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걸 배우 윤지온은 몸소 보여줬다. 2016년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뮤지컬과 드라마, 영화까지 넘나들며 활동 폭을 넓혔다.10. 드라마 종영 인터뷰는 처음이죠?
지난해 Olive 드라마 ‘은주의 방’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아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이효봉 역을 맡았다. 극중 친누나인 은정(전여빈 분)을 비롯해 진주(천우희 분)·한주(한지은 분)와 한집에 살면서 같이 웃고 떠들고, 때로는 고민도 했다. 그의 연기는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웠으나 사실 윤지온은 작품에 뒤늦게 합류했다. 당초 효봉 역에 캐스팅돼 촬영하던 배우가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하차했던 것. 반(半)사전제작으로 방송 5개월 전부터 촬영에 돌입한 ‘멜로가 체질’은 첫 방송 날짜까지 미루며 다시 촬영해야만 했다. 다른 배우들은 3월부터 모여 호흡을 맞췄지만 윤지온은 7월에야 촬영장에 들어섰고, 12회까지 찍어놓은 효봉의 분량을 다시 찍었다. 연극과 뮤지컬로 다져진 연기력과 가창력, 여기에 기타 연주까지 가능한 점이 그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소중한 기회를 잡고, 다시 없을 경험을 한 윤지온을 지난 4일 만났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가며 분위기를 휘어잡다가도 천진한 표정으로 웃을 땐 영락없는 동생 효봉이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 배우가 다음에는 어떤 기회를 잡을지 궁금해진다.
윤지온 : 공연 관련 인터뷰는 공연 전이나 공연 중에 하는데, 작품이 끝난 뒤에 인터뷰를 하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아쉬움이 더 커지는 기분이에요.(웃음)
10. ‘멜로가 체질’을 마친 기분은요?
윤지온 : 시원섭섭함에서 섭섭함이 훨씬 커서, 마지막 촬영 때 (한)지은 누나가 울었는데 그때도 끝나는 게 실감이 안나더라고요. 지은 누나를 달래기 바빴는데 집에 돌아와서 혼자 있으니까 울컥하더군요. 끝나는 게 뒤늦게 실감이 나서 울었어요.
10. 뒤늦게 합류해 부담이 컸을 텐데, 해냈다는 안도감도 있을 것 같아요.
윤지온 : 잘하지 못한 것 같아서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컸어요.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면 자유롭게 연기를 했을 텐데…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긴장을 하니까 몸이 경직되고, 그래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보이더군요.
10. 전체적으로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군요.
윤지온 : 원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면 끝”이라는 어떤 배우의 말이 와 닿았는데, 솔직히 말해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10. 준비 기간이 짧아서 아쉬운 거죠?
윤지온 : 기타와 노래를 짧게 준비했어요. 여유가 있었으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죠.(웃음)
10. 촬영에 합류한 건 언제죠?
윤지온 : 다른 출연자들은 3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저는 7월 마지막 주에 첫 촬영을 했어요. 섭외 요청은 촬영하기 일주일 전이었고요.(웃음) 정말 다행인 건 그래도 기타 연주를 조금 할 줄 알았던 거죠.
10. 재촬영을 마치고 처음 찍는 장면은 언제부터였나요?
윤지온 : 12회부터였던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장면을 찍을 때, 같이 한 형들이 “이거 3월에 찍었는데…”라고 하시더라고요.
10. 준비가 돼 있었기에 기회가 온 거겠죠.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어요?
윤지온 :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어요, 하하.
10. 일주일 동안 어떤 준비를 했죠?
윤지온 : 기타 연주와 노래 연습을 했어요. 첫 촬영을 앞두고 ‘멜로가 체질’의 배우·제작진이 모인 회식에 참석해 먼저 인사를 드렸어요. 촬영에 앞서 이병헌 감독님과의 미팅에서 “기타를 쳐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기타 연주를 안 한지 거의 1년이 다 돼 가는 상황이어서 “기타 연주 장면을 조금만 늦게 찍어도 되느냐”고 부탁드렸어요.(웃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로 늘어났고, 그때부터 기타를 계속 붙잡고 있었죠. 어색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 장면이 가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긴 싫었어요. 만약 기타가 효봉이의 취미 정도였다면 부담이 크진 않았을 텐데 그의 직업이었잖아요. 어설프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윤지온 : 하하, 맞아요.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초반에는 특히 더 그랬죠. 우선 촬영 일정이 저에게 다 몰렸죠. 게다가 부담도 계속 갖고 있었고요. 내일 찍는 장면을 보고 일정표를 보고, 장면을 확인하고 대사를 외우다 보면 잠을 못 자죠. 한편으로는, 다시 찍는 분들은 얼마나 더 힘드실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티를 안 내려고 했어요. 근데 잠을 못 자니까 얼굴이 부어서, 초반 장면에는 좀 부어서 나오고 서서히 붓기가 빠져요.(웃음)
10. 효봉이는 작곡가이면서 동성과 연애 중인 인물이어서 캐릭터 연구도 쉽지 않았죠?
