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어공주' 캐릭터 포스터/사진 = 월트디즈니코리아
영화 '인어공주' 캐릭터 포스터/사진 = 월트디즈니코리아
≪최지예의 시네마톡≫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소위 꼰대라는 사람들이 '라떼는'을 시전할 때 MZ세대는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메시지가 나쁜 게 아니라 방식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꼰대와 멘토를 구분 짓는 주요한 포인트는 '공감'이다.

최근 월트 디즈니는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월드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인상이다. 공감이 결여된 탓이다. 공감 없이 가르치려고만 드는 월트 디즈니의 '꼰대력'이 집약된 작품이 바로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인어공주'(감독 롭 마샬)다.

근래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빠져 있는 월트 디즈니는 원작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보며 꿈꾸고 상상했던 팬들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은 채 실사 영화 '인어공주' 에리얼의 외형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하얀 얼굴에 빨간 머리카락을 가졌던 에리얼이 까만 얼굴에 짙은 갈색의 레게머리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떠오른 것이다. 그 시절의 향수와 추억은 파괴되고, 낯설기만 한 흑인 인어를 에리얼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우습기까지 했다.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사진 = 월트디즈니코리아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사진 = 월트디즈니코리아
과도한 PC주의에 빠진 '인어공주'에 대한 반감은 전 세계적 흥행 성적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인어공주'는 지난 11일 기준 4억1482만 달러(한화 약 5310억 원)의 월드와이드 수익을 기록, 손익분기점인 8억4000만 달러(한화 약 1조752억 원)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국내는 더 처참하다. '인어공주'는 고작 63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쓸쓸한 마침표를 찍는 모양새다. 국내 관객들은 '인어공주' 속 흑인 에리얼 뿐 아니라, 단조로운 서사를 비롯해 너무 어두운 스크린 명도, 과도하게 사실적인 영화 속 캐릭터를 지적하며 혹평을 내놨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맥락의 PC주의가 향후 공개되는 디즈니의 신작에도 변함없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디즈니는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를 통해 '피노키오' 실사 영화를 제작한다고 밝혔는데, 파란 요정 역에 흑인 배우 신시아 에리보가 캐스팅돼 논란이 됐다. 원작 팬들이 알고 있는 파란 요정은 백인이다.

원작 캐릭터의 얼굴색 바꾸기는 '백설공주' 마저도 비켜가지 않았다. 최근 디즈니는 '백설공주' 실사 영화 주인공으로 라틴계 배우인 레이첼 지글러를 발탁했다. 까만 머리에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져 '백설공주'인데, 지글러의 피부는 적당히 그을린 듯한 갈색에 가깝다. 이를 두고 논란이 일자 지글러는 "나는 백설공주다. 하지만 내 역할을 위해 내 피부를 표백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흑인도 공주가 될 수 있다는 디즈니의 가치에 동의한다. 물론이다. 피부와 눈, 머리카락 색깔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흑인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는 흑인뿐만 아니라 황인, 백인 등 모든 인종에 적용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파괴해 다른 피부색을 부여하는 것은 디즈니가 주장하는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다. 디즈니는 왜 그토록 목 놓아 부르짖는 PC주의의 가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원작 파괴 없이 새롭게 탄생한 작품을 통해 얼마든지 PC주의를 적용시킬 수 있을텐데 말이다.

PC주의의 진짜 가치를 강압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좋은 완성도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야말로 디즈니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싶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훼손하면서 외치는 PC주의가 관객에게 잘 전달될 리 없지 않은가. 창작보다 파괴를 선택한 디즈니의 나태함이 무척 아쉽다.

바른말도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진의가 퇴색된다. 디즈니가 기분 좋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PC주의 진짜 가치를 담은 작품을 내놓는 날을 기다린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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