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음악을 기하학으로 표현하면, 결국 하나의 선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유튜브나 윈도우 플레이어의 바를 따라 시간 순으로 쭈욱 이어진 선 말이지요. 그 길은 7음계의 각 계단을 따라 이어지며 멜로디를 만들거나, 버스-코러스의 순서로 전체 러닝타임을 구성할 겁니다. 시간을 뒤로 돌리거나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그 수많은 찰나들은 오직 정해진 순서대로 등장할 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뛰어난 예술은 과학적 사실을 망각하게 할 만큼 강력한 환각을 제공합니다. 제임스 이하의 < Look To The Sky >에 수록된 ‘To Who Knows Where’는 그래서 신비롭습니다.
스매싱 펌킨스에 있던 시절, ‘Tonight Tonight’이나 ‘1979’ 같은 곡에서 다른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반복적인 리프보다는 마치 흥얼거리는 듯 자유로운 스트로크를 들려주었던 제임스 이하입니다. 솔로곡인 ‘To Who Knows Where’에서도 그의 기타는 선명한 멜로디보다는 희미하지만 공간을 채우는 울림에 집중합니다. 러닝타임을 따라 지나친 그 모든 소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공간 속에 여진처럼 남아 울립니다. 특별히 처음과 끝을 나누고, 각 모티브로 구획 지을 수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울림은 그래서 선이라기보다는 안개 같은 입체에 가깝습니다. 뮤직비디오 처음에 등장하는 성운처럼 말이지요. 음악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만든 공간 안에 들어가 숨 쉬는 듯한 이 느낌은 착각일까요.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매혹적입니다. 모든 착각이 그러하듯이.
글. 위당숙 기자 eight@
스매싱 펌킨스에 있던 시절, ‘Tonight Tonight’이나 ‘1979’ 같은 곡에서 다른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반복적인 리프보다는 마치 흥얼거리는 듯 자유로운 스트로크를 들려주었던 제임스 이하입니다. 솔로곡인 ‘To Who Knows Where’에서도 그의 기타는 선명한 멜로디보다는 희미하지만 공간을 채우는 울림에 집중합니다. 러닝타임을 따라 지나친 그 모든 소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공간 속에 여진처럼 남아 울립니다. 특별히 처음과 끝을 나누고, 각 모티브로 구획 지을 수 없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울림은 그래서 선이라기보다는 안개 같은 입체에 가깝습니다. 뮤직비디오 처음에 등장하는 성운처럼 말이지요. 음악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만든 공간 안에 들어가 숨 쉬는 듯한 이 느낌은 착각일까요.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매혹적입니다. 모든 착각이 그러하듯이.
글. 위당숙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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