 하나다. 그게 다 배우란 카테고리 안에 있다. 내레이션을 한다고 해도 배우 양준모의 목소리로 하는 것이고, 뮤지컬도 그렇다. 나는 그저 배우다.
10. 끝으로 ‘영웅’을 본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양준모 : 사실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사는 게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싶다. 안중근 장군을 연기한 배우로서 감히 드는 생각은 그가 무대에 서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영웅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자그만 실천으로 영웅이 되는 것’이라고.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꼭 한번 다시 서고 싶었던 무대에 올랐다. 분명 같은 인물에 표현해야 하는 것도 그대로인데, 7년 전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앞선다.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고, 매 순간 뜨거운 감정이 올라온다. 그렇게 배우 양준모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안중근의 옷을 다시 입었다.10. 7년 만에 다시 ‘영웅’으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날(2월 14일)이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다. 무대에 오르는 마음이 특별히 더 남다르겠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녹인 뮤지컬 ‘영웅'(연출 윤호진). 군더더기 없는 이 작품에서 양준모 역시 마찬가지로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안중근을 연기한다. 7년 전, 그리고 2017년 지금도 그는 관객을 울린다.
양준모 : 요즘 드는 생각인데, 7년 전과 다른게 행복한 긴장감과 사명감 같은 것들이 있다.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사실.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니까. 시국도 그렇고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 나라를 생각하시는 관객들이 작품을 보러 오시는 것 자체로 건강한 긴장감이 든다.
10. 사실 다시 출연을 결정하고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들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
양준모 : 연습을 하면서는 시국이 이렇지 않았다. 하면서 긴장감이 많이 들었다. 마치 군인처럼, 그런 긴장감이 생겼다. 2010년 이후로 다시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때만의 뜨거움이 있다.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10. ‘레미제라블’의 장발장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보다 뜨거움이 오르는 캐릭터를 많이 한 편인데도 안중근은 특별한 울컥함이 있나 보다.
양준모 : 처음 공연에 올랐을 때 안중근 의사와 나이가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이에서 오는 동질감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서른 살의 배우가 안중근을 연기한다면 또 그만이 알 수 있을 거다. 학문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와 닿는 작품이 있는데 ‘영웅’이 그렇고, ‘스위니토드’가 그랬다.
10. 관객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나라를 위해서 저렇게 희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렸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몇 배 더 강한 울림이 있었을 거라고 예상된다.
양준모 : 내뱉는 가사 하나하나, 그게 가끔은 정말 연기하는 순간을 빠져나와 죄송하기도 했다. 이 감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부터 동양평화의 장면까지 내가 읊는 가사와 대사를 다 이해시키려고 했다.
10.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도 먹었기에, 7년 전에는 스쳐 지나갔지만 ‘이런 마음이었구나’라고 강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나 대사, 가사가 있겠다.
양준모 :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 이름도 기억 못 할 텐데,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마지막 그날을 위해’라는 노래도 그렇고, 조마리아 여사가 수의를 주며 노래를 부를 때 2010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수의를 만들며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표현된다.
10. 사명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양준모 : 작품에 대해 재미있고, 멋있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라면 ‘영웅’의 리뷰 중 가장 기분 좋은 건 ‘독립을 위해 돌아가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는 말이다. 그게 우리가 작품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의 작품이 작품성을 내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특별한 감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거다.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한민국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모든 사람들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거다.
10. 매회 울컥하며 이어온 ‘영웅’, 어느덧 서울 공연의 막바지다.
양준모 : 매회 행복해하며 하고 있다. 우러나오지 않으면 눈물 연기를 잘 못하는 편인데, 다른 작품을 할 때와는 달리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눈물이 나온다. 연출이 진정하라고 할 정도로, 진심으로 눈물이 흐른다. ‘장부가’를 부른 뒤에 연출에게 ‘오늘도 (감정이 많이) 올라왔나요?’라고 묻는다. 첫 공연을 올리고 한동안은 계속 그랬다.
10. 그러고 내려오면 진이 빠져 있겠다.
양준모 : 7년 전에는 하루에 두 번 공연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끝나면 정말 말한 대로 진이 빠진다. 2회차 공연은 힘들 것 같다.(웃음)
10. 올라온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나. 쉽게 꺼지는 감정은 아닐 것 같은데.
