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 연재된다는 점, 엄청난 연재 시간과 분량, 탑 10위 안에 드는 인기까지 , , 를 ‘원.나.블’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외형적 공통점은 매우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 개개의 개성과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소년만화의 전통 혹은 왕도라 할 수 있는 길을 걷는 것이야 말로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소년만화로서 ‘원.나.블’이 공유하는 몇 가지 필수 요소에 대한 평행이론이다. 개성이 뚜렷한 만큼 온전한 판박이인 경우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사례들을 통해 ‘원.나.블’이 동시대의 작품들로서 공유하는, 그리고 소년만화의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의 주인공 나루토가 스승 지라이야에게 물려받은 책의 이름은 이다. 이것만큼 소년만화 주인공의 알파와 오메가를 명백히 드러내는 이름이 있을까. 주인공의 성장 자체가 작품의 플롯이 되는 소년만화에서 ‘원.나.블’의 주인공은 패배를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다만 포기를 모를 뿐이다. 더 강한 적을 만나 죽음 언저리에서 살아날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의 손오공처럼. 고무고무 열매 능력자인 루피도, 몸속에 구미호를 봉인해 누구보다 많은 차크라를 소유한 나루토도, 타고난 영압이 엄청난 이치고도 이미 처음부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진정한 힘을 일깨우는 건, 도전과 패배 그리고 재도전이다. 루피가 바다 최강의 세력인 칠무해 중 한 명이자 모래모래 능력자인 크로커다일과의 승부에서 아무 것도 못해보고 패배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모래의 상성인 물을 이용해 그를 꺾어 현상금 1억 베리의 해적계 슈퍼 루키가 된 것처럼, 나루토는 같은 마을 최고의 루키인 휴우가 네지, 모래 마을의 가아라 같은 강자들과 싸우면서 자신의 꿈인 호카게급의 일류 닌자로 성장한다. 이치고의 경우 해적왕이 되겠다는 루피나 호카게가 되겠노라는 나루토처럼 명확한 꿈을 향해 달려가진 않지만 그 역시 친구인 루키아를 구하기 위해 자신보다 훨씬 강한 호정 13대의 대장들에게 도전하며 참백도 해방 최종 단계인 만해까지 습득한다. 세상은 넓고 강한 놈들은 많다. 하지만 “네가 나보다 강하면 내가 포기할 줄 알았어?”(이치고)라 말할 수 있는 이만이 세상의 주인과 만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강백호 없는 서태웅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서태웅 없는 강백호는 상상할 수 없다. 주인공이 끊임없이 의지를 불태우고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라이벌의 존재는 그만큼 소년만화에 있어 필수적 요소다. 특히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의 경우 나루토의 라이벌 우치하 사스케는 ‘사스케’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에서도 앞서는 동시에 플롯의 진행에 있어서도 주인공 나루토보다 종종 무게 있게 다뤄진다. 산왕전에서 부상 때문에 쉬고 있는 강백호를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서태웅이었듯, 말썽꾸러기 나루토를 성장시킨 가장 큰 동력은 엘리트 사스케에 느끼던 질투와 동경이었다. 하여 증오의 길로 들어선 사스케를 과거로 돌리는 것이 나루토의 전부가 된 건 필연처럼 보인다. 사실 사스케만큼 주인공을 압도하는 라이벌 캐릭터는 흔치 않지만 불귀의 객이 된 의 에이스만큼은 속 수많은 인물 중 가장 루피의 라이벌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어릴 적 형제의 연을 맺었던 역시 젊은 이 해적은 왕의 부하 칠무해 제의를 받을 만큼 강한 동시에 어쩌면 최강의 적일지도 모를 검은 수염 티치와의 단독 승부도 피하지 않을 만큼 겁도 없다.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자기보다 더 강하고 용기 있던, 그리고 먼저 바다를 향해 떠났던 그를 구하기 위해 루피가 목숨을 걸었던 건, 자신이 아직 뛰어넘지 못한 라이벌을 허무하게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최고의 명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대사는 역시 이것이다. “등짝의 상처는 검사의 수치다.” 세계 최고의 검호로 이름난 매의 눈 미호크와의 대결에서 완패한 조로는 미호크의 마지막 일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으며 이 대사를 읊는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근성의 화신 루피가 있지만 에서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사나이는 역시 검객 롤로노아 조로다. 하여 누구 하나 만만한 이가 없는 밀짚모자 해적단 안에서도 루피와 가장 대등한 위치의 짝패 역할을 하는 것도 조로다. 갓 에넬과의 대결에서 조로를 비롯한 동료들이 쓰러져있자 루피는 조로에게만 “네가 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야”라 묻는 것처럼. ‘원.나.블’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혼자 걷는 길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그렇기에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며, 그는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자 중의 남자여야 한다. 그것이 소년만화의 짝패다. 의 사도 야스토라 역시 그렇다. 그는 비록 롤로노아 조로처럼 주인공 이치고에 맞먹는 실력자는 아니다. 하지만 호정 13대 대장 중 하나인 ?스케와 싸우며 “이치고가 목숨을 걸고 있어. 내가 목숨을 거는데 그 이상의 이유는 필요없어”라 말하는 이 거구의 소년은 자신의 신념이나 욕심보다는 절친 이치고의 등을 지켜주기 위해 강해지려 노력한다. 소년만화의 로망 중 하나인 절대 우정, 그리고 단순하지만 명확한 사나이의 형상은 이들을 통해 완성된다. 