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특집으로 예능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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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23일 아침 여섯 시, 17년차 아나운서 손석희는 MBC 라디오 (이하 ) 첫 방송을 시작하며 말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환골탈태까지도 하겠습니다.” 이 날 방송을 위해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던 그의 목소리는 10년째 아침을 깨우고 있다. 동시간대 청취율 1위는 물론 “꼭 필요한 곳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 있게 전달하겠다”던 그의 첫 다짐도 10년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10월 19일 밤 여의도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10주년 특집방송 ‘ 10년을 말하다’는 이 프로그램이 사회적 무게를 갖는 동시에 대중의 사랑 역시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느끼게 하는 자리였다. 대학생들은 물론 중학생 자녀를 데려온 부모, 중년 남성들, 주부 등 멀게는 마산에서까지 찾아온 애청자 120명을 향해 “이 시간이 자그마한 추억거리로 남겨지면 좋겠다”고 말한 손석희 교수는 “재미없는 얘기를 하더라도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웃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매일 ‘뉴스 브리핑’ 코너를 진행하며 ‘가장 만나보고 싶은 고정 출연자’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자리에 함께 한 김종배 시사평론가에 대해 손 교수는 “‘시사계의 김동률’이라는 청취자 말씀이 있었다”고 소개했지만 정작 김 시사평론가는 “입국 심사대에서 알 카에다로 오인 받아 외국에 못 나간다”며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큰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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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대표로 충주에서 올라온 김인수 씨는 “매일의 이 하나의 특집방송이라 생각한다. 항상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고 직장 동료들과도 에 나온 내용을 자주 토론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내가 ‘미니 인터뷰’에 나왔을 때다. 소음이 새어 들어갈까 봐 새벽 6시부터 안방, 건넌방, 창문과 모든 문을 다 닫고 통화하는데 처와 아이들은 옆방에서 라디오로 듣고 있었다. 가문의 영광이니까. (웃음)” 라는 말로 애정을 드러냈다. 학생 시절부터 교사가 된 지금까지 을 애청하고 있다는 청취자 대표 정소진 씨가 “한강 예술섬 사업에 대한 서울시 관계자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회상하자 손 교수는 “진행자로서 철칙이 있다면 인터뷰이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 덧붙여 그간의 무수한 ‘논쟁적’ 인터뷰에도 의 객관성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었던 데 대한 힌트를 던졌다.

경기도 풍동 철거 현장, 2006년 고이즈미 총리 신사 참배 현장, 9.11 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탈출한 한국인 생존자 인터뷰 등 이슈의 중심에 있는 현장이나 인물을 직접 연결하는 의 인터뷰를 돌아보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2000년 10월 23일, 방송첫날 첫 번째 인터뷰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전화 인터뷰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격하고 감정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 “인간이 안됐다” 등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는데,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방송 사고다.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막을 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흔히 봤던 정치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걸러지고 정돈된 모습이었다면 그들의 여과되지 않은 숨결, 심기까지 그대로 전달하는 인터뷰의 서막을 열었던 출연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이어지며 의 강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손석희 교수 역시 “당시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전국적인 화제가 되어 다음 날 모든 신문이 받아쓰면서 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결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의 가장 큰 홍보대사였다고 생각한다. (웃음)”라고 회상했다.

MBC 라디오 생방송을 마친 방송인 김미화가 스튜디오에 내려와 “김석희가 되고 싶다”는 말로 축하와 존경심을 표하자 “이 10주년 되는 날 인사드리러 가겠다”는 훈훈한 덕담으로 답례한 손 교수에게도 예상치 못한 복병은 있었다. 스피드 퀴즈 문항을 만들어 온 한 학생은 “교수님보다 두 살 어리신 58년생 어머니를 상대로 테스트해 보니 한 문제 맞추셨다”며 기선제압에 들어갔지만 손석희 교수는 ‘레알’, ‘차도남, 차도녀’의 의미와 Mnet 최후의 2인을 수월하게 맞추며 박수를 받았다. K리그 1위 팀과 스타크래프트 유닛의 이름 등을 맞추지 못한 대신 “소녀시대, 미스 A, 2NE1, 카라의 멤버 수를 합하면?”이라는 질문에는 스물 두 명이라는 정확한 답을 내놓아 참석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진행을 도운 배현진 아나운서 역시 “ 제작진 가운데 아이돌 가수의 이름을 가장 많이 아신다. 가끔 선배님이 ‘너 OOO 아니?’ 라고 물으셔서 모른다고 하면 ‘세상에 뒤처진 것!’이라고 하신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손 교수는 “양갱을 좋아하는데 소녀시대의 태연 씨도 양갱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는 멘트로 ‘태연 팬 설’이 돌았던 데 대해서는 “라디오 PD들이 알려준 거다. 태연 씨와 얘기 나눠본 적은 없다. 한 시상식에서 잠시 옆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는데 사실 그 때 확인하고 싶었다. ‘양갱 좋아하십니까?’ (웃음)”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청취자 여러분들만 믿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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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들이 뽑은 손 교수의 매력이 ‘공정함, 인간미, 까칠함’이었던 것처럼 평소보다 편안한 분위기의 특집 방송은 그의 ‘까칠한 유머’가 빛난 자리였다.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이 뽑히자 손 교수는 이후 파리 여행 갔을 때 브리짓 바르도의 전성기였던 젊은 시절 사진엽서를 사와 제작진에게 선물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고, 2008년 독도 현지 생방송을 추진하다 기상 악화로 무산되었을 때 ‘말과 말’ 코너에 등장했던 갈매기 소리에 대해서는 “아마 ‘왜 온다고 하고 안 왔니’라고 했을 것 같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을 모닝콜 삼아 10년을 살았고 결혼 10주년을 맞아 함께 참석했다는 부부,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을 들려준다는 한국어 강사 등의 애정 어린 고백도 이어졌다. 초대 프로듀서인 정찬형 PD는 “은 방송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게을러지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웃들 사는 것에 대해 못 본 척 외면할 수도 있고, 급한 사건을 안 다룰 수도 있고,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수도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생긴 이후 그럴 수가 없게 됐다”는 말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3시간 이상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진 특집 방송은 ‘동요 부르는 할아버지들’로 에 몇 차례 출연했던 ‘철부지’의 축하 무대로 막을 내렸다. 63세의 고승하 옹은 “우리가 나이 드는 것처럼 손 교수도 지난 10년간 나이 들어 왔을 거다. 언젠가는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프로그램이 필요 없는 맑고 깨끗한 세상이 오는 게 더 좋겠지만 그 날이 올 때까지 (은) 10, 20, 30년은 이어져 나갈 것 같고 우리들도 거기에 한 다리를 걸치려고 애쓰겠다”는 덕담을 남겼다. 손석희 교수의 마지막 인사는 늘 그렇듯 간결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은 청취자 여러분들만 믿고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 아니 벌써 십년이 되었나 이십년 되겠네 ♬”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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