양준모 : 이젠 작품 속 감정이 집에 돌아가서까지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장발장을 연기하면서는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들어서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돕기도 했다. ‘영웅’을 통해서는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진다. 이 공연이 끝난 뒤 ‘레미제라블’의 일본 투어를 위해 현지에 간다. 앞서 일본에 갔을 때도,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길은 나의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잘하는 것, 노래와 작품을 잘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거란 걸 알았다. 그때만큼은 내가 대한민국의 얼굴이 아닌가. 그래서 허투루 생활을 할 수 없다.
양준모 : ‘스위니토드’를 처음 할 때 날카로웠다고 가족들이 그러더라. 스스로는 몰랐다. 이후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 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제 딸도 생겼고, 작품과 떨어져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배우는 자신의 상황과 대입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생각했을 때 지금이 오히려 더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시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걸 계속 억누르려고 애썼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기술적으로 옷을 입고 벗을 수 있게 말이다. ‘스위니토드’를 두 번째 할 때 해봤는데, 되더라. 무대 위 그 상황에만 집중하며 잘하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10. 매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최대치의 감정을 끌어내 캐릭터를 표현하는 일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하다.
양준모 : 존경까지…(웃음) 매회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제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준다. ‘자신과의 싸움’이니, 매일 이겨내야 한다고.
10. 빠져나오기 버거웠던 순간은 없었나.
양준모 : ‘오페라의 유령’의 장기 공연을 하면서 자꾸만 기능적으로 변하더라.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같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매일을 똑같이 새롭게 느끼는 게 쉽지 않다. 그만큼 정말 기술적으로 잘 해야 하는 거고, 그걸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영웅’은 매일 새로운 감정이 올라온다. ‘이번엔 느껴질까’하면서 무대에 오르면 더 많은 걸 얻는다. 정답은 없고 하면 할 수록 어려운 것, 배우의 숙명인 것 같다. 진짜 슬퍼서 울어야 관객도 공감할 수 있고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영웅’이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다행히 다른 세 명의 배우가 있어서 조금은 쉴 수 있다.(웃음)
10. 베테랑 중의 베테랑 아닌가.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기도 하겠다.
양준모 : 지금도 인터뷰 전 앙상블 친구들과 보컬 스터디를 하고 올라왔다. 작품을 할 때마다 많이 나누고 싶다. 줄 수 있는 경험을 나누고,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 보컬 코치, 트레이너이기도 하고 또 그게 내게도 도움이 된다.
10.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더 무겁기도 하고.
양준모 : 무대에서 목표로 하는 건 인간적인 표현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거다. 인간적이란 건, 살인자를 연기하더라도 관객들이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숙제이다. 공연을 하면서도 찾게 되고, ‘영웅’에도 그 포인트들이 있다. 이토를 쏘기까지 안중근 장군의 삶과 마음이 잘 나와있다. ‘영웅’이 주는 단어의 이미지가 있는데 수많은 고통과 시련, 그리움을 더 많이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오롯이 작품에 나와있다. 역사적인 자료엔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안중근 장군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나와 있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래서 가사에는 ‘뛰는 내 심장이 들리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온다. 좀 더 인간적으로 극대화했다.
10. 캐릭터의 감정선이 잘 표현돼 있는 작품을 한다는 것, 배우로서도 만족스럽겠다.
양준모 : 정말, 그렇다. 최근 ‘레미제라블’의 일본 연출이 ‘영웅’을 보고 ‘양준모의 인격으로 안중근의 모든 감정이 이해가 됐다’고 말하더라. 연출의 시각인데다, 번역이 된 말이라 정확한 의미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간 작품을 통해 잘 쌓아왔고, 잘 표현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봐도, 더군다나 일본인이 봐도 작품에 잘 나와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10. ‘영웅’을 보고, 확실히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양준모 : ‘영웅’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마지막 감옥신, 동양평화를 위해 집중하는 장면인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 주변 지인이나 꼬마 아이까지 작품을 본 이들에게 다 물어봤다. ‘어느 장면이 가장 좋으냐’고. 모두 하나같이 ‘동양평화’라고 하는데, 가장 뿌듯했다.
10. 한번 더 한다면 더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품이 또 있을까.
양준모 : ‘스위니토드’와 ‘영웅’이었다.(웃음)
10. 모두 목표를 이뤘다. 게다가 ‘영웅’은 중국에서도 올렸고.
