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2분기 TBS 일요극장 <나의 여동생>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나의 여동생>은 방영 전 <돌아온 시효경찰> 이후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오다기리 죠와 인기는 물론 연기력까지 인정받는 청춘 스타 나가사와 마사미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밝혀진 시놉시스는 머리는 좋지만 다소 어리 바리 한 데가 있는 오빠 오다기리와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지만 생활력 하나는 최고인 여동생 나가사와라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나의 여동생>은 상반된 성격의 남매가 아웅 다웅 다투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가족 드라마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본 <나의 여동생>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나의 여동생>에 대한 시청자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융통성 없는 의사 오빠와 대책없는 여동생

에가미 메이(오다기리 죠)는 대학병원의 외과의사다. 수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출세 의욕은 그다지 없다. 하지만 출세 경쟁이 극심한 대학병원에서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에가미는 주위의 질투를 살 수 밖에 없다. 에가미는 바쁜 병원 생활에 더해 주위의 은근히 이지메에 지쳐 있다. 그런 에가미에게 또 하나의 걱정거리는 여동생인 사야(나가사와 마사미)다. 사야는 에가미와 달리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재능이 없었다. 생활 태도 역시 에가미와 정반대다. 학교는 물론 병원도 결근한 적이 없는 에가미와 달리 사야는 툭하면 무단 결근에 방세까지 밀린 채 잠적하기 일쑤다. 게다가 요즘은 캬바쿠라(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에가미로서는 사야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의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다. 비록 ‘기적적인 바보’라고 불릴 정도로 공부는 못 했지만 계산이 빠르고 생활력이 강한 사야는 서른 살까지 1억 엔을 모으는 것이 꿈이다.

이렇게 닮은 데라곤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혈육이라곤 오직 서로뿐인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고, 마을 의사였던 아버지 역시 과로로 세상을 뜬 후 에가미와 사야는 친척집에서 자랐다. <나의 여동생>은 큰 틀은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성격 때문에 늘 다투지만 언제나 서로를 걱정하는 유일한 가족인 에가미와 사야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둘의 성격 차이를 드러내 갈등을 만들고 화해로 이끄는 사건들이 끼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여동생>에서 그려내는 그 사건의 무게감은 예상 범위를 훨씬 웃도는 것이었고 이는 시청자들을 당혹시켰다.

가족 간의 갈등을 뛰어넘는 어둠의 포스

처음 에가미와 사야 사이에 끼어든 사건은 소소한 것이었다. 사야는 오빠에게 결혼할 사람이라며 변호사인 세가와(타나카 테츠지)를 소개한다. 스스로도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는 주제에 남자 보는 눈이 없는 여동생을 걱정하던 에가미는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가와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사야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모와 가족의 정이 그리워서 라고는 해도 불륜을 저지르는 동생과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오빠의 갈등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지만 뒤이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사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사건은 에가미에게서 시작되었다. 에가미는 자전거 충돌 사고로 키리하라 사토코(토모사카 리에)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사고 당시 입힌 손해 때문에 에가미는 키리하라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키리하라가 고작 몇 번 만난 사이일 뿐인 에가미에게 위독한 아버지를 위해 거금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에가미는 사야에게 빌려서까지 키리하라에게 돈을 건네려 한다. 하지만 사야는 세가와를 통해 키리하라를 조사하고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 결국 에가미도 키리하라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고 돈을 주려고 만난 건물 옥상에서 그냥 돌아 나오는데 그 직후 키리하라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이 사건으로 에가미는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지만 그에게 혐의는 없다. 하지만 키리하라의 애인이었던 쿠키(치하라 주니어)는 에가미를 범인으로 오해한다. 쿠키는 에가미의 주위를 맴돌며 살인자라고 압박하고 여기에 사야까지 얽혀 들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쿠키와 키리하라의 불우한 과거와 하수 배관공으로 일하는 쿠키가 의사인 에가미로 대표되는 지상의 도시인들에게 느끼는 분노가 <나의 여동생>을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이 된다.

바로 이점이 <나의 여동생>이 편하게 웃으며 보는 가족 드라마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나의 여동생>의 이런 사회 비판적인 태도는 드라마의 주제 의식이 될 만큼 명확하지 않고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라는 또 다른 주제와의 관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이제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이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엮어갈 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 애매한 태도 때문에 <나의 여동생>은 초반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아두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여동생>은 지켜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일본 드라마들과 달리 처음부터 명확하게 장르적 정체성을 밝히고 거침없이 나아가지는 않기에 <나의 여동생>은 한 회, 한 회가 아닌 한 시리즈 전체로 보았을 때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글. 김희주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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