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지각이었다.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와 제 자리에 앉은 구리포터는 냉큼 노트북을 켜고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올해로 벌써 3년. 가 인터넷판 를 시작하면서 입사 했으니, 온라인에서 신문의 수명과 그의 경력은 쌍둥이 나이테처럼 성장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구리포터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막 초보 테를 벗기 시작한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부터였다. ‘덕희’라는 이름도, ‘구기자’라는 그럴듯한 호칭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소식들을 친절하게 전해주는 그의 해리포터 마법 같은 취재력을 빗대어 ‘구리포터’라는 특별한 애칭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구린내나는 루머에 달려드는 쉬파리 같은 그의 본명이 더 좋다고 놀려댄 탓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별칭에 대해 스스로 불가침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밤새 취재한 것들을 재빨리 마무리 하려는 그의 손이 선명한 형상을 그리지 못 할 정도로 분주히 자판 위를 누빈다. 그때, 데스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간밤에 뭐했어? K와 J가 사귄다잖아. <월척투데이>에서 1고 쓸 동안 뭘 한 거야?”
이런 상황에서는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다. 말없이 고개를 조아린 그를 향한 데스크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 쳐! 인터넷은 속도전인거 몰라? 질하시의 일개 지역 신문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자들의 희생이었다는 걸 몰라? 오후에 얘네 둘 기자회견 있다니까, 가서 잘 해. 기자회견 한다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결혼 발표할 것 같은데 절대 속도위반인지 확인하는 거 놓치지 말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후벼주란 말이야!”

싸이에서 생긴 일
싸이에서 생긴 일
자리로 돌아온 구리포터는 얼른 제가 쓴 기사들을 확인했다. 속상하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간밤에 그가 쓴 기사가 세 개. 아침에 보도 자료를 보고 쓴 것 까지 합하면 오늘만 벌써 여섯 개의 기사를 썼다. 심지어 자정 무렵에 쓴 기사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미니홈피 일촌 명을 분석한 심도 있는 탐사보도 ‘궁뎅이 – 쟉이. 아찔한 소년들의 애칭’이었는데, 시덥지 않은 열애설에 묻혀 버렸다. 밤새 잠을 설쳐가며 링크를 타고 또 타며 알아낸 주옥같은 팩트들이었는데 말이다. 덕분에 포털 사이트 대문에 오르지도 못하고, 그의 기사는 연예란 귀퉁이에 한 문장이 링크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찌나 억울한지 순간 구리포터의 눈에는 눈물인지 정념인지 모를 무엇이 맺히는 듯도 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구리포터의 얼굴은 그 사이 득의만만해 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매체에서 쓴 내용들을 적당히 섞어서 주변인과의 간단한 통화 내용을 덧붙인 그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비결은 ‘오빠 안돼! 팬들 오열’이라는 제목이었겠지만, 구리포터는 역시 미니홈피의 힘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사자의 배경 음악과 최근 며칠간의 다이어리에서 연애의 흔적을 찾아서 덧붙인 것이 주효 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난 참 노련하단 말이지.”
스스로 대견해진 그는 ‘이 다이어리는 K 오빠 조카 태어나던 날 그게 기쁘다는 글이잖아요’랄지 ‘인용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등등의 리플을 보며 한층 흐뭇함에 빠져 들었다. 이런 손쉽고 발 빠른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저수지의 철새들 찍을 때나 쓰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취재에 열을 올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구리포터였다.

