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요즘은 자꾸 하~하게 될 때가 많아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데, 한숨을 쉬게 되는 그런 느낌이요. 짠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벌써 15년 전이다. 이적과 김진표가 패닉이란 이름으로 ‘아무도’를 발표하던 시절이. 두 사람은 ‘달팽이’로 답 없이 질문만 가득한 청춘의 고뇌를 노래했고, ‘왼손잡이’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표현했다. ‘밑’, ‘혀’ 등 제목부터 강렬한 2집 앨범은 문자 그대로 충격과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제 그런 음악들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 나오는 음악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적은 결혼을 했고, 얼마 전에는 아이를 가졌다. 그 사이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패닉은 물론 긱스와 카니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 작업을 거쳐 네 번째 솔로 앨범 을 내기에 이르렀다. “요즘은 자꾸 쓸쓸한 감정이 들어요. 좀 더 관조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고. 사회의 큰 문제보다 소박한 것,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것에 더 관심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의 말처럼 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한 사랑이 아닌, 한 시절을 지나 바라보는 사랑에 가깝다. 그는 조금은 덤덤하게,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을 이어간다. ‘그대랑’처럼 환희로 시작되지만, ‘다툼’과 ‘두통’을 지나 헤어진 인연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는 ‘끝내 전하지 못한 말’로 이어지는 사랑. 그래서, 은 단지 사랑 노래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열렬히 살았고, 사랑했던 청년이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건 한 시대를 잘 보낸 어른의 음악이자, 삶과 창작이 하나가 되는 뮤지션의 음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에게 ‘빨래’를 만들기까지 그의 창작에 영감이 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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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lazing Saddles)
1974년 | 멜 브룩스
“우디 알렌이냐 멜 브룩스냐 하면 저는 멜 브룩스의 코미디 영화를 더 좋아해요. 우디 알렌은 초창기 작품은 좋지만 요즘은 그의 글이 더 좋구요. (웃음) 같은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데, 굉장히 지저분하고 멍청한 코미디를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정교하게 이야기를 뒤틀고 패러디하는 솜씨가 있어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거죠. 언제 어떻게 뒤틀어야 사람들이 뜻밖의 반응을 보일지 안다는 점에서 대단한 감독이에요.”

멜 브룩스 감독은 등 패러디를 주로 사용하는 코미디 영화의 원조라 말할 수 있는 감독. 는 흑인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서부극의 장르적인 특징들을 뒤집는 재치가 빛을 발한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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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till Walking)
2008년 |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사람들은 특유의 감수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어도 직접적으로 설명을 안 하는 거죠.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더라도요. 에 나오는 가족들도 모두 그런 상태에요. 주인공의 가족에게 기둥이나 다름없던 형이 죽고, 형의 기일마다 가족들이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한을 꾹꾹 누르면서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정말 쓸쓸하고 짠해요. 그 점에서 의 정서와도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구요.”

는 ,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물에 빠진 아이를 살리고 죽은 한 남자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가족들과 물에 빠진 아이가 모였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 특히 가족의 회한과 정을 울컥하게 그려냈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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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ther)
2009년 | 봉준호
“봉준호 감독은 정말 천재인 것 같아요. 보면서 저 사람 천재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는 정말로 치밀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이 영화의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죠. 오히려 너무 똑똑한 게 영화에 보여서 어떤 관객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이요. 정말 대단해요.”

김혜자의 신들린 연기로도 화제가 된 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와 경탄할만한 이미지들을 전달한다. 특히 영화의 엔딩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기억될 명장면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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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efore Sunset)
2004년 | 리처드 링클레이터
“와 둘 다 좋아하는데 특히 이 더 마음에 들어요. 연애 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번 앨범의 정서와 비슷한데도 있고. 젊은 시절 연애를 하고나서 다시 만났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이런 느낌 (웃음) 정말 해가 지는 거죠. (웃음)”

로맨스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의 감독과 주인공들이 모여 이후 10년 뒤의 이야기를 다룬다. 뒤에 이 더해지면서 ‘완벽한 연애영화’가 완성됐다고 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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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Up)
2009년 | 피트 닥터, 밥 피터슨
“은 역시 첫 시퀀스가 인상적이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을 한 번에 보여주는데, 아마 어른들은 다 울었을 거예요. 저는 그 할아버지의 반도 안 살았지만, “아 그렇구나” 하게 되는 게 있었어요. 저도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아이가 자랐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지금 저에게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에요.”

픽사의 제작진들을 을 만들 당시 스토리를 먼저 만드는 대신 ‘풍선 달린 집’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그 집이 대체 왜 그런 사연을 가졌을까를 상상하면서 아내가 죽은 뒤 꿈을 찾아 떠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완성됐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이적│창작에 영감을 준 영화들
을 고를 때 이야기한 것처럼, 이적은 아이가 생기면서 인생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아이가 지금 내 나이가 되면 저는 70이 넘을 텐데, 그 때 아이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요. 그래서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구요.” 그래서 그는 요즘 음악을 만들 때 그 순간의 유행보다는 오랫동안 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가 제 나이가 돼서 들었을 때도 우리 아빠가 좋은 음악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불타는 열정으로 살았던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 됐고,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적은 음악으로 그 인생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가 그 기록을 볼 수 있도록.

사진제공. 뮤직팜

글. 강명석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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