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곽경택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곽경택 감독./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친구’(2001) ‘똥개’(2003) ‘극비수사’(2015)의 곽경택 감독이 신작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로 관객을 마주한다. 김태훈 감독과 공동 연출한 ‘장사리’는 6.25 전쟁 중 기울어진 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동해안에서 양동작전으로 전개된 장사상륙작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북한군을 교란하기 위해 펼쳐진 기밀작전에는 2주간의 짧은 훈련을 거친 평균 나이 17세의 어린 학도병 772명이 참여했다. 학도병을 이끄는 리더 이명준 대위(김명민 분)와 학도병 최성필(최민호 분), 기하륜(김성철 분), 이개태(이재욱 분), 국만득(장지건 분), 문종녀(이호정 분)가 극의 중심축이다. 오는 25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곽경택 감독을 만났다.

10. 이번 작품도 실화가 모티브다. 실화에 유독 끌리는 이유를 꼽자면?

곽경택: 우선 단단한 베이스를 갖고 있지 않나? 예를 들면 건물도 토대가 튼튼하면 위에 어떤 것을 올려도 튼튼하다. 그런 것처럼 이야기를 꾸미다 보면 실화가 기초면 거기서 내가 어떻게 뛰어놀아도 그 근간이 단단한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분명 반영되었을 것 같고.

10. 각색을 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곽경택: 일단 이 학생들을 데리고 갔던 사람과 그 결정이 이루어진 과정이 있을 텐데…. 그것부터 추적을 하기 시작했다. 왜 누가 보냈을까, 누구의 명령으로?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이 이명흠이라는 대위다. 평안북도 신의주 분이고, 크리스천이다. 남북이 민주화와 공산화 진영으로 나눠지면서 공산화를 못 견디고 남하한 두 부류가 지주 계급과 종교인들인데, 이분 역시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졸업을 하고 정보 계통 일을 했던, 실제로 전투 병력은 아니었던 분이다.

10. 영화에서도 살짝 언급되었다.

곽경택: 맞다. 이분이 전쟁이 나고, 북한 포로를 잡아서 취조하다 보니까 유격대가 많은 것이다. 유격대라고 하면 정규군하고는 다르게 소규모의 별동대처럼 구성된, 치고 빠지는 기동성 있는 작전을 펼치는 부대다. 우리 군에도 유격대가 있어야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래서 이분이 정규 병력을 못 뽑으니까 대구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훈련시켜서 유격대원으로 하려고 했는데 (군에서)갑자기 배 타고 가서 점령하고 오라는 것이다. 아직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그런 인물이 분명히 있으니 우선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만들고, 각자의 사연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 다음 축으로 인물을 구성하고, 그 다음에 기간병, 선장과 선원에 대한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0. 많은 이가 등장하는 작품이기에 인물 안배가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했다. 학도병에게 집중한 선택이 좋았다.

곽경택: 다행이다. 뭐라고 할까봐 쫄아 있었다. (웃음) (김)명민 씨가 양보를 많이 해줬다. 그래서 되게 고맙고, 미안하고….

10. 러닝타임이 104분이다. 전쟁 영화치고는 짧은 편이 아닌가?

곽경택: 맞다.

10. 그래서인지 극 초반부터 강렬한 장면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곽경택: 관객이랑 학도병이랑 똑같이 너무너무 당황스러운, 정신없는 상황에 빨리 놓고 싶었다. (장사상륙작전)유격동지회 회장님이 “우리 뭐, 멋도 모르고 갔지. 배 타라 그라드만 좀 있다 다시 내리라 하드만. 또 다시 타라 하고. 탔는데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가다가 나중에 어디 간다고 하드라고. 그래 가꼬 문 열리니까 비바람 몰아치고, 총알 날아오고. 거기까지 가는데 물에 빠져 죽은 애들이 더 많아”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느낌이 딱 혼돈이었다. 그것을 제일 먼저 표현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스틸컷./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스틸컷./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지금까지 작품들을 훑어보면, 남성미가 울끈불끈한 캐릭터가 많았다. 그래서 당신의 작품에 출연한 남자 배우들은 마치 군대라도 다녀온 것처럼 출연 이후에 남성미가 덧입혀진다.