해적왕이, 호카게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그 꿈의 최종 장애물인 최강의 적을 꺾어야 한다. 전국제패를 위해선 산왕이라는 절대 강자가 필요한 것처럼(). 완결된 세계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원.나.블’에는 식의 최종 보스 갱신은 없지만 워낙 방대한 세계관과 아직 해결하지 않은 복선들 때문에 연재 10년이 넘은 지금도 진정한 최종 보스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주인공들이 최종적으로 넘어서야 할 최강의 적 후보의 윤곽은 어느 정도 잡힌 상태다. 전설 속의 닌자 우치하 마다라 행세를 하며 사스케를 증오의 길로 끌어들인 토비는 최근 마다라가 아닌 게 밝혀지며 수많은 의혹을 낳고 있지만, 어쨌든 나루토와 사스케의 과거와 현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자 현재 닌자 전쟁을 일으킨 인물로서 절대악에 가장 가깝다. 의 경우 현재까지 최강의 적이 호정 13대의 대장 중 하나이자 호정 13대를 배신하고 신의 자리를 탐낸 아이젠 소스케인 건 확실하지만, 문제는 이치고가 그를 이겨버렸다는 것이다. 의 최근 에피소드가 의 그것처럼 억지로 이어 붙이는 느낌이 드는 건, 최강이라 믿었던 적 소스케가 꺾인 뒤에도 에피소드가 이어지기 때문일 텐데, 다행인 건 소스케가 2만 년의 징역형에 처해졌을 뿐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해군대장과 칠무해 등 루피가 꺾지 못한 수많은 강자들이 아직 잔뜩 남아있는 의 경우 최강, 최종의 적을 가늠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그 자체로 손에 꼽힐만한 자연계 능력인 어둠어둠 열매를 먹고, 심지어 구시대의 최강자인 흰 수염의 흔들흔들 열매 능력까지 흡수한 마샬 D. 티치는 힘과 악랄함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악당이다. ‘원.나.블’이 판타지 장르물로서 훌륭한 것은 동양적 저승 관념을 교묘하게 비틀어 소울 소사이어티와 웨코문드, 사신과 호로라는 개념을 만들거나(), 네 개의 바다라는 공간적 가상과, 통시적, 공시적인 해적의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닌자라는 소재로 역시 가상의 왕국과 가상의 닌자 마을을 구상한() 탄탄한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강자가 될 수 있는 능력 역시 흔한 기나 마법 같은 과거 판타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의 차크라나 의 영압은 무협지의 내공과 흡사하지만 를 독보적인 닌자 만화이게 하는 것은 우치하 사스케의 사륜안이나 페인의 윤회안처럼 눈을 이용한 동술 기술이며, 모두 참백도를 쓰지만 호정 13대 대장과 이치고를 비롯한 속 사신들의 개성이 뚜렷할 수 있는 건 해방된 참백도의 능력과 한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 개성 있는 능력에 집착하다 는 ‘눈깔 싸움’이라는 오명을 듣고, 어느 순간 너도 나도 참백도 최종 해방 만해를 구사하며 의 긴장감이 확 떨어지기도 했지만 이런 능력 덕에 판타지로서의 매력이 배가된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에 등장하는 수많은 악마의 열매는 매우 참신한데, 빛빛 열매를 먹은 해군대장 키자루처럼 몇몇 자연계 열매의 힘은 무적에 가깝지만, 쿠릉쿠릉 열매를 먹고 무적의 번개 인간이 된 갓 에넬의 전기 공격은 고무고무 열매를 먹어 부도체가 된 루피에게 통하지 않는다. 특히 루피가 고무로 된 몸을 응축해 기어 2, 3까지 육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수련을 통해 각 열매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주인공의 성장이 세계관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는 설정으로서 중요하다. 소년만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플롯은 주인공의 성장이다. 좋은 선생님은 그래서 필요하다. 하지만 ‘원.나.블’의 스승들은 무협지 속 스승처럼 자신이 가진 무적의 비기를 전수해주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전통의 대물림이다. 루피의 우상 붉은 머리 샹크스나 나루토의 스승 지라이야, 이치고의 전투 능력을 각성시킨 우라하라 사스케 등은 자신의 것을 고스란히 물려주기보다는 주인공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일종의 산파 역할을 해준다. 사실 샹크스가 루피에게 특별히 가르쳐준 것은 없다. 다만 루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팔 하나를 희생한 그는 어떤 적에게 팔을 잃었느냐 묻는 흰 수염에게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시대에 선사하고 왔지.” 샹크스를 통해 루피는 해적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신념 삼아 바다로 나서고, 어느새 새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형 루키가 된다. 가장 사제 관계가 명확한 지라이야와 나루토의 사이에도 나선환 이외의 비기 전수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가 남긴 의 사상, 증오가 만연한 닌자 세계를 평화로 이끌 답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루토를 지라이야를 능가하는 일류 닌자로 성장케 한다. “스승이라고 불러도 될지도 잘 모르겠다만 싸움을 가르쳐준 사람”(이치고)인 우라하라 키스케의 경우 싸움 자체의 기술보다는 강한 적을 공략하는 요령과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참백도 해방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만의 능력을 발현하는 것이라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세계는 넓고 강한 놈들은 많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곳의 정점에 서는 자가 아니다. 스승도, 최강의 적도, 세계관도,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시대를 여는 존재, 그것이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