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야구는 정말 사람을 구해?
뭐야, 또, 밑도 끝도 없이. 야구가 무슨 국번 없이 119야?

아니, 나도 요즘 보면서 이동욱을 앓고 있는데 이시영을 보면서 그 대사를 하는 거야. 너무 멋있어서 잠깐 TV 끄고 심호흡했다니까? 나도 한 번쯤 야구가 나를 구해줬으면 저 대사에 더 감정이입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가. 이동욱이 그렇게 좋으면 가서 이동욱한테 물어.

이동욱한테 물을 수 있었으면 너한테 말 걸 이유가 없지.
아.

너도 어쨌든 만날 나한테 스포츠 규칙을 가르쳐주긴 했는데, 그래서 왜 그걸 보고 왜 그렇게 집중하는 건데?
사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어떤 의미에선 ‘그깟 공놀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지. 축구를 한다고 벼와 보리가 자라는 것도 아니고, 야구를 한다고 한강이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야. 심지어 그걸 직접 하면 건강에라도 도움이 되겠지만 보기만 하는 게 얼마나 생산적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답할 수 없어. 그건 옳은 질문이 아니거든.

그럼 뭐가 옳은 질문인 건데.
너 누굴 좋아할 때 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따지고 좋아하냐. 왜 사랑스럽냐고 질문해야지, 뭐가 생산적이냐고 질문하면 당연히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지. 굳이 말하자면 어떤 부분이 재밌느냐 얘기해야겠지.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야구가 재밌는 이유와 축구가 재밌는 이유, 농구, 배구, 격투기, 당구 등등이 재밌는 이유는 분명 각기 다르다는 거야. 축구의 경우 손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운 발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투박하고 그래서 더 남성적이고 공격적으로 느껴진다면, 농구는 축구 못지않은 몸싸움에도 불구하고 빠른 템포와 손을 이용한 드리블과 패스 때문에 좀 더 화려한 매력이 있지. 쉴 새 없이 득점이 오가며 많으면 100점까지 나오는 농구에 꽂힌 사람이라면 3 대 3이 엄청난 스코어로 기록되는 축구를 지루해할 수도 있어. 공 하나 하나를 던지고 칠 때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야구 마니아라면 많이 뛰는 다른 구기 종목이 단순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그런데 넌 다 좋아하잖아.
나 뿐 아니라 여러 스포츠 모두를 골고루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아. 아마 그것이 전혀 다른 룰과 재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많은 종목들이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유일 거 같아. 어쨌든 모두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킨 경기 끝에 승부가 가려진다는 거, 그게 스포츠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자 매력일 거야.
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공통점인 건 알겠어. 근데 뭐가 매력이란 거야.
스포츠맨십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세상 어떤 분야보다 공정함이 가장 큰 미덕인 분야는 스포츠일 거야. 히딩크 감독의 마법 같은 용병술도, 김성근 감독의 데이터 야구도, 결국엔 규칙을 지키는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즉 어떤 한계를 설정해놓고 그 안에서 묘수를 찾기 때문에 흥미로운 거야. 맥가이버가 어떤 위기 상황에서 주위의 사물을 이용해 탈출하면 재밌지만 갑자기 ‘나 사실 완전 장사임’ 이러면서 괴력으로 벽을 부수고 나간다면 재미없을 거 아냐. 말하자면, 룰과 룰을 지키는 태도는 서사의 개연성을 지키는 거랑 동일한 거라고 보면 돼. 간혹 심판의 실수로 반칙을 못 잡아낼지는 몰라도 그건 줄일 수 있는 실수지 시스템 자체의 오류는 아닌 거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지만 그건 암세포도 몸의 일부라는 거랑 똑같은 소리야.

하지만 또 픽션은 아니고?
픽션이면 큰일 나지. 예능에서도 리얼이 아니면 뒷말이 나오는 시대에. 아까 공정함이랑 같이 얘기한 게 승부인데, 스포츠는 공정한 전쟁과도 같은 거야. 스포츠는 그것이 상대팀과의 싸움이건, 기록과의 싸움이건 결국 싸우고 승리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는 건데, 그 공정함 때문에 승리가 가치 있는 것이 되는 거야. 즉 이겨서 훌륭한 게 아니라 편법 없이 이겨서 훌륭한 거지. 아까 네가 예로 들었던 에서 이시영이 블루 시걸즈의 역전승을 보고 자기 인생도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게 됐잖아. 정확한 정황은 설명되지 않지만 만약 그 때 블루 시걸즈가 심판의 오심 덕에 밀어내기 1점으로 역전했다거나 했다면 과연 희망을 얻을 수 있었을까?

글쎄? 역시 인생 한 방?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연을 기대한다면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지는 못했겠지. 또 마찬가지로 만약 그것이 픽션이었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면 이기기 위해 마지막까지 승부수를 띄우는 선수들에게 감정이입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뭔 스포츠 해설위원마다 자기가 해설하는 야구가, 축구가, 복싱이 인생을 닮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스포츠의 그런 면들이 삶의 어느 순간순간과 겹쳐지는 게 있는 거 같아. 툭하면 인용되는 야구에서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인생의 격언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블루 시걸즈가 역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아니잖아.
맞아. 오히려 스포츠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경쟁과 닮았다면 어쨌든 좀 더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쪽이 확실히 유리하다는 것 때문일 거야. 재능과 재화의 불평등은 분명히 있어. 메시와 호날두처럼 몸값이 남들의 수십 배 되는 스타플레이어라도 페널티킥 기회는 한 번 뿐이겠지만 바르샤와 레알에게 게임이 좀 더 유리하게 흘러가는 건 사실이겠지. 그리고 그냥 그걸 즐기는 것만으로도 분명 스포츠는 재밌는 오락인 거고.
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스포츠는 정말 사람을 구해?
그럼 사람을 구하는 건?
다만 어느 순간, 블루 시걸즈의 승리와도 같은 어떤 찡한 순간, 아니 때론 기적과도 같은 그림을 경험할 때가 있어. 내가 좋아하는 팀으로 예를 들자면 2009년 한국시리즈 때 기아가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지고 있다가 동점까지 따라 붙은 뒤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을 때나,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전반까지 3 대 0으로 지다가 후반에 3 대 3으로 따라붙어 승부차기로 승리한 ‘이스탄불의 기적’ 같은 순간들이.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게 신의 은총으로 인한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이란 거야. 몇 천, 몇 만 번 휘둘러온 스윙 연습을 통해 역전 홈런이 나오고, 포기하지 않고 상대팀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많이 뛸 때 역습의 기회가 생기는 거지. 글쎄, 그런 기적을 경험할 때 정말 구원을 받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한 탕의 우연은 바라도 노력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잘 믿지 않는 시대에 ‘그런 건 있엉’이라 말해주는 게 스포츠인 거 같아. 사람들이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최근의 프로배구에서처럼 승부 조작에 대해서만큼은 용서하지 못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거야.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 뿐 아니라, 공정한 룰 안에서 노력으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배신당했다는 느낌 때문에.

그럼 스포츠가 널 구해준 적은 없어?
많은 기적 같은 순간을 보긴 했지만 그게 날 구해줄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아. 하지만 스포츠가 날 구해준 건 맞아.

어떻게?
네 덕분이야. 내 스포츠 지식은 정말 별 거 아니야. 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궁금해 하는 너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면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어.

훗, 그럼 은인에게 할 말은?
고맙습니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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