싸이에서 생긴 일
싸이에서 생긴 일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둘이 막 사이가 나빠지려는 찰나에 기사가 터져 버려서 K가 당황해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질문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이들에게 ‘속도위반’이냐고 다그치는 열혈 기자들은 이미 기사를 대부분 작성해 둔 채 그 네 글자를 써 넣을 자리만을 비워 두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꼭 그 여백만큼의 여유만을 남겨 둔 채 이들의 진실을 향한 질주는 촌각을 다투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밤사이 잠을 설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취재와 정보수집에 열을 올린 구리포터는 그만 터지는 플래쉬와 웅성대는 소음을 벗 삼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나 한 줄의 댓글도 허투루 보지 않는 그답게, 구리포터는 꿈속에서도 신인시절 일촌을 맺어 둔 인기 개그맨 Z의 미니홈피를 샅샅이 뒤져 열애의 흔적을 찾아내느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특종과 1고를 향한 집념이 기자정신으로 타올라 그의 정신 속에 인두질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J가 무엇 때문인지 눈물을 훔쳤고, 이때를 놓칠 새라 카메라 플래쉬가 번개처럼 번쩍이자 구리포터는 자연 정신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포털 사이트 연예 뉴스란을 클릭한 그는 작은 한숨은 내 쉬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누군가 ‘K-J 열애에 네티즌 응원 리플 만발’이라는 기사를 써 버린 것이었다.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 온 구리포터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오늘의 수훈은 ‘아찔한 뒷모습, 여심 설레나’라는 제목을 달아 넘어지려는 K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기자였으니 더더욱 입을 다물어야 할 일이었다. 균형을 잡으려 엉덩이를 야무지게 뒤로 뺀 모습이라니. 차분히 유명 게시판들을 순회하며 ‘연기력 논란’, ‘안무 표절 의혹’ 등 여론을 수렴한 기사 몇 개를 쓴 구리포터는 지친 손가락으로 마지막 게시물을 클릭 했다가 번쩍 눈이 뜨였다.
‘왕따 설 시달리던 아나운서 G, 며칠째 미니홈피 방치. 잠적 의혹’
노련하고 침착한 구리포터는 사실 확인을 위해 G의 미니홈피에 접속 했다. 주도면밀하게 다이어리와 배경 음악을 훑고 대문 인사 글 히스토리를 확인하는 그의 손길은 흡사 현장의 증거를 수집하는 법의학자와 같았다. 별다른 징후를 찾지 못한 그는 좀 더 많은 루머가 떠도는 다른 게시판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이 옮겨져 있었고, 그 리플 중에는 방명록의 Z라는 이름을 의심하는 글이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좀 전의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일종의 계시였던 것일까.
‘넌 너무 멋져. 눈이 부셔. 그래서 난 숨을 못 쉬겠어, g. g 베이비. 난 이제 어떡하지. 너 밖에 모르는 난 바보야. 바보!’
방명록을 쓴 Z의 이름을 클릭하자 역시나 눈에 익은 개그맨 Z의 미니홈피가 팝업 한다. 제대로 작성된 게시물이 없어 일촌이 아니고서는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운 그의 안식처. 그러나 그는 미니룸에 있는 여자 아바타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바타가 다시 G의 미니홈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싸이에서 생긴 일
싸이에서 생긴 일
오늘도 야근이다. 아니, 네임 벨류가 있는 기자가 되고 부터는 거의 매일이 그랬다. 이번 주에만 해도 벌써 ‘기사 제목만 보고도 넌 줄 알았다’는 내용의 메일을 여러 통 받았다. 대부분 연예인들의 팬들이 보내는 항의성 메일이지만 구리포터는 그것이야말로 언론인으로서의 영광의 상처라 생각할 따름이다. 진실을 밝히는 횃불을 든 손이 타들어 가는 화상의 흉터라고나 할까.

오늘부터 새로 방송되는 드라마의 게시판을 주시하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간단한 안부를 묻던 친구는 말미에 문득 그에게 그런 쪽지를 보냈다.
‘좋은 기사를 써라’
구리포터는 척추로부터 사명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잠자리마냥 복안을 가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꺼번에 수십 개의 미니홈피를 관찰 할 수만 있다면. 게시판에 올라오는 그 모든 작은 소문과 의혹을 빠짐없이 기사화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걸리지 않는 열애설이 없고, 알려지지 않은 욕설 논란이 없고, 관심 받지 않는 자살 의혹이 없다면, 그렇게 투명한 연예계가 된다면 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직업병처럼 손목이 쑤셔왔다. 아무래도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낼 것이고, 그럴수록 그는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사를 쓰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은 모니터를 사야지.’

구리포터는 뼛속까지 기자로서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고, 붐비던 게시판들은 서서히 루머 보따리를 풀어 놓는 정예 새벽반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친구가 연이어 보낸 쪽지에는 ‘오죽 니가 게시판 베껴대고, 연예인 미니홈피 바뀐 걸로 기사 쓰고 그랬으면 사람들이 너를 리포터라고 부르겠냐. 리포터 언니들도 발로 뛰고 몸으로 취재한다는 점에서 너 보다 낫겠다더라. 어디 가서 나랑 과동기라고 하지 마라. 엉?’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이제 그에게 그런 날 선 문장들은 먼 이국의 언어일 뿐이었다. 다시, 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_그루브모기(www.groovemogi.com)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