윤지온 : 감독님이 “효봉이의 이야기를 스스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하려고 했죠. 주변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군가로 표현해주길 원하신 것 같아요. 저 역시 같은 생각이고요. 뭔가 특별한 것처럼 여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아는 사람, 그냥 그렇게 만들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그 말이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워낙 섬세한 분이어서 많이 의지했죠.
10. 촬영장의 분위기는 빨리 파악했나요?
윤지온 : 원래 촬영장에서 밝은 성격인데 더 밝았어요.(웃음) 그렇게 해서라도 부담을 벗어나고 싶었고, 더 장난도 많이 치고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피곤하지는 않을까, 신경을 썼죠. 저만 빼고 모두 처음 찍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계속 웃으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제작진이 굉장히 친절해서 나를 위해 배려를 해주시는구나, 생각했는데 그냥 모두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친절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10. 오롯이 연기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군요.
윤지온 : 세트장에 효봉이의 방이 있었어요. 방송에는 안 나왔는데, 굉장히 예쁘게 꾸며져 있었죠. 그래서 몇 장면은 제가 방에서 나오면서 일부러 문을 닫지 않고 나와요.(웃음) 촬영을 기다리면서 대기실이 아니라 효봉이 방에 있었어요. 진짜 제 방처럼 거기서 시간을 보냈죠. 스태프들이 방문을 열었다가 제가 있는 걸 보고 “미안하다”며 닫고 나가기도 했죠. 어느 순간부터는 제 촬영 시간이 되면 효봉이 방으로 찾으러 오셨어요. 그렇게 빨리 익숙해지려고 했습니다.
10. 효봉이 방을 못 봤다니, 아쉽네요.(웃음)
윤지온 : 마지막 회에 정리된 채로 효봉이 방이 잠깐 나오긴 하는데…기타도 세워놓고 LP도 있어서 멋졌어요. 그런 것들이 효봉이스럽다고 생각해서 정리하기 전에 사진은 남겨뒀어요.
10. 누나들과 매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 누나가 있나요?
윤지온 : 아뇨, 형이 있어요. 그래서 진짜 친누나 세 명이 생긴 기분이에요. 연기는 액션과 리액션인데 세 명의 누나들이 워낙 잘해주셔서 덕을 봤죠. 조금만 해도 잘 받아주고 저 역시 그 힘으로 하면 되니까요. 많이 의지했어요.
10. 가장 덕을 많이 본 장면을 꼽는다면요?
윤지온 : 15회 마지막에 ‘음소거’ 장면이에요. 대본을 보면서 크게 웃었지만 갸우뚱하기도 했어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거든요. 대본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돼 있고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지점은 없었어요.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이 정도까지 하자”고 해서 저의 대사로 소리를 내게 되는데, 촬영 전 의견을 많이 냈고 연습하면서도 많이 웃었어요. 누나들은 정말 대단해요.(웃음) 부모님과 그 장면을 같이 봤는데 저는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였고, 부모님도 많이 웃으셨어요.
윤지온 : 방귀 장면은 모두 기억에 남고요.(웃음) 누나들과 화투 치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누나들과 호흡을 맞추는 건 다 좋았어요.
10. 언제쯤 부담보다 편안함이 더 커졌습니까?
윤지온 : 배우들과 장난치고, 제작진의 얼굴이 익숙해지니까 자연스럽게 편해졌어요. 특히 극중 한주의 아들로 나오는 인국(설우형 분)이와 많이 친해졌어요. 태어나서 ‘삼촌’ 소리를 처음 들어봤죠, 하하.
10.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들과 처음해보는 것들까지, 여러 모로 ‘멜로가 체질’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윤지온 : 잊으면 안 되죠.(웃음) 처음으로 OST에도 참여했어요. 음악 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노래가 나온다는 게 신기해요. 기타 연습을 이렇게 많이 해본 것도 처음이고, 내레이션도 처음 해봤어요. 물론 신인 배우여서 처음 하는 게 많을 수밖에 없지만,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0. 가장 크게 얻은 건 뭐죠?
윤지온 : 사람들을 얻었어요. 특히 ‘멜로가 체질’의 OST 작곡을 담당한 (박)상우(상일 역) 형은 효봉이 일하는 스튜디오에서 기타 연주자로 출연도 했는데, 기타 연습을 할 때부터 형과 붙어있었어요. 제가 기타 연주를 해서 영상을 보내면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줬죠. 며칠 전 그 형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 영화를 보자면서 1시간 뒤에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가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를 봤습니다.(웃음) 저만큼 형도 이 드라마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음악 작업을 도맡아 했고, 금요일마다 ‘멜로가 체질’의 본방송을 일부 배우들과 같이 봤는데 형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모임을 주도하는 역할이어서 “회장님”이라고 부르죠.
10.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라는 깨달음도 얻었을 것 같은데요.
윤지온 : “그러니까 열심히 준비해야지!”라며 결심하게 된 건 아니지만 긍정적인 마음은 확실히 얻은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한 번에 경험했는데 뭘 못할까, 이런 긍정적인 자신감이 생겼죠.(웃음)
10. 배우고 싶은 게 있습니까?
윤지온 : 승마를 배우고 싶어요. 말띠여서 말이란 동물이 친근하고 좋아요. 또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면 관악기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10.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윤지온 :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제 자신을 인정 못하거든요. 어디서든 “배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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