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MP3 플레이어의 용량은 8기가. 사거나 빌린 CD가 백장도 넘게 들어있지만, 정작 늘 듣는 앨범은 정해져 있다. 새해에 가장 많이 플레이 한 앨범은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 소속인 검정치마의 <201>과 파블로프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다. 뉴욕 출신의 조휴일이 미국에서 다듬어 왔다는 검정치마의 음악을 듣노라면 “왜이래, 아마추어 같이” 따위의 말은 정말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세련됨에 놀라게 된다. 게다가 과하게 몽환적이거나, 맥락 없이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가사들은 구간반복을 해서라도 꼭 알아듣고야 말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 그런가 하면 동방신기보다 조금 어린 87년생들이 뭉쳐서 만들었다는 파블로프의 앨범은 단숨에 수록된 다섯 곡을 다 듣고 나면 오랜 체증이 쑥 내려 갈만큼 통쾌하기 그지없다. 리버틴스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어느새 배철수의 힘찬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은 심지어 노래 제목을 ‘얄개들’이라고 지을 만큼 한국형 감성으로 충만하다.

아, 이런 설명은 사실 다 쓸데없다. 검정치마와 파블로프를 지하철 및 공공장소에서 듣다가 너무 흥겨워서 덩실덩실 봉산 탈춤을 출 뻔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공연장으로 달려가 내일 할 일은 다 잊고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을 박박 긁어 하얗게 불태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불행히 파블로프는 젊은 멤버들의 군 입대 문제로 당분간 공연 일정이 불투명 하지만 검정치마는 2월 중에 다양한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특히 보드카 레인과의 조인트 공연이나, (역시 루비살롱 소속인)갤럭시 익스프레스 콘서트의 게스트 공연은 몹시 탐나는 무대다. 혹시 공연에 가시는 분들은 북청사자처럼 머리를 흔들어 재끼는 흉악한 여기자를 보더라도… 부디 아는 척은 말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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