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솔직하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한참을 곱씹은 뒤 나직하게 뱉어내는 말들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에서부터 비롯된 자신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차기작 계획을 묻는 말에 “정통 멜로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현중, 그는 어느덧 남자 냄새를 풀풀 풍기는 진짜 배우가 돼 있었다.

최근 김현중은 KBS2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이하 ‘감격시대’)의 신정태 역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1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라는 타이틀보다도 더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바로 그의 연기 변신. 기획 당시만 하더라도 그가 맡은 역할이 액션과 감정 연기를 두루 소화해야 하는 탓에 우려의 시선도 따랐지만, 결국 김현중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되레 잡음만 무성했던 ‘감격시대’의 유일한 성과가 ‘김현중의 재발견’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로 스물아홉, 배우이자 남자로서 중요한 기로에 선 김현중은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배우로서 맞은 첫 번째 터닝 포인트 뒤에도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해야 할 일들이 늘었다”고 털어놓는 그의 진지한 표정에선 연기에 대한 갈망과 결기가 읽혔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그리고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뜻 모를 기대감을 품게 하는 배우 김현중은 그렇게 또 다른 터닝 포인트를 준비 중이었다.

Q.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3개월간 함께한 ‘감격시대’를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김현중: 1년 같이 느껴지는 3개월이었다. (웃음) ‘감격시대’는 작년 6월부터 준비했다. 근 10개월간 ‘신정태’라는 인물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고민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끝까지 작품을 사랑해주신 시청자들 덕분에 잘 마무리한 것 같다.

Q. 방송 내내 캐릭터에 몰입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었나.
김현중: 모든 장면을 100%의 힘을 다해서 찍었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려 애썼다. 여기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는 자질이 없다는 걸 받아들일 각오였다.



Q. 원톱 주연 배우인 만큼 우려의 시선도 뒤따랐던 것도 사실인데 초반부 오열 연기와 함께 그런 우려가 불식됐다.
김현중: 오열도 오열이지만, 연기를 그런 관점에서만 보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화내는 것, 웃는 것, 슬픈 것, 매순간 연기하는 모든 감정이 오열만큼 어려운 거다. 숟가락 하나를 쥐는 것도 수많은 고민 끝에 나온 연기다. 항상 대본에 나온 것 이상의 무언가를 상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 사진을 보면서는 그의 일생과 행동들을 상상했고 여동생을 보면서는 사소한 습관과 말투까지 상상해보려고 했다. 매일 그런 생각들뿐이어서인지 꿈도 ‘감격시대’ 꿈을 꿨다. 많이 자봐야 하루 2~3시간씩 쪽잠을 자는 건데, 그때도 꿈속에서 신이치(조동혁)와 왕백산(정호빈)이 나를 쫓아오더라. (웃음) 그럴 때는 정말 ‘내가 여기 젖어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Q. 아무래도 ‘감격시대’를 통해 당신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KBS2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 속 반듯한 이미지를 지운 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현중: 굳이 ‘꽃남’ 이미지를 깨려고 한 적은 없다. 이미지의 선택은 대중의 몫이지 않나. 다만 그런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연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시대극을 선택한 것도 스스로 연기를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보려는 이유였고. 많은 준비를 했던 만큼 그런 감정을 풀어낼 만한 방법은 나에게 꼭 맞는 캐릭터를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Q. 연기력에 대한 호평에는 액션신에 대한 평가도 포함돼 있었다. 처음 접하는 액션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김현중: 액션스쿨을 며칠 다니기는 했지만, 연습을 많이 한 건 아니다. 액션연기를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액션은 합이 아니라 감정이다”는 거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과 사랑하는 사랑과 싸우는 건 느낌이 많이 다르다. 후자의 액션이 더 어렵고 감정도 복합적이다. ‘감격시대’를 통해 액션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Q. 이번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는 어떤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나.
김현중: 생각한 것 이상으로 평가가 좋았다. 다만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안주하거나 또다시 ‘신정태’와 같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건 의미가 없다. 지금의 성과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보여드려야 한다. 예술은 끝이 없으니까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Q. 작가 교체부터 제작비 논란까지, ‘감격시대’는 방송 내내 잡음에 시달렸다. 연기하는 데 영향을 받지는 않았나.
김현중: 마음이 복잡하기는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어쨌든 주연배우로서 촬영은 계속 해야 하니까. 대본을 외울 시간이 5분뿐이 없다고 해도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연기를 뽑아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작가가 교체된 것도 크게 영향은 없었다. 이미 내가 상당 부분 ‘신정태화’ 돼 있어서 무엇을 보든 캐릭터에 맞게 풀어낼 수 있게 되더라. 또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았다. 힘든 상황도 있었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던 건 배우들의 공이 컸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그 장면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모두의 몰입도가 좋았다.



