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단순해지고 싶다. 1+1=2처럼. 아니면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그저 “해피엔딩입니다. 할 줄 알았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KBS 의 ‘남자의 자격’에서 이 말을 했던 김성민은 필로폰 밀반입 혐의로 체포됐다. 하차는 당연한 수순이다. 떠난 사람은 잊고 다시 TV를 보자. 그러나 단순해지지 않는다. 김성민이 기르던 유기견 제제는 누가 키우나. 김성민과 소개팅을 한 여자 분은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김성민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가 될까.

MC몽이 의 ‘1박 2일’에서 하차할 때는 ‘재미’와 ‘팀워크’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몇 년 동안 방송하며 팀워크를 쌓은 멤버가 떠나면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김성민은 걱정부터 됐다. 그는 ‘남자의 자격’에서 자격증을 땄고, 제제를 만났고, 뮤지컬을 병행하느라 밴드 보컬을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다.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출연자들의 인생을 토크의 소재나 몇몇 에피소드에 집어넣는다. 반면 ‘남자의 자격’은 스마트폰 이용법을 배우는 김국진부터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준 ‘합창단’ 에피소드까지, 남자들의 인생 자체를 끌어들였다.

리얼 버라이어티, 출연자의 인생과 쇼의 동기화
[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MBC 은 획기적이었다. ‘리얼’해서만은 아니었다. 에는 드라마 이상의 캐릭터와 서사가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하나씩 도전을 완수하는 과정을 보며 그들에게 감정이입했고, 탄탄한 고정 팬이 됐다. 더 이상 오락 프로그램은 일회성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캐릭터와 서사가 있고, 팬과 역사가 있다. 매 해 시즌제로 출연자들이 바뀌는 같은 해외 리얼리티 쇼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출연자, 팬, 프로그램 모두 TV와 인생이 함께했고, 한 번 궤도에 오른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몇 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 쇼가 드디어 영속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형돈은 또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MBC 의 ‘오늘을 즐겨라’ 촬영 중 부상을 당했다. 은 추진 중이던 장기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그 전에는 프로레슬링 특집을 촬영 도중 출연자들이 큰 부상을 당할 뻔 했다. 인생은 TV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다. TV를 꺼도 인생은 계속된다.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바로 그 인생을 끌어들였다.

MC몽과 김성민의 문제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건 우연이되, 문제가 일어나는 것 자체는 필연이다. 김C가 음악에 집중하길 원하면서 KBS 은 쇼도, 야구팀도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의 역사는 출연자들이 겪었던 온갖 문제를 해결하며 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갈수록 쇼와 출연자의 인생을 결합할 수밖에 없다. 쇼를 통해 점점 더 정교해지는 캐릭터가 어느덧 현실 속 인물에 가까워지고, 도전 과제도 점점 더 현실성을 띄기 때문이다. 온갖 도전을 다 한 은 프로레슬링 특집에서 쇼를 위해 대중 앞에서 웃어야 하는 예능인들의 실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자격’은 밴드-자격증-합창단-태권도로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를 거치며 출연자의 인생과 쇼를 동기화 시켰다. ‘1박 2일’은 PD에서 시작해 작가, 촬영감독, 밥차 아주머니가 화면 안으로 등장하면서 여행의 범위를 제작진 전체로 넓혀간다.

쇼를 쇼로만 볼 수 없는 매커니즘
[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강명석의 100퍼센트] 누군가의 쇼가 인생이 될 때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시간이 지날수록 출연자들의 캐릭터와 서사가 현실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럴수록 쇼는 현실의 작은 사건 하나에도 흔들린다. 문제의 멤버가 떠났다고 예전처럼 웃기엔 팬과 출연자와 제작진이 서로를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위기’는 매 회 웃겼느나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동안 쇼가 계속되면서 좁혀진 서로의 감정적 거리 그 자체다. 그건 리얼 버라이어티 쇼만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는 시간동안 누군가의 인생에 문제가 일어나고, 시청자들은 가까워진 그들의 문제가 야기하는 복잡한 감정도 받아들여야 한다. 21세기의 쇼는 발전한 만큼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가져왔다. 그래도 주말에는 과 ‘1박 2일’을 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남자의 자격’도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단순한 게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출연자들의 인생 같은 건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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