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숙종’의 등장은 MBC 에서도, 그리고 사극의 역사 안에서도 특별한 사건이었다. 궁녀들에게 환한 미소로 성은을 입히고, 궁 밖에선 태어나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다며 헐떡이는 이토록 자유분방한 임금이라니.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병훈 감독의 재해석과 김이영 작가의 대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결국 이를 완성하는 건 배우 지진희다. KBS 와 영화 을 통해 코믹한 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를 6일, 용인의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다음은 매체 공동으로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다.초반 등장에선 숙종의 암행이 화제가 됐다.
지진희 : 사실 이런 모습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왕인데, 아무리 멀리 나가봤자 요 근처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많이 나갈 뿐 아니라 천민들 사는 걸 보려고 하다보니 꼭 밤에 나간다. 사실 그 신이 얼마 나오는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주일에 5일씩 찍고 있다. 다행히도 재밌는 신이 많아서 마음에 든다. 임금이라는 캐릭터에게서 기대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에서.
“배우들과 술 마시면서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래도 왕인데 너무 희화화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나.
지진희 : 그건 시선의 차이인 것 같다. 과거 드라마에 나온 숙종의 이미지보다는 지금 우리 드라마의 숙종이 재밌고 파격적이라 많이 얘기해주시는 거 아닐까. 물론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의 고정관념을 깨는 감독님의 능력이 있었기에 좋은 반응이 나오고 덕분에 재밌게 찍고 있다.
연출력도 중요하지만 KBS 나 영화 에서의 연기를 보면 의외로 코믹 연기를 잘한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지진희 : 예전 인터뷰에서도 나중에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얘길 많이 했었다. 시트콤이나 개그 프로그램도 워낙 좋아하고. 기왕 사는 거 재밌게 사는 게 좋지 않나. 다만 우선은 멜로나 진지한 연기를 잘하고 싶었고, 그 이후 나이 들어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드라마와 달리 내가 흥행이 될 거라 생각한 영화의 경우 흥행이 잘 되지 않더라. 그래서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건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코믹으로 나가니 반응이 좋다.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 그래서 내 길은 코미디가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웃음) 하지만 무엇보다 왕 캐릭터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굉장히 유쾌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데 실제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어떤가.
지진희 : 며칠 전, 대본을 기다리며 집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일 대본이 나와서 오늘은 촬영을 못한다고 하자 현장에 있던 친구들이 ‘으샤으샤’ 단합해서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분위기가 된 거다. 그러면서 일산에서 서울로 넘어오다 내게 막걸리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해서 나갔다. 그 때가 새벽 2시였는데 아내가 촬영하러 가느냐고 묻더라. 술 먹으러 간다고 했더니 대본 아직도 안 나왔느냐며 걱정하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우리끼리 즐겼다. 그 때 우리 인현왕후(박하선)도 있었고 옥정이(이소연)도 있었고, 차천수(배수빈)도 있었고, 동이(한효주)도 있었고, 서 종사관(정진영)도 있었다. 술 마시며 고민도 얘기하고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런 자리가 좋다.
현장에선 누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타입인가.
지진희 : 정진영 선배님이 굉장히 즐겁게 현장을 다닌다. 촬영이 없어도 소품팀, 의상팀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모르는 게 없다. 왜 대본이 안 나오는지부터 현장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안다.
“과의 비교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분위기는 좋지만 체력적으로는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다. 제작발표회 때만 해도 왕이라 좀 편할 거라 기대했었는데.
지진희 : 기대에 비해 춥다. (웃음) 하지만 차천수보다는 낫다. 천수는 눈밭에서 뛰어다니고 미끄러지고 고생 많이 한다. 대본의 지문을 보면 굉장히 무섭다. 천수가 다시 등장하는 8회에는 지문에 ‘물에서 건져내어지는 천수’ 이런 식으로 적혀있다. 본인은 모래사장에 걸쳐진 장면을 기대했는데 물에 빠지라고 그러고. 그 외에도 ‘절벽에서 뭐하는 천수’ 이런 식의 지문이 있어서 몇 시간 동안 올라가 있고. 그 친구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
사극에서 수염을 붙이고 떼는 건 어떤가. 자극이 심하다던데.
지진희 : 피부 트러블이 심하다. 잠도 잘 못자는 상황이라 다크 서클도 볼까지 잔뜩 내려와서 분장 진하게 하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 팬이 너무 고맙게도 수염 뗄 때 쓰는 리무버를 보내주셨다. 보통 석유로 지우느라 냄새 때문에 거의 기절하는데, 이건 냄새가 안 난다. 이거 완전 대박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몰래 쓰고 있다. (웃음)
현장 분위기에 있어 시청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현재 잘 나오고는 있지만 정도를 기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진희 : 과 비교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같은 드라마가 또 나올까? 이병훈 감독님이 연출하시고, 내가 출연해서 비교되는 거 같은데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고 본다. 요즘은 재밌는 드라마도 많고. 그리고 만큼은 아니라도 지금 우리 시청률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웃음) 과의 비교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고 재밌게 찍고 있다. 동이라는 새로운 캐릭터, 그리고 숙종이나 장희빈처럼 늘 봐오던 인물들의 재해석만으로도 대본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우리가 재밌게 찍으면 시청률도 더 오르지 않을까.
사진제공. MBC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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