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윤종신
윤종신
“저는 천재가 아니에요. (중략) 사실 가사도 처음에는 잘 못 썼어요. 그런데 이 천재들 틈에서 음악을 하려면 내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평범함 속에 있는 깨알 같은 발견이더라고요. 발명은 천재가 하는 거고, 발견은 성실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가사를 읽고 ‘아니,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지’ 하는 공감이죠.” (SBS ‘힐링캠프’ 출연 당시 윤종신의 말)

윤종신을 ‘천재’로 일축해버리는 건 대단한 실례다. 물론 그의 음악에 찬사를 보내고픈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천재’라는 단어는 그 후광이 너무도 강렬해 그의 성실성과 관찰력을 가려버릴 소지가 다분하다. 타고난 능력에 안착해 질주하는 대신, 윤종신은 ‘생활의 발견’을 이어갔다.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때문에 윤종신의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라는 경탄보다는 ‘아!’ 하는 공감이 인다.

윤종신은 오는 29일과 30일, ‘작사가 콘서트 : 그늘-땀 흘린 자를 위하여’를 개최한다. 윤종신은 이번 콘서트에서 가사가 돋보인 그의 노래들을 선사하며, 이를 통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할 계획이다. 콘서트에 앞서, 가사가 좋은 윤종신의 노래들을 미리 만나본다. (해당 순위는 윤종신의 페이스북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를 따랐다.)

팬이 좋아하는 작사가 윤종신의 노래 1-3위
팬이 좋아하는 작사가 윤종신의 노래 1-3위
1위 2012 월간 윤종신 6월호 ‘오르막길(with 정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윤종신이 정인, 조정치 커플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다. 이들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느낌이 있다. 제 3자가 보기에도 말이다. 덕분에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라는 가사가 유독 가슴에 박힌다. 정인이 ‘오르막길’을 결혼식 축가로 정한 것도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란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에 만나”라는 다짐은, 흡사 윤종신이 건네는 축복 같기도 하다.

2위 윤종신 11집 ‘내일 할 일’
“안녕 오랜 나의 사람아 내일 슬프지 않기로 해.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눈물은 미련이라는 것 쯤 서로의 가슴을 알기에 우리 편하게 내일 이별해”

이별을 앞둔 밤, 남자는 침착함을 작정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오죽하면 “하루 종일 이별 준비”를 할까. 하지만 그는 “눈물은 미련이란 것 쯤”을 알기에, 무덤덤한 이별을 준비한다. 그것은 연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남자의 솔직한 속마음은 결국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바로 다가오는 다음 날부턴 단 하나의 준비조차 없는데, 그날부터 난 뭘 해야 하는 건지.” 때론 덤덤한 일기가 울부짖음보다 더 슬프기도 하다. 바로 이 노래처럼.

3위 2011 월간 윤종신 6월호 ‘말꼬리(with 정준일)’
“너만큼 사랑하지 않았었나봐. 나는 좀 덜 사랑해서 널 못 보내. 가슴이 너무 좁아. 떠나간 너의 행복 빌어줄 그런 드라마 같은, 그런 속 깊은 사랑 내겐 없으니”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한다는 말을 믿는가. 이 곡의 화자는 “사랑하기에 널 보낸다”는 연인에게, “나는 좀 덜 사랑해서 널 못 보내”라고 말꼬리를 물며 헤어짐을 미룬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헤어지느냐는 뻔한 항변을, 윤종신은 참으로 처절하게 그리고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의 사랑 메말라 갈라질 때까지 다 쓰고 가”, “손톱만큼의 작은 사랑도 내게 다 주고 가요” 등의 가사가 바로 그것. 가창자 정준일과의 궁합도 좋아서, 역대 ‘월간 윤종신’ 발표곡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곡 중 하나다.

4위 성시경 2집 ‘넌 감동이었어’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그 순간을 잃는다면 내가 살아온 짧은 세월은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남자는 찬란했던 시간을 회상한다. “너와 나 정말 그때는 좋았었나봐. 나 화낼 줄도 몰라 내내 즐거웠대.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곡 전체에서 그다지 많지 않은 비중이다. 그러나 곡 전반의 정서를 좌우할 만큼 많은 공이 들어간 가사다.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더해져, 애틋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감동이었다’는 말이 이토록 감동적인 것임을, 이 노래를 통해 알았다.

5위 아이유 미니 3집 ‘첫 이별 그날 밤’
“수고했어,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 우리 이별을 고민했던 밤. 서로를 위한 이별이라고 사랑했단 너의 말을 믿을게”

윤종신이 가사를 잘 쓴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작사의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넓을 줄이야. 단순히 이 곡의 여성적인 어조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첫 이별’을 그려낸 디테일이 놀랍다. 처음이기에 적당함을 몰랐을 연애. 그래서 익숙함을 몰랐을 상처. 소녀는 “수고했어,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이라며 요령 없던, 그래서 더 지쳤던 마음을 자위한다. “혹시 너무 궁금해 혹시 너무 그리우면 꼭 한번만 보기로 해” 스치듯 얘기하지만, “내게 돌아올지 모를 너를 꿈꾸는” 미련이 기저에 깔려있다. ‘슬픔’이나 ‘아픔’과 같은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토록 솔직한 고백을 전한다. 역시 윤종신, 음악왕답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미스틱89, 윤종신 페이스북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