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성은 아이돌이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현존하는 최장수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메인 보컬이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의 3번째 앨범 Side Ⅱ인 가 발매된 날, 그의 팬페이지에선 한 네티즌이 우리 오빠의 새 앨범을 너무 안 보이는 곳에 진열해놨다며 자신이 사는 전주의 음반 매장을 성토한다. 부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이 역시 서운한 마음을 리플로 남기고, 일산 사는 누군가는 아마 매장 문을 열자마자 가서 그랬으리라 다독여준다. 그들에게 신혜성은 ‘우리 오빠’고, 오빠의 앨범은 발매일에 맞춰 매장 문을 열자마자 가서 사야 한다. 이곳에선 신혜성이 신화로 데뷔했던 90년대 말 아이돌과 팬이 소통하는 방식이 11년의 시간을 넘어 그대로 재현된다. 하나의 소통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1년 동안 주목 받을 수 있었던 동력

음반 시장이 무너진 시대에 신혜성이 아직까지도 기본 10곡은 꼭꼭 채워 넣은 정규 앨범을 고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새 앨범을 내면 그날을 기다렸다가 타이틀곡에 상관없이 사고, 열 곡 넘는 앨범 전체를 다 들어보는 재미”를 아는 세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현재와 같은 불황 속에서 꾸준히 3집까지, 심지어 하나는 더블 앨범으로 기획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자신처럼 앨범 듣는 재미를 아는 세대이자 그것을 함께 공유하며 같이 나이 먹어가는 팬이 있다. 물론 신화 시절의 팬들은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준다. 다른 게 있다면 신혜성과 그의 팬들의 경우 애정의 방식마저 변함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를 갖는다면 단순히 아직도 이 방식이 유지돼서가 아니다. 아직도 이 방식이 주목할 만한 성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신혜성의 새 앨범 가 흥미로운 건 기획형 아이돌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찾은 실력 있는 발라드 보컬리스트가 시도한 음악적 결과물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누적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타이틀곡인 ‘왜 전화했어…’는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신혜성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주목할 만한 건 그의 목소리가 건반, 어쿠스틱 기타, 현악 반주의 조화를 깨지 않으면서도 명료하게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작이자 의 더블 앨범인 에서의 작업 경험이 만든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이자 유러피언 메탈을 연상시키는 기타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던 ‘Awaken’은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헤비한 기타 리프 때문에 보컬이 짓눌리며 멜로디가 시원하게 터져주질 못했다. 이런 난점을 극복하는 과정과 당시 타이틀곡인 ‘그대라서’ 믹싱을 8번이나 하며 악기들의 버라이어티한 느낌과 보컬의 조화를 고민한 경험은 그가 자신의 목소리 뿐 아니라 소리 자체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는 서정적이되 보컬의 멜로디 라인 위주였던 솔로 1, 2집과 가 정반합을 이룬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1, 2집의 노선을 이탈한 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여태 해온 걸 다 알고 있고, 그래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지” 신혜성도 궁금해 했던 ‘그’ 팬들이 “이런 시도들이 앞으로 음악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좋다”고 호응해주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팬들의 격려가 힘이 된다는 조금 낯 뜨거운 수사는 적어도 그의 경우에 있어선 진실이다.

신혜성의 가장 모호한 페이지에 끼워진 나뭇잎

그래서 신혜성은 아이돌인 동시에 아이돌 팬덤 너머에서도 충분히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가수다. 그는 여전한 구매력과 오빠의 음악에 대한 믿음을 가진 아이돌 팬덤의 지원 사격 속에서 안정적으로 앨범을 내면서 음악적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었고 그런 성장은 다음 결과물에 고스란히 누적되며 음악 자체의 질을 높였다. 아이돌 팬덤을 기반으로 활동했지만 그 덕에 만듦새 좋은 발라드로 팬덤 바깥에 있는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된다는 재밌는 역설. 때문에 그의 활동은 아이돌 출신이 전진이나 에릭처럼 예능이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도 오빠의 위상을 유지하며 자립하는 흥미로운 사례인 동시에 “그룹 활동 시절부터 자기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던 아이돌이 한 사람의 가수이자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모범적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적인 면 때문에 의 주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신혜성이 만들어낼 음악적 결과물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승철이나 신승훈, 이승환 선배처럼 수많은 대중의 신뢰를 받는” 장기적 목표를 가진 그에게 이번 앨범은 “다음 앨범이 잘 되어야 터닝 포인트로 기억할 수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서있는 지점은 챕터와 챕터 사이 가장 모호한 페이지에 끼워진 나뭇잎(Keep Leaves)과도 같다. 음악적 발전과 팬의 확장이라는 순풍을 타고 여태 확실히 앞 페이지를 향해 갔던 그 나뭇잎은 과연 다음에는 어떤 페이지에 안착할 수 있을까. 다만 확실한 건 이젠 지금껏 우리 오빠와 함께해 온 팬들만이 그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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