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 중 하나가 뒷얘기다. 고요한 수면 아래의 적나라한 발길질처럼 가려진 이야기 속에 진실이 숨어 있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만큼 보여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많은 방송가, 소수의 업계 사람들끼리만 알고 쉬쉬 하는 그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SBS 은 드라마 산업의 민낯과 속살에 장항준 식 ‘콩트 트루기’로 양념을 친 불량식품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과장인지 모호한 사건과 인물, 게임 속 ‘미션 클리어’처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고난-해결의 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고 싶은 꿈에 대한 이야기로 입 안에 감칠맛과 텁텁함을 남기는 이 드라마의 맛을 윤이나, 김선영 TV평론가가 감별했다. /편집자주

“느와르는 안 된다고 했잖아. 멜로로 가야 했다고.” 속 인물들이 만드는 드라마 첫 회 초반, 만족스러운 시청률이 나오지 않자 앤서니 김(김명민)은 이고은 작가(정려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공하는 드라마에는 공식이 있다고 주장했던 앤서니는 장르물로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이고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은 성공한 드라마만을 만들어왔던 앤서니마저 성공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도 과 비슷하다. 드라마 초반, 이야기보다는 드라마 제작 현실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배우 성민아(오지은)가 등장할 때까지 멜로를 지연시켰다. 하지만 이 앤서니의 우려와는 달리 결국 첫 회 시청률 15.7%,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게 되는 반면, 은 본격적으로 멜로의 분위기를 잡은 중반 이후에도 여전히 “단자리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 그리는 드라마 업계의 현실과 실제 현실을 가르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대의 아래 무화된 인물들의 욕망
vs <드라마의 제왕>│드라마가 뭐길래"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21111073818512_1.jpg" width="250" height="167" />지금까지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방송 관련 직업을 가진 인물들의 갈등과 사랑을 다루었다면, 은 철저하게 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하며 꿈보다는 돈에 가까운 산업으로서의 드라마를 이야기 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생을 걸고 도박을 해야 할 만큼, 드라마에는 어마어마한 돈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그런 현실 속 드라마의 제작현장을 보여주려다 보니 제작기는 한 드라마가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고난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제작 투자로부터 캐스팅 문제, 배우들 사이의 기 싸움과 편성 문제, 심지어 표절 사건까지 얽힌다. 앤서니와 이고은이 이 사건사고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이라는 드라마다.

문제는 현실을 묘사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계속 닥쳐오는 위기를 헤쳐 가느라 인물 중심의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거의 놓치게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드라마’는 소재가 아닌 주제이며, 인물들이 살아가는 현장이다. 앤서니와 이고은 모두 을 성공 시켜야만 다음 드라마를 만들고 또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드라마 자체가 이들의 삶의 목적이다. 그 목적 아래 외부의 방해에 맞서려다 보니 인물들 사이의 갈등은 너무 쉽게 무화된다. 드라마에 대한 이고은의 순진한 꿈은 앤서니의 믿음 안에 보호받고, 제작자와 방송국, 배우에게 모두 좋은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은 을 성공시키자는 대의 아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감춘다. 무엇보다 역시 상업 드라마기 때문에, 돈보다는 꿈의 지점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가 필연적으로 따라 올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상황이 어떠하든 은 결국 만들어지고, 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 드라마를 둘러싸고 작품 속에서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고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는 실제 현실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어중간한 상태에 머무르고 만다.

