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4대 왕 진흥왕(이순재)이 산등성이에 올라 천하를 주유한다. 백제의 자객들이 그를 노리고 달려들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차례로 스러진다. 투구를 벗고 땀에 젖은 얼굴 아래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드리우는 전사는 바로 미실(고현정)이다. 25일 오후 기자시사회에서 먼저 공개된 MBC <선덕여왕> 1회는 이후 70분간 종횡무진하며 천하를 손에 넣은 미실의 활약상을 담았다.

여왕보다 먼저 등장할 대단한 적수, 미실

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자 뛰어난 전사이며 비범한 지략가인 미실은 진흥왕의 서거를 틈타 풍월주 설원랑(전노민)을 움직여 훗날 진지왕이 되는 금륜 왕자(임호)와 정을 통해 왕후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또한 진지왕이 자신을 배신하자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비담을 버리고 화랑과 화백회의를 움직여 그를 왕위에서 몰아낸다. 진흥왕의 말대로 “사람을 가진 자가 천하를 갖고 시대의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욕망에 충실하고 거칠 것 없이 사람을 쓰고 버리는 미실은 가히 절대 권력으로 자리 잡는다. 훗날 미실의 적수가 될, 그리고 <선덕여왕>의 주인공인 덕만 공주는 2회에서야 탄생하기에 1회의 주인은 아직 미실이고,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고현정은 농염하면서도 냉혹하기가 독기 어린 꽃 같은 미실의 카리스마를 섬뜩할 만큼 잘 보여준다. 화려한 제천행사와 화랑들의 축제인 낭천제, 화랑들이 결전을 앞두고 죽기를 각오했을 때 얼굴에 화장을 하는 ‘낭장결의’ 등 독특한 볼거리들 역시 눈길을 끈다. 특히 572년부터 602년 사이 신라의 역사적 상황들을 압축해서 재구성한 1, 2회는 이렇듯 빠른 전개와 긴박한 사건들로 눈길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한편, <선덕여왕> 1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MBC <뉴스 데스크> 특집 편성 관계로 오늘 밤 10시 30분 첫 방송된다.

각각 MBC <대장금>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알려진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MBC <히트>, KBS <최강칠우>에 이어 <선덕여왕>에서도 손을 잡았다. “어느 대사를 내가 썼다는 건 알지만 그 대사가 누구 아이디어에서 나온 건지는 헷갈릴 정도”로 집필을 제외한 기획과 아이디어 회의 등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두 작가에게 <선덕여왕>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지난해부터 KBS <천추태후>나 SBS <자명고> 등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들이 등장했지만 현재까지 썩 좋은 성적은 아닌데, <선덕여왕>의 이들과의 차별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박상연:
사실 그 작품들과의 차별점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것보다 <선덕여왕>에는 미실이 있다. 우리 작품에서 미실은 나 <타워링> 같은 영화의 산이나 불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우리의 덕만’의 장애이자 목표이며 덕만이 그를 넘어야만 선덕여왕이 되는 이야기인 거다. 그래서 미실이라는 인물에게 다른 사극에서 보기 힘든 강력한 악역의 캐릭터로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그 대단한 상대를 넘었을 때 덕만을 인정하지 않기는 힘들 것 같다.

“아역 덕만이 고현정 씨보다 더 연기를 잘 할 것 같다”

대중성을 생각한다면 사극에서는 초반부터 시청자가 몰입할 대상이 필요한데 1회는 미실에게 포인트가 맞춰져 있고 덕만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구도에서 나중에 미실이 악역이 되면 무리한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김영현:
사실 1, 2부를 쓸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시청자가 완벽하게 몰입할 주인공, 흔히 ‘우리 편’ 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드러나야 하는데 기획 의도에 맞춰 미실이라는 적을 먼저 구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은 약화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냥 우리가 새롭게 가 보자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2회부터 주인공 덕만이 탄생하고 아역 덕만이 2~4회에서 고현정 씨보다 더 연기를 잘 할 것 같으니까.
박상연: 위험한 발언이다. (웃음)
김영현: 하하, 남지현 양이 아역 덕만을 연기하는데 정말 풍부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박상연: 남지현 양이 오디션에서 대본 읽는 걸 듣다가 우리가 울 뻔 했다. 편집본을 봤는데 아직 중학교 2학년이지만 정말 좋은 배우다. 하지만, 아직 고현정 씨한테는 안 된다. (웃음)

