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옆으로 까마득한 후배들인 민채, 요조, 프롬, 타루, 최고은이 섰다. 장필순이 샘터 파랑새에서 들국화 ‘오빠’들과 함께 소극장 무대에 올랐을 때가 80년대 중반이다. 약 30여 년이 흐른 2014년 7월 1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장필순은 후배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져서, 또는 다독이면서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와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를 노래했다. 거대한 거목 옆에 파릇한 이파리들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 광경이 썩 보기에 좋더라.
7월 17~1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회 ‘사운드 페스티벌’에서는 한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녀의 삶을 살다’를 부제로 한 무대에는 장필순, 타루, 요조, 한희정, 프롬, 민채, 최고은이 무대에 올랐다.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조합이다. 장필순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표상과 같은 존재. 요조, 타루, 한희정은 한때 홍대 여신으로 불렸지만, 최근에 낸 앨범들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색을 갖춘 성숙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최고은은 최근 영국 ‘글래스턴베리’를 다녀왔고, 프롬, 민채는 신예로 급부상 중이다.
공연에서 이들 뮤지션들은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한희정은 공연 중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최고은은 이 땅에서 여성으로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짧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필순은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 함춘호의 기타에 장필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정말 축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진장 들었고, 라이브로도 여러 번 봤던 ‘어느새’가 이날따라 더욱 절절하게 들렸다. 단지 연륜 때문이었을까? 새삼 김현철은 어떻게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 이제는 그리움도 지워져 버려’라는 멋진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장필순은 이 가사를 이토록 가슴에 파고들게 노래할 수 있는지. 가사를 청자에게 전달하는 힘.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준흠 ‘사운드 페스티벌’ 총감독은 “2013년 한국 대중음악을 나름 정리한다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해’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장필순, 한희정, 요조, 타루, 최고은, 민채, 프롬뿐만 아니라 오지은, 희영, 수상한 커튼, 나는 모호, 김가영, 손지연, 정란, 조정희, 홍혜주, 김윤아(자우림) 등은 예상치 못했던 작품으로 놀라움을 준 경우도 있고 이전과 동일하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마치 같이 모여서 의기투합이라도 한 것 마냥 균일하게 잘 만든 음반들을 발표했다”며 “한국 인디음악 신은 그간 다분히 ‘남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주도했던 음악씬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요한 1세대 인디뮤지션들을 보더라도 다 남자들이었고, 인디음악에서 ‘작품’을 얘기할 때 여기는 주로 남자들의 세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아마 한국에서 인디음악 신 탄생 이래 2013년 같은 해는 처음이지 않나 한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장필순은 “오늘 모인 이들 외에 좋은 음악을 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참 많다. 멋 안 내고 노래만으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런 친구들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후배들과 함께 해서 무척 좋다”며 흐뭇해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사운드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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