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우리 착한 아람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엄마 오수진을 피해 세탁기 속에 숨은 아들 아람이는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날이 선 칼을 들고 집안을 뒤지며 어린 아들을 찾는 오수진의 모습은 기괴했다. 마침내 오수진이 세탁기 속에 숨어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OCN ‘보이스’에서 오수진을 연기한 배정화는 ‘세탁기 아줌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회에 첫 출연해 잔인한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오싹하게 하더니 이후 3회에는 그가 겪었던 과거 트라우마가 공개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배정화는 눈빛 안에 극과 극의 분위기를 담아내며 방송 초기 ‘보이스’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한 몫 했다.

실제로 만난 배정화에게서 학대범 오수진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단 2회 분량의 출연이었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세탁기 아줌마’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식어가 아니었다.

10. ‘보이스에 단 2회 출연으로 세탁기 아줌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실제로 보니 세탁기 언니.
배정화: 맞다. 실제로 아줌마는 아니다.(웃음) 이런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극에서 내 몫을 제대로 했다는 칭찬 같아서 다행이다.

10. 세탁기 광고를 하는 게 어떠냐는 반응 봤나?
배정화: 너무 웃겼다. 내 친구도 ‘너 이러다가 세탁기 광고 찍는 거 아니냐’고 묻더라. 내가 ‘너 같으면 세탁기 사장님이 나를 쓰고 싶겠니. 그 난리를 쳤는데’라고 말했다. 알아봐주는 게 신기했다. 심지어 방송 이후에 미용실에 갔더니 “‘보이스’에 나온 여자가 언니냐‘고 묻더라. ’혹시 손님들이 물으면 실제로는 엄청 밝고 착하다고 말해줘‘라고 부탁했다.

10. 소름 끼치는 연기가 화두에 올랐다.
배정화: 내가 알려진 배우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더 몰입하기 쉬웠을 것 같다. 우리 주변에 정말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나도 보면서 무서웠다. 특히 2화 엔딩장면에 세탁기 안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연기는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고 카메라 각도와 음악, 아람이(최승훈)의 리액션 등이 합쳐져서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10.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배정화: 아람이가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어른들이 ‘물 더 데워!’ ‘아람이 수건!’ 외치면서 더 예민했다. 오히려 아람이는 옷을 더 찢어야 한다며 의연했다. 쉬는 시간엔 아람이와 같이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내가 들고 있는 모형 칼에 관심을 보이더라. 촬영 전엔 힘들었지만 촬영 현장은 재미있었다.

10. 그 전에 왜 힘들었는지?
배정화: 오디션을 보고 대본을 받은 이후에 ‘이 연기를 잘 해내면 인생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를 얻는다는 게 아니라, 내가 배우로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잘 해내고 싶었다. 오디션에선 감독님한테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떵떵 쳤는데 막상 대본을 받으니 부담이 되더라.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부담이 큰 만큼 준비도 많이 했겠다.
배정화: 외적으로 마르면 캐릭터가 더 기괴스러울 것 같았다. 동네 주민들 앞에선 연약해 보일 수 있고, 아들을 학대할 땐 더 살벌해 보일 수 있으니까. 원래 마른 편이라 조금만 빼려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39kg까지 빠지더라. 생존만 가능한 몸무게였다. 그래도 극중 아람이를 욕조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누르는 뒷모습이 전파를 탔는데, 그 앙상한 몸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더라. 내가 원하던 비주얼이었다.

10. 감정적으로 준비했던 점도 있을까?
배정화: 대본을 보면서 혼자 감정을 상상했다. 감독님은 ‘대본에 갇히지 말고 몰입해서 연기를 하라’고 주문해서 캐릭터의 행동을 예상하며 대본에 메모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세탁기에 숨은 아람이를 찾아 꺼낸 뒤엔 그를 달래기 위해 동요를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서 어려운 동요까지 외웠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몰입을 하니 도저히 동요가 안 나오더라. 잘못했다는 아람이의 말에 ‘너무 늦었어’라고 답을 했어야 하는데 아이의 입을 막고 ‘입닥쳐 울지마’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 외에도 애드리브가 많았다. 대본엔 ‘사라진 아람이를 찾는다’는 지문만 있었다. 감정에 대해 준비를 철저히 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방을 뒤지며 내가 중얼중얼 거리고 있더라. 강권주(이하나)에게 울면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 역시 애드리브였다.

