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꿈을 꾸지 않는다. 이건 숙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를 했어요.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었는데, 그때 제가 다른 꿈이 있었다면 이 일을 덜컥 받아들이지 않았겠죠”라고 조목조목 이유를 설명하는 백진희는 마음을 둥실둥실하게 만드는 꿈에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일 안에서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확실한 게 좋아서, 일이 결정되기 전에는 부모님께도 얘기를 안 해요”라고 말하고서 앙다물어지는 입술에는 고집이 가득하고, 쌍꺼풀 없이 둥그런 눈에는 비밀이 고여 있다. SBS 의 착한 은정이가, 소지섭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광고 속의 귀여운 소녀가 이렇게 다부진 목소리를 가졌을 줄이야.
여린 소녀도, 착한 아이도 거부하는 백진희의 당돌함 그 또렷한 음성으로, 그녀는 광고 모델을 하면서 서서히 자라난 연기에 대한 욕심을 ‘오기’로 요약한다. “짧은 광고 연기를 하면서도 제가 감독님들께 야단을 맞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진짜 배우가 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쉽사리 감상에 빠지지 않는 그녀의 영리함은 불안정한 배우 생활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반대 앞에서 연기가 아닌 연출 전공을 선택할 정도로 유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냉철하고 담백하다. “막상 대학에 가니까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요즘엔 촬영장에 계신 조명 기사님들이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고 그래요. 입학 전에는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시나리오도 쓰고 싶었는데, 그게 한 가지만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전 연기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팔랑팔랑, 하늘하늘, 혹은 사분사분과 같은 또래의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는 백진희의 따끔한 존재감을 먼저 알아 본 것은 독립영화계였다. 지난해 개봉한 저예산 영화 와 는 모두가 알면서도 보지 못하는 세상,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알려 들지 않는 세상에 렌즈를 밀착시켜 불편하게 서걱거리는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두 작품 안에서 백진희는 사납게 당돌하면서도 결국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녀를 연기했다. 의 오디션을 볼 때 감독이 모든 배우에게 똑같이 던진 “넌 착한 아이니?”라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얼굴로 “아뇨. 다른 친구들을 누르고 오디션에 뽑히려고 왔는데 제가 어떻게 착한 아이일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그녀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런 백진희에게서 흔히 만날 수 없는 순수한 자존심의 원석을 발견한 감독의 확신을 떠올리는 것은 그보다 쉬운 일이다.
자신을 지키며 성장하는 법을 터득하다 그래서 백진희는 막 촬영을 끝낸 영화 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다. “활발하고 액티브한 연기를 보여드렸으니까 이번엔 차분하고 정적인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는 사실 성장영화이자 멜로영화거든요.” 막상 카메라 앵글 안에서 움직임 없이 감정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숙제를 만난 기분이었지만 수학시간에 그랬듯 모르는 것은 묻고 또 물어서 해결하는 그녀에게 고민은 오히려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그래서 류승범을 비롯해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 은 그녀에게 “더 풍부해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죽지 않고 잘 하고 나오고 싶은” 미션이기도 하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상업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백진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러운 배우다.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들지 않아 오히려 가뿐한 그녀는 최대한의 노력과 최소한의 실망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 꿈꾸지 않는 소녀가 보는 사람을 꿈꾸게 하는 순간은 그 단단한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고 열여섯 같은 그녀의 미소가 불쑥 터져 나올 때다. “백상 신인상 후보요? 너무 신나요! 드디어 레드 카펫을 밟는 거잖아요. 연예인들도 많이 올 텐데! 키가 작으니까 드레스는 짧은걸 입을 거예요. 상은 못 탈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받으면 완전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좋을 것 같다. 사상 초유의 당당하고도 담담한 수상 소감을 듣게 된다면 말이다. 지금, 그녀는 영화계가 꾸는 꿈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여린 소녀도, 착한 아이도 거부하는 백진희의 당돌함 그 또렷한 음성으로, 그녀는 광고 모델을 하면서 서서히 자라난 연기에 대한 욕심을 ‘오기’로 요약한다. “짧은 광고 연기를 하면서도 제가 감독님들께 야단을 맞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진짜 배우가 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쉽사리 감상에 빠지지 않는 그녀의 영리함은 불안정한 배우 생활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반대 앞에서 연기가 아닌 연출 전공을 선택할 정도로 유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냉철하고 담백하다. “막상 대학에 가니까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요즘엔 촬영장에 계신 조명 기사님들이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고 그래요. 입학 전에는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시나리오도 쓰고 싶었는데, 그게 한 가지만 알아서 되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전 연기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팔랑팔랑, 하늘하늘, 혹은 사분사분과 같은 또래의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를 달가워하지 않는 백진희의 따끔한 존재감을 먼저 알아 본 것은 독립영화계였다. 지난해 개봉한 저예산 영화 와 는 모두가 알면서도 보지 못하는 세상,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알려 들지 않는 세상에 렌즈를 밀착시켜 불편하게 서걱거리는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두 작품 안에서 백진희는 사납게 당돌하면서도 결국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녀를 연기했다. 의 오디션을 볼 때 감독이 모든 배우에게 똑같이 던진 “넌 착한 아이니?”라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얼굴로 “아뇨. 다른 친구들을 누르고 오디션에 뽑히려고 왔는데 제가 어떻게 착한 아이일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그녀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런 백진희에게서 흔히 만날 수 없는 순수한 자존심의 원석을 발견한 감독의 확신을 떠올리는 것은 그보다 쉬운 일이다.
자신을 지키며 성장하는 법을 터득하다 그래서 백진희는 막 촬영을 끝낸 영화 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다. “활발하고 액티브한 연기를 보여드렸으니까 이번엔 차분하고 정적인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는 사실 성장영화이자 멜로영화거든요.” 막상 카메라 앵글 안에서 움직임 없이 감정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운 숙제를 만난 기분이었지만 수학시간에 그랬듯 모르는 것은 묻고 또 물어서 해결하는 그녀에게 고민은 오히려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그래서 류승범을 비롯해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 은 그녀에게 “더 풍부해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죽지 않고 잘 하고 나오고 싶은” 미션이기도 하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상업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백진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러운 배우다.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들지 않아 오히려 가뿐한 그녀는 최대한의 노력과 최소한의 실망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 꿈꾸지 않는 소녀가 보는 사람을 꿈꾸게 하는 순간은 그 단단한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고 열여섯 같은 그녀의 미소가 불쑥 터져 나올 때다. “백상 신인상 후보요? 너무 신나요! 드디어 레드 카펫을 밟는 거잖아요. 연예인들도 많이 올 텐데! 키가 작으니까 드레스는 짧은걸 입을 거예요. 상은 못 탈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받으면 완전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좋을 것 같다. 사상 초유의 당당하고도 담담한 수상 소감을 듣게 된다면 말이다. 지금, 그녀는 영화계가 꾸는 꿈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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