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그대의 향기
정유미│그대의 향기
“미련한 향기… 바보 같은 향기…” SBS 에서 지형(김래원)에게 보낸 향기의 문자는 시청자의 마음 그대로였다. 가엽고, 안쓰럽다가도 친구라면 등짝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향기의 순애보는 답답했다. “저도 향기가 모두 이해되진 않았어요. 얼마나 사랑해야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화 한번 안 내요. 향기는.” 그렇게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정유미가 택한 방법은 묵묵함이었다. 그저 대본을 수없이 읽고, 정을영 감독의 말을 경청하다보니 “어느 순간 제 안에 향기가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결국 향기의 사랑도 이해하게 됐다는 정유미의 연기 방식과 향기의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랑법은 마치 쌍둥이 같다. 온통 무겁게 한톤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인물들 속에서 향기만이 산뜻하게 제 목소리로 말하고, 움직였던 것은 그래서다. 살짝 콧소리가 스며든 애교 어린 목소리와 웃을 때 길게 가늘어지는 눈매가 동그랗게 떠질 때 순진하기만한 표정은 정유미의 것이지만, 그 자체가 향기이기도 했다.
정유미│그대의 향기
정유미│그대의 향기
하지만 타고나기를 맑고 순수했고, 티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던 향기와 이제 데뷔 9년차, 영화 의 단역부터 제법 얼굴을 알릴 수 있었던 KBS 이나 MBC 까지 늘 꾸준히 달려온 정유미는 다른 종류의 순진함을 가졌다. 차라리 우직하다고 해야 할까. 2007년 중국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매니저도 없이 통역 언니를 포함해 한국인 스태프는 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정유미는 “매일 울면서도 이왕 하게 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밤마다 통역 언니를 붙잡고 중국어를 독하게 공부”해 처음에는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중국어 대사를 소화해냈다. 그럼에도 정유미가 연기에 매달렸던 것은 결국 “연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이유뿐이었고, 앞으로의 꿈도 “오래오래 지금처럼 재미있게 연기하고 싶어요”란다. 주목받은 작품을 한 뒤 이런저런 욕심이 생길 법 하지만, 정유미는 여전히 향기처럼 순진한, 그러나 열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향기 엄마라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진한 배우를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정유미│그대의 향기
정유미│그대의 향기
My name is 정유미. 동명이인인 배우 분이 상 받았을 때 자주 연락 안 하던 사람이 기사 제목만 보고 나한테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1984년 2월 23일 에 태어났다.
향기도 오빠가 있는데 나는 외동딸이다. 향기처럼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부산이 고향이다. 지금은 다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집에 가면 엄마랑 부산 사투리로 대화한다.
사투리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서울 올라가서 H.O.T.와 만나면 서울말로 얘기하기 위해 그들이 나오는 라디오를 녹음해서 반복해 들으며 연습했다. H.O.T.의 음반은 항상 두 장씩 샀다. 한 장은 소장용, 한 장은 감상용. 하지만 아직 만난 적은 없다.
양다리는 고사하고 갈아탄다고 하는 것도 용서가 안 된다. 술 마시고 전화 안 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히이잉’과 ‘흐으응’의 차이점을 향기는 꼭 살려줘야 했다. 혼자 집에서 ‘흐으응’과 ‘히이잉’을 반복해 연습했다. 조금씩 목소리와 빠르기를 바꿔가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끔찍하다.
‘오빠 바보’란 말을 나도 봤다.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말도. 내가 생각해도 ‘응. 오빠, 괜찮아’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쪽대본도, 초치기 촬영도 없어서 정말 신기했다. 적어도 1주일에서 2주일 전에는 대본이 항상 나왔다. 이렇게 어려운 작품인데 대본이라도 미리 안 나왔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다.
이미숙 선생님을 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무서우신 분일까 봐 긴장했는데, 너무 잘해주시고 이끌어주셨다.
때부터 은 빼놓지 않고 본다. 달력도 매년 빼놓지 않고 샀는데, 올해는 놓쳤다. 그런데 멤버들이 직접 배달을 해주더라. 이번에 샀으면 정형돈 씨가 올 수도 있었는데.
중국 드라마 이 좀 잘됐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팬카페에 중국 팬 분들이 중국어로 글을 올리실 때가 있다. 나도 중국어로 여행 다닐 수 있을 만큼은 된다.
부산에 계신 할머니가 많이 좋아하셔서 기뻤다. 친구 분들 앞에서 향기 할머니로 통한다며 앞으로는 자주 볼 수 있는 일일 드라마에 나오라고 하신다.
연기자나 연예인이 예뻐 보여야만 하는 것에서 벗어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연기. 묵묵하지만, 그 속에 뭔가 담겨져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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