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기라는 배우가 정말 매력적인 것은 두 방향 모두에서 팬을 만족시키기는, 흔치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어느 작품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그의 연기력을 입증했다. SBS <재즈>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이후 KBS <거침없는 사랑>에서 유부남임에도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캐릭터를 절제와 격정을 넘나드는 연기로 표현해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공감케 했다. 또한 김수현 작가의 SBS <사랑과 야망>에서는 극도로 냉정하고 이기적이지만 어딘가 인간적인 장남 박태준을 또박또박한 발음과 무감각한 목소리로 완벽하게 형상화하며 원작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라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의 연극적인 연기 톤이 극도로 드라마틱한 상황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준 MBC <에덴의 동쪽>에서의 신태환 역은 그가 젊은 배우들을 제치고 드라마를 그의 아우라로 장악하도록 만들었다. MBC <선덕여왕>에서도 그는 유약한 듯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굳은 심지를 보여주는 진평왕을 연기하며 극을 안정되게 끌고 가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이 카리스마적인 연기파 배우는 드라마 바깥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감탄케 한다. 그는 MBC
“묵묵한 노 교수의 모습으로 느릿한 듯 현란한 손동작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에릭 클랩튼이 부르는 사랑 노래는 환갑을 넘긴 노인의 주책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보다는 언제 사그라질지 모를 인간이기에 사랑을 움켜잡으려는 처절한 진실을 느끼게 해주죠.” 조민기가 주저하지 않고 단숨에 고른 첫 번째 곡은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의 ‘Change the world’다. 영화 <페노메논>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이 곡은 언플러그드로 회귀한 거장의 담백하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연주와 노래가 돋보인다. “반백의 노신사가 사각 안경 너머 낮은 곳을 바라보며 ‘If’라는 단어를 써가며 사랑의 희망을 노래하고 사랑의 꿈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내가 왕이 되어 당신을 여왕으로 만들겠다는 유년시절 사랑 고백을 진지하게 노래하는 걸 들으면 역시 사랑은 지상 최대의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레게에 대해 “세상의 평화와 사랑, 평등과 희망들을 노래하며 지구상에 만연한 팽팽한 긴장과 전쟁, 갈등의 정서와 대비되어 각박한 현실의 유토피아처럼 추앙받았던” 음악이라 설명하는 그가 사랑을 이야기하며 밥 말리에 대해, 그리고 그의 흑인 인권운동을 늘 지지해준 그의 아내 리타 말리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 ‘No Woman No Cry’에 대해 언급하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평화, 사랑, 평등, 희망, 그리고 흑인의 힘과 통일을 노래하는 그의 음악은 초창기 여러 형태의 지역적 특색의 레게음악들을 모두 아우르며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레게의 시조가 되었죠.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 길을 밥 말리의 음악과 함께 걷는다면 올가을을 게으른 걸음과 함께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작품을 끝내고 훌쩍 여행 떠나는 걸 즐기는 성격답게 조민기는 자유분방한 느낌의 여가수 조니 미첼에 대해서도 애정을 드러냈다. “적당한 중저음으로 서걱서걱 긁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에 새롭게 들린 것은 일본 여행길의 한 카페에서였어요. 동경 오모테산도의 뒷골목을 산보하다가 갑자기 만난 비를 피해 들어간 반지하 카페에서 머리 위로 난 창을 통해 고인 물을 튀기며 걷는 사람들의 다리를 볼 수 있었죠.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똑같은 움직임의 감상이 끝날 때쯤, 카페 안에 조니 미첼의 ‘Urge For Going’이 울려 퍼졌죠. 눈으로 보이는 상황과 그 모습을 중계하는 듯한 제목의 노래, 그리고 그 상황들과 전혀 안 어울리는 음색의 가수의 조합은 재미있는 부조화의 조화였어요. 그 길로 바로 음반가게로 달려가 그녀의 CD를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찾은 기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직접 아프리카 오지를 찾아가 봉사 활동을 펼치는 그가 네 번째로 추천한 곡은 인권단체 ‘위트니스’를 설립해 활동하는 피터 가브리엘의 ‘Growing Up’이다. “피터 가브리엘은 가수라고만 얘기하기엔 그의 수많은 재능이 아까운 인물이에요. 그는 분명한 로커에요. 하지만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의 귀결점은 언제나 진화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철저하게 현재 진행형인 로커죠. 어떤 이들은 피터 가브리엘의 음악에 대해 록 스피릿이 변질되었다고 혹평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으로 록의 순수함을 퇴색시킨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 다양성을 좋아해요. 무대의 연극적 효과와 영상작업들, 그리고 그가 참여하는 세상의 관심사들까지. 대중은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의 제공자인 대중 예술인들은 대중들의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체되지 않고 진화해야 한다고 봐요.”
“이것만큼은 여자 성악가가 라이브로 부르는 버전으로 들어야 한다”며 그가 추천한 마지막 곡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Un Bel Di, Vedrimo’로, 흔히 ‘어느 갠 날’이라고 번역되는 곡이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남자가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는데도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여기에 다다르면 무어라고 말을 할까? 멀리서부터 틀림없이 ‘나비야’ 하고 부를 거야’라고 노래하는 나비 부인의 모습은 간혹 수동적인 동양적 여성상의 강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 애틋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비 부인이 사랑의 실패 때문에 할복하며 부르는 이별의 아리아에 더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갖고 있는 이 곡을 추천하고 싶네요.”
“자신의 명예를 진화된 능력으로 환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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