양준모 : ‘영웅’처럼 우리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있지 않나.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외국인에게도 잘 보여주는 것, 그게 우리 숙제다. 중국 관객들도 많이 울고 공감하시더라.
양준모 : 당시 ‘레미제라블’을 올리며 지진 트라우마도 생겼고 가족들과 다 같이 가야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았는데 필요로 하는 곳에 가는 게 내겐 보람 있는 일이다. ‘한국을 싫어하는데 저 사람(양준모)의 공연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을 한 번 더 듣기 위해서 간다. 다른 게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고 한국의 얼굴일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 아닐까.
10. ‘레미제라블’을 한 번 했지만 일본어로 모두 소화해야 하기에 바로 또 그 리듬을 익혀야겠다.
양준모 : 첫 공연을 준비할 때 6개월이 걸렸다. 사실 쉽게 준비하면 한 달 정도에 됐을 수도 있지만, 노력하는 김에 ‘다시 나를 부를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해서 매일 한겨울에 산에 오르며 외우고 또 외웠다. 동경 첫 공연 때 다시 콜을 받았다.
10. 또 한번 목표를 이뤘다. 이번엔 가족들과 같이 간다고 하니, 더욱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고. 믿고 따라주는 아내에게도 늘 고맙겠다.
양준모 :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가장 먼저 모니터를 받는다. 작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무엇보다 음악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날카로운 조언도 해준다.
10. MBC ‘라디오 스타’에서 들려준 아내와의 일화도 인상적이었는데, 예능 프로그램은 첫 출연 아니었나.
양준모 : 예능은 처음이었다. 뮤지컬만 하는 사람이니 신선하게 봐주신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꼭 네명이서 나가야 한다고 해서.(웃음) 평소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라디오 스타’를 아내와 같이 재미있게 봤다.(웃음) 작품에 관련된 다큐 프로그램에는 종종 나갔는데 예능은 말주변도 없고, 작품 얘기 외엔 못 한다.
10. 작품과 작품 사이 휴식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데, 이번엔 좀 어렵지 않을까.
양준모 : 작품을 끝나고 아무리 연이어 들어가더라도 좀 쉬었다가 하는 편이다. 여행을 가서 무조건 쉰다. ‘레미제라블’은 열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0회 공연을 이어간다. 그래서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쉬려고 한다.(웃음)
양준모 : 같은 작품의 연출을 3년 했지만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배우라면, 배우의 마음을 흔드는 건 연출이다. 그런 면에서 말도 잘 해야 하는데 설명이 잘 안된다. 연기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노래에 대한 설명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
10. 천재들은 설명을 못하긴 하던데.(웃음)
양준모 : 예를 들어 태어나면서부터 잘 했다면 그럴 수 있다. 나는 노래에 있어서 숱한 트레이닝과 연구를 했다. 그래서 설명을 잘 할 수 있다. 연기는 배우면 하고 있는 것과 이론이 부딪힐 것 같아서 작품으로, 경험을 통해 배우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왔다.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 수 있지만, 연출로서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반감만 생길 뿐이지 않나. 그래서 ‘리타’는 배우들이 만든 작품이다. 나는 연출보단 프로듀서의 역할을 했다.
10.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서면 안주할 법도한데, 늘 도전이다. 다음이 궁금할 정도로.
양준모 : 클래식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도 클래식 레슨을 받고 있고,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것이 목표이다. 구체적으론 유학까지 생각하고 있어서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는다.(웃음) 쉬질 못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편이다. 클래식을 했던 사람으로 순수 예술이 그리워진다.
10.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는데, 어떻게 불리는 게 가장 좋은가.
양준모 : 가수는 기능적으로 가창을 하는 사람이라면, 배우는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페라도 배우다. 배우로 불리는 게 좋다.
10. 뮤지컬, 음악, 클래식, 오페라까지 이 모든 건 양준모에게 모두 같은 의미일까.
양준모 : 내게는 하나다. 그게 다 배우란 카테고리 안에 있다. 내레이션을 한다고 해도 배우 양준모의 목소리로 하는 것이고, 뮤지컬도 그렇다. 나는 그저 배우다.
10. 끝으로 ‘영웅’을 본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양준모 : 사실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사는 게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 싶다. 안중근 장군을 연기한 배우로서 감히 드는 생각은 그가 무대에 서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영웅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자그만 실천으로 영웅이 되는 것’이라고.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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