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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50년, 100년 후 역사가들에게 3개 방송사의 일주일치 프로그램을 남겨준다면 그들은 우리가 사는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흑백과 컬러로 된 방종의 증거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린 너무 부유한 나머지 자만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듣기 거북한 말에는 으레 과민반응을 보이죠.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대한 몸집에 만족해 TV 위주로만 세상을 보면 망상에 빠져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밖엔 안 됩니다.”

냉전시대에 미국을 공포로 휩싸이게 한 매카시즘, 그리고 조셉 메카시 상원의원과 맞선 전설적인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를 다룬 영화 ‘굿 나잇 & 굿 럭’에 나오는 연설이다. 이 연설은 1958년 10월 15일 시카고에서 열린 텔레비전 뉴스극장 연차총회에서 연사로 초대된 머로가 실제로 한 것이다.

영화 ‘파티51’을 보고 위 연설이 떠올랐다. ‘파티51’은 2010년 홍대입구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두리반’을 돕기 위한 음악페스티벌 ‘뉴타운컬쳐파티 51플러스’(이하 51플러스)를 개최한 인디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당시 이 이야기는 몇몇 언론에 의해 보도되기도 했다. ‘파티51’은 당시 현장에서 벌어진 뮤지션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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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 회기동 단편선, 밤섬해적단, 하헌진, 박다함 등의 뮤지션들은 두리반을 위해 ‘궐기’하고 두리반에서 음악페스티벌 ‘51플러스’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궐기하는 과정이 재밌다. 음악이 난해하다는 이유로 일반 라이브클럽에 서기 어려웠던 인디 신의 새로운 뮤지션들이 두리반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연을 하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모였다. 두리반은 건강한 놀이터가 됐고, 이 놀이는 두리반 투쟁을 알리는 매개체가 됐다. 놀이와 투쟁이 뒤섞인 행위를 이어가며 뮤지션들은 정신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점점 성장해간다.

2011년 5월 두리반에서 열린 ‘51플러스’를 취재했었다. 당시 두리반은 전기가 끊긴 상황이라 건물에 전기를 대기 위해 자가발전기가 쉴 새 없이 돌았고, 모인 뮤지션들과 사람들은 야외무대를 만들기 위해 토목공사도 직접 했다. 당시 회기동 단편선은 “이 행사를 치르면서 음악가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악가들의 힘이었을까? 결국 두리반은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당시 현장을 취재할 때 한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가 바로 ‘파티51’을 연출한 정용택 감독이었다. 지난 1월28일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영화 상영회에서 다시 만난 정 감독은 “연출은 최대한 자제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려 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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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택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것은 뮤지션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참여다. 뭔가 거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동조한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또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음악적인 성장을 이뤄나간다. 이 다큐의 마지막 부분에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밤섬해적단이 일본 공연에 초청을 받고, 404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을 받고, 하헌진이 GQ에서 올해의 남자로 선정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일종의 해피엔딩처럼 말이다.

물론 남겨진 세상이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다. 다큐에 나왔던 뮤지션들은 여전히 힘들게 음악을 하고 있고, 다시 생긴 두리반도 자릿세 때문에 운영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파티51’에 담긴 활동들이 없었다면 현실은 더 비루해졌을 것이다.

‘파티51’은 독립영화로 상영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영화가 가지는 빛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뮤지션들을, 외면하지 않은 영화. 우리가 얻은 이 소중한 다큐는 앞으로 많은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음악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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