10. 연극을 오래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 건 그리 많지 않다. 배우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을까?
배정화: 얼굴을 알리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돈을 벌려고 한 일도 아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상황도 많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물론 조급함이 있다. 내가 가진 조급함은 나이가 드는 만큼 연기를 더 잘해내야 한다는 마음일 뿐이다.

10. 그럼 배정화가 연기를 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배정화: 매번 바뀌지만 지금은 ‘즐겁게 하자’. 이 전에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연극을 했고 나이도 조금 있다 보니 연기를 굉장히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니 연기를 즐길 틈이 없었다. 그렇게 사니 힘들더라.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재미있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즐기자’는 결론이 나왔다.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OCN 드라마 ‘보이스’ 에서 열연한 배우 배정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 루이비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다.
배정화: 2009년에 모든 걸 그만 두자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에 들렀다가 호주에 가는 계획을 세웠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고 외국에서 살지도 모른다며 떠났다. 6개월 정도 인도에 머물렀는데 TV도 안 보고 집과 영어학원만 다니니 심심하더라. 그 순간에 그동안 피해왔던 걸 마주하게 됐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래서 어쩌고 싶은지 고민했다. 그 사이에 비자가 만료됐고 호주로 가야 하는 시간이 왔는데 갑자기 한국에 돌아가서 연기를 하고 싶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며 느꼈던 초심을 되찾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고, 바로 오디션을 본 뒤 연극을 했다. 그 연극에서 인연이 닿은 조재현 선배님의 추천으로 첫 영화도 만나게 됐다.

10. 이젠 떠나지 않을 건가?
배정화: 늘 떠나고 싶다. 한 작품을 마치면 정리를 위해 늘 여행을 간다. 주변에선 부자냐고 그러더라. 요즘은 돈을 벌어도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그래서 버는 만큼 써버리자는 주의다. 명품은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 그저 여행. 태국을 많이 가는데, 그 이상의 돈은 아직 못 받아봐서 나간 적이 없다.(웃음) 여행을 떠나도 돌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다. TV와 핸드폰 없이 먹고 자는 게 낙이다.

10. ‘보이스촬영 이후에도 태국에 다녀왔나?
배정화: ‘보이스’ 촬영이 조금 늦어져 2달 정도 준비기간이 있었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촬영 전에 다녀왔다. 여행 직전에 있었던 대본 리딩에서 감독님이 ‘너무 생각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그러니 여행길이 편할 수가 있었겠나. 계속 생각하고 대본에 또 적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귀국한 다음날 바로 대본 리딩이 있었는데 모든 걸 내려놓고 캐릭터만 생각하며 연기했었다. 그땐 감독님께 칭찬을 받았다.

10. 완벽주의자 같다. 한 치의 미흡함도 용납을 못하나보다.
배정화: 맞다.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내 장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만큼 내 단점도 안다. 그러니 단점을 더 빨리 보완하고 싶은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예민해진다. 그런데 연기를 더 오래한 선배들도 촬영 전날엔 잠을 설치기도 한다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오만했나 싶었다. 내가 뭔데 완벽을 꿈꿀까. 그런 생각이 계속되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결론이 나더라.

10. 앞으로 보여줄 것에 대한 욕심도 많겠다.
배정화: 다작을 하고 싶다.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만나면서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을 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예전엔 느끼지 못했는데, 작품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게 정말 좋더라. 스타라는 게 하늘에 있는 별이 아니다. 대중들을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싶다. 실제로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주면 답도 해준다. 상대방이 더 당황하더라.(웃음)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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