Q. 작품이 끝난 뒤라 하는 이야기지만, “1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치고는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평도 더러 있었다. 그만큼 처음부터 ‘감격시대’는 작품 외적인 것들로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그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또 다른 숙제였겠다.
김현중: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부담감은 전혀 못 느꼈다. ‘김현중’이었다면 당연히 떨리고 부담됐을 거다. 근데 나는 ‘감격시대’에서 만큼은 ‘김현중’이 아니라 ‘신정태’였다. 정재화(김성오)와 함께 방삼통 사람들이 내게 무릎을 꿇었을 때 자연스레 눈물이 났던 것도 그런 이유다. 작품을 향한 기대에 대한 부담보다도 함께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배역으로서도, 작품 외적인 것에 대해서도.

Q. 길지 않은 연기 생활 중 현대극에 이어 시대극까지 두루 경험했다. 둘 중 당신에게 잘 맞는 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김현중: 확실히 시대극이 힘들다. (웃음) 대사 톤이나 행동 등을 많이 억눌러야 한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반면 시대극의 장점이라고 하면 연기를 통해 ‘과거를 산다’는 거다. ‘타임머신’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게 시대극이지 않을까. 시대적인 감성, 문화, 사건들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게 따로 있을까 싶다. 나도 ‘감격시대’를 찍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 ‘1930년대는 이렇게 쓸쓸했던 시기였구나’, ‘가족을 지키려고 해도 맨 주먹뿐이구나’, 또 ‘문자(핸드폰 메시지)도 없으니 오해의 소지도 없구나’ 하고. (웃음)

Q. 원래 가수로서 견고했던 해외 팬덤이 활동을 병행하면서 한층 공고해질 듯한 느낌이다. 배우로서 해외진출을 해볼 계획은 없나.
김현중: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무리 더빙을 하고 자막을 쓴다고 해도 단순히 인기를 위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언어로 연기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무엇이든 돈을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다. 원래 ‘진짜’가 아닌 건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게 일본어나 중국어는 아니다. 아마 배운다면 영어가 될 것 같다. 그게 더 많이 쓰는 말인 것 같아서. 내가 다양한 언어를 배울 머리는 안 된다. (웃음)

Q. 그런 측면에서 ‘배우 이병헌’을 보면 어떤가. 한국 배우 중에는 정식으로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한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김현중: 아, 정말 존경한다. 그분이 연기하는 걸 보면 정말 외국 사람이 모국어로 연기하는 것 같다. 정확히 언어를 구사하고 그 언어에 담긴 감정을 인지하고 하는 연기. 나도 기왕 할 거라면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Q. ‘가수’와 ‘배우’로 번갈아가며 대중을 만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그중에서도 ‘배우’에 무게를 많이 두는 편이다.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김현중: 가수의 피도 있고 연기자의 피도 있다. 어느 것 하나 특출나지는 않지만. (웃음) 어느 것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둘 다 병행하되 그 방법에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수 출신 배우가 왜 이렇게 인정을 못 받을까?”라는 고민을 해보니, 이미지가 소진된 뒤라 그들의 연기가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 쪽이든 대중이 이미지를 잊을 시간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분간 가수 활동은 투어 중심이 될 것 같다.



Q. ‘감격시대’로 첫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배우로서도 중요한 나이가 됐다. 어떤 계획들을 세우고 있나.
김현중: 배우로서는 아름다운 멜로를 해보고 싶다. 로멘틱 코미디는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김현중은 ‘꽃남’ 대사를 인용하며 “그건 연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냐. 그런 명대사는 향후 100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처럼 솔직히 말이 안 되는 대사가 많다. 멜로는 일상에 있는 주제니까 그 부분을 좀 더 깊게 파 보고 싶다.

Q. 남자로서는 어떤가. 올해로 스물아홉이다.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겠다.
김현중: 남자로서는 내년에 군대에 갈 계획이다. (Q.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잊히지 않기 위해 입대를 미룬 거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까지 입대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후회가 없기에 걱정도 없다. (웃음) 그곳에 가서까지 잊힐까봐 걱정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다녀온 뒤에 좀 더 진중한 연기도 보여드리고 음악은 팬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나의 색이 좀 더 담긴 밴드 음악을 할 것 같다. 또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매력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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