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정준일
정준일
“저는 10원 한 장 못 받았어요.” (2015.07.01. ‘라이브’ 음반 청음회 中)

가수는 직업의 한 종류다. 직업을 가진 이는 마땅히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수 정준일은 다르다. 일을 하는데, 잔고는 줄어든다. 마음만 먹으면 남의 지갑 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정준일은 좀처럼 쉬운 길을 택할 줄 모른다. 아, 이 남자의 넘치는 욕심을 어쩌면 좋으랴.

지난 2014년의 일이다. 정준일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4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사랑 콘서트’를 개최했다. 약 3000여 석 규모의 공연장. 그런데 무대에 오른 스태프는 100여 명에 달했다. 규모에 비해 상당히 많은 인원. 덕분에 정준일의 손에 쥐어진 금액은 턱없이 적었다. 그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공연이 끝난 뒤, 나는 10원 한 장 못 받았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멈춘 그가 아니다. 정준일은 이듬해 ‘사랑’ 콘서트의 실황 앨범 제작에 나섰다. 공연 실황 앨범은 통상 돈을 바라고 내는 게 아니다. 믹싱과 마스터링엔 꽤나 많은 노력이 들지만, 수익은 적다. 한 가요 관계자는 “실황 앨범은 제작에 들이는 공력과 투자에 비해 애초부터 상업적 수익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수익이나 매출이 정규 앨범의 30% 수준에 불구하다”고 증언했다.

결국 뮤지션의 욕심과 자신감이 없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일들이다. 정준일은 지난해 7월 열린 ‘사랑’ 콘서트 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을 하면서 좀 더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사랑’ 콘서트 당시, 오케스트라를 쓰되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받는 개런티를 포기하더라도 제작에 큰 금액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정준일 '언더워터'
정준일 '언더워터'
14일 발매된 ‘언더워터(UNDERWATER)’도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음반 수량부터가 1000장 한정으로 제작된다. 심지어 소속사 관계자마저, 대놓고 “이번 앨범은 대중이 공감하기 힘든 앨범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거라고 판단돼 앨범은 소량 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청중의 평가는 후했다. 앨범 소개글을 작성한 이동진 평론가는 “이토록 처연하고 이토록 매캐한 음악. 소금기가 진하게 묻어 있는 목소리.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멜로디”라고 찬사를 보냈다. 타이틀곡 ‘플라스틱(PLASTIC)’은 음원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보이고 있다. 발매일 오전 기준, 엠넷, 벅스, 네이버 등 3개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에서 10위권 대에 오르는 성적을 자랑한다.

가수는 직업의 한 종류다. 직업을 가진 이는 마땅히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삼단논법에 의거하여, 가수는 마땅히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돈이 음악에 앞서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할 일이다. 정준일은 ‘돈 욕심’을 내려놓은 뮤지션이, 어떻게 수작을 탄생시키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혹여 정준일의 잔고를 걱정하는 이가 있을까 싶어 덧붙인다. 정준일은 오는 3월 4일부터 6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단독콘서트 ‘너에게’를 개최한다. 티켓은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엠와이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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