<드라마의 제왕>은 경성의 아침>이 될 수 없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되는 배우 강현민(시원)과 성민아의 네임 밸류나, S방송사의 지원을 생각하면 의 성공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의 현재 상황이다. 드라마의 성공 공식과 대중의 취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앤서니와 뚝심 있고 타협하지 않는 작가 이고은을 등장시켜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현실과 이상을 맞추어가며 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은 어느 선에서 둘을 맞춰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은 이를 통해 드라마의 성공이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며, 양쪽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은 이 될 수 없다. 앤서니가 살아가는 현실보다 더 흥미롭지만, 더 잔인한 현실이다.
글 윤이나

첫 회 오프닝 시퀀스는 이 작품의 전체 구조와 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작은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한류 열풍과 드라마 제작 현장을 담은 자료 화면이 연이어 등장하고 그 위로 앤서니 김(김명민)의 해설이 들려온다. 그러다 곧 화면이 전환되면 시청자들은 이 상황이 ‘한국 드라마를 말한다’ 라는 제목의 강연 현장임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은 화면 밖에 또 다른 화면이 존재하는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주제는 강연에서 앤서니가 던진 질문에 관한 것이다. “여러분은 드라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결국 은 작품 내내 반복되는 이 물음에 대해 각각 다른 답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충돌하고 타협하며 이상적 답안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다.

꿈과 열정의 매체로서의 드라마
vs <드라마의 제왕>│드라마가 뭐길래"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2121111073818512_2.jpg" width="250" height="167" />에서 ‘드라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내 반복된다. 앤서니에게 드라마란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자 “야망을 위한” 도구다. 그의 이런 드라마관은 제일 먼저 작가 이고은(정려원)의 견해와 부딪힌다. 드라마를 “인간애”라 정의하는 그녀는 “누구에게나 힘이 되는 드라마”를 지향한다. 드라마 국장 남운형(권해효)의 견해도 뚜렷하다. 그는 고수익을 남겨줄 대작 드라마와 ‘돈은 안 되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작은 드라마의 가치를 동일하게 본다. 여기에 강현민(최시원)과 성민아(오지은)의 배우로서의 입장, 구영목(정인기)의 감독으로서의 입장 역시 각각 다르게 충돌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서로 다른 견해들이 이라는 공동의 목표 안에서 협의되고 수정되는 과정을 통해 이상적 답안을 이끌어내려 한다. 이때 부각되는 것이 ‘진심과 가치’라는 덕목이다. 강현민은 자신을 ‘진정성 있고 가치 있는 배우’로 만들어주겠다는 고은의 말에 출연을 결심하고, 작품을 위해 겨울 바다에 온몸을 내던질 정도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본 수정을 요구하던 성민아 역시 “깨알 같은 글 속에서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고집을 꺾는다. 또한 앤서니는 “도대체 드라마를 왜 하게 된 거”냐는 고은의 질문에 어린 시절 아픈 현실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즐거움으로서의 드라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결국 그들의 차이를 하나로 묶는 것은 드라마에 대한 열정이며, 드라마는 이들의 성장기를 통해 단순한 상품으로서의 개념을 넘어 꿈과 열정의 매체로 재발견된다.

바깥의 현실로 확장되는 드라마의 개념
하지만 여기까지의 답안은 절반에 불과하다. 드라마에 대한 이 작품의 메타적 주제가 진짜 빛나는 지점은 바로 다층적 구조를 통해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이라는 드라마 속 드라마 제작기를 마치 메이킹 필름과도 같은 외부적 시선으로 그려내며 드라마 이면에 은폐된 진실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 지상주의로 대표되는 상업적 세계관, 방송사와 거대 제작사라는 슈퍼 갑이 지배하는 드라마 시장, “일류” 스타와 “삼류” 스태프들의 양극화된 처우, 열악한 노동 환경 등 그 이면의 진실을 포함한 드라마 판이라는 “정글”은 그대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다. 그리하여 처음 질문 즉, “여러분은 드라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물음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대상은 바로 드라마 바깥의 시청자들이 된다. 은 말한다. 불편한 진실을 매끈하게 편집한 드라마는 마치 어두운 진실이 은폐된 우리의 현실 같지 않느냐고. 이 질문을 통해 비로소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드라마의 개념은 우리의 현실을 투영하는 매체로 확장된다. 바깥으로 확장된 이 시선이 메타드라마로서 이 거둔 가장 인상적인 성과일 것이다.
글 김선영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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