작가들이 그렸던 미실의 이미지와 고현정의 연기는 얼마나 부합하나.
김영현:
아주 만족스럽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나는 연기나 연출에 대해 내가 원하는 상을 100% 그려놓지 않는다. 나 역시 시청자로서 즐기면서 볼 때 내가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나오면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임팩트를 받는다.
박상연: 예전부터도 그랬고 <히트>에서도 고현정 씨의 연기를 정말 좋아했다. 사실 TV 드라마의 매력은 우리가 여기까지 만들어 놓은 미실을 두고 연출가와 배우가 그 이상의 미실을 만들어낸다는 거다. 오늘 1회를 보고 나니까 앞으로 미실에 대해 또 어떤 것들을 더 그릴 수 있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김유신과 선덕여왕의 러브라인도 등장한다. 무리한 설정일 수도 있고 역사적인 고증의 문제도 있을 텐데.
김영현:
당시 여왕은 공식적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는 걸로 되어 있었고, 덕만이 누구와 사랑했다는 기록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당시 신라 왕실 여인들은 전부 사신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남편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선덕여왕 역시 여러 사신들을 거느린 것으로 나오는데, 공식적인 결혼 등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멜로는 좀 더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왕실 여인들과 화랑의 관계도 있었기 때문에 아주 무리한 설정은 아니라고 본다. 또 하나는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의 관계다. 김유신이 누이 문희가 김춘추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문희를 불태워 죽이려고 하는데 그 연기를 본 선덕여왕이 무슨 일인지 묻고 아이 아버지가 김춘추라는 걸 알자 그를 보내 사태를 중단시키고 둘을 결혼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나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다루는 데서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꽃미남 10화랑, 유승호와 김남길이 시청률 비밀병기”

남성 캐릭터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김유신이다. 뛰어난 무장이라는 역사적 사실 외에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었나.
박상연:
김유신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에 이어 위인 서열 3위, 장군 서열 2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 많은 고민과 조사를 했는데, 그러면서 느낀 건 그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는 거지만 정작 드라마 안에서의 성격을 그렇게 가져가지는 않았다. <선덕여왕>에 등장할 때의 김유신은 아직 너무 촌티 나는 화랑이고, 정치나 술수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속에는 큰 뜻을 품고 있고 우직한 걸음으로 진중한 길을 가지만 초반에는 ‘과연 김유신이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별 것 아닌 존재로 등장한다. 그런 김유신이 성장해서 나중에 우리가 다들 알고 있는 무적의 군신이 되는 과정도 재미있을 거다.
또 덕만과 김유신이 그들 사이에 구축했던 신뢰를 수없이 많이 시험당하고 끊임없이 모함당하면서도 왕과 신하로서의 관계를 끝까지 가져가는 이야기 역시 드라마의 중요한 축이 될 것 같다.

그 밖에 눈여겨 봐야 할 남성 캐릭터가 더 있다면 미리 알려 달라.
김영현:
<선덕여왕>에 나오는 남자들은 비담과 김춘추처럼 스스로 왕이 되려는 자들도 있지만 설원랑, 세종, 김유신처럼 왕이 될 사람을 찾거나 그를 보좌해서 왕을 만들려는 캐릭터도 있다. 그래서 남자들의 캐릭터 역시 책사와 2인자가 많다.
박상연: 제작진 노트에도 썼지만 두 명의 비밀병기가 있다. 김춘추(유승호)와 미실의 버려진 아들, 훗날 ‘비담의 난’을 일으키는 비담(김남길)이다. 초반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이 등장하는 지점이 전체 50부작을 아우르는 큰 이야기에서 중요한 구심점이 될 것 같다. 쉽게 얘기하면 그 때 시청률이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가 있다는 거다. (웃음) 아, 굉장히 예쁜 화랑도 많이 나온다. 역사에는 없지만 우리가 ‘서라벌 10화랑’이라는 설정을 해서 신라의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화랑들 열 명을 뽑았다.

김영현 작가의 <대장금>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엄청난 반응을 얻었는데 <선덕여왕>에 대한 기대는 어떤가.
김영현:
시청률은,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떨 것 같은가. (웃음) 해외 반응은, 박 작가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징기스칸 같은 대제가 아니라 작은 나라 왕의 이야기니까 <대장금> 만큼은 안 될 것 같단다. 하지만 일단 국내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봐 주시면 좋겠다. 특히 연기자들의 호흡이 좋은 것 같아 거기서 시너지가 발휘될 것 같다. 드라마라는 게 의외의 부분에서 반응을 얻고 화제가 되기도 하니까,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시너지가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사진제공_ MBC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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