곽경택: 내가 머리도 잘 깎인다. (웃음)

10. ‘장사리’를 보면서 사울 딥 감독의 ‘저니스 엔드’(2017)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전쟁이라는 생지옥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견디는 앳된 군인이 등장하는데 ‘장사리’의 학도병들과 겹쳐졌다. 긴 인생에서 채 타오르지도 못하고 스러진 학도병들의 모습이 내내 따라붙더라.

곽경택: 여러 명을 한 영화에서 균형 있게 끌고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개태의 꿈 장면은 편집을 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되게 속상하다. 내가 좀 더 밀어붙여서 끝까지 유지했어야 할 장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태가 망보다가 뒤에서 누가 막 불러서 보니까 자기 동생들이 피 흘리며 헐떡거리고 있는 것이다. “형님아, 네가 막 사람을 죽이니까 우리가 벌 받는다 아이가.” 그러니까 개태가 “안 그라면 우짜노. 내가 죽는데.” “엄마가 니 빨리 집에 오랜다.” 그리고 개태가 잠에서 깼더니 북한군이 오고, 뛰어가는 시퀀스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장면을 너무 괴기스럽게 찍은 것이다. 편집으로 붙여 봤더니 결이 확 다르더라. 결국 들어냈다. 그래서 지금도 개태하고 눈 마주칠까봐….(웃음)

10. 학도병들 중에서 개태 역을 맡은 이재욱 배우의 눈빛이 참 좋던데.

곽경택: 그렇죠?

10. 당신의 영화에서는 익숙한, 야성이 넘치는 눈빛이 아닌가?

곽경택: 그 친구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우와, 이렇게 생긴 애가 다 있지’ 했다. 웃는데 잇몸이 확 보이는 거다. 그 친구는 나한테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내가 사정을 했다. 꼭 좀 출연을 해 달라. 당신 잇몸 죽인다.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꼭 그렇게 웃어라. 내가 실제로 현장에서 무전기로 “잇몸! 잇몸!”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필요했다. 포수의 아들이면 산에서 살았던 놈이다. 그렇다면 순박한 얼굴이어야 된다.

10. 북한군 쪽의 학도병이라고 할 수 있는 최재필 역의 김민규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학도병, 즉 소년의 느낌이 제일 묻어났다. 짧은 등장에도 긴 여운이 남더라.

곽경택: 민규는 대성할 것이다. 내가 감히 예언한다. 왜냐하면 마스크도 좋고, 그냥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선하게 잘생긴 얼굴이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태도가 너무 좋았다. 그런 성실함이 화면 속에도 묻어나오는 것 같다.

10. 할리우드 배우인 메건 폭스가 종군 기자 매기 역으로 출연한 게 화제였다. 현장에서는 어떠했는지?

곽경택: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다. 메건 폭스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역할을 안 해 본, 우리나라 배우도 아닌 사람한테 단 며칠 만에 그 역할을 하게끔 끌어내야 되니까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차라리 무명이어도 딱 봐도 전쟁터를 뛰어다닐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이 됐으면 했다. 이 영화의 마케팅을 책임져야 하는 대표님 입장에서는 메건 양이 한다고만 하면 나중에 영화를 풀 때 그 이점을 생각해서 안 받을 수 없는 카드였다. 메건 양이 결국 하기로 하고 왔다. 나도 낯설고, 그분도 낯설고. 그래서 하다가 한 세 번째 촬영 정도부터는 내가 뭔가를 진하게 요구했다. 메건 양이 “오케이” 했다. 그래서 주문이 자꾸 많이 들어갔다. 열심히 하더라.

10.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매기의 감정에 몰입이 잘 되었다. 서사적으로는 아쉬운 지점도 있었다. 매기를 포함한 미군 쪽의 이야기가 전체 서사에 착 붙지는 않았다.

곽경택: 사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반드시 육군 본부와 현장을 연결시켜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설정해서라도 있어야 되는 역할이었다. 내가 본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임춘봉(동방우 분)이라는, 무사안일하게 준비를 안 하고 있던 당시 국방부에 대한 질책을 그 인물을 통해서 담고 싶었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곽경택 감독은 “실화가 모티브인 작품은 근간이 단단해서 끌린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의 곽경택 감독은 “실화가 모티브인 작품은 근간이 단단해서 끌린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0. 첫 전쟁 영화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곽경택: 사고 날 확률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그걸 버티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배우들하고 같이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안전사고가 제일 문제였기 때문에 항상 챙겨야 했다. 촬영 끝나도 족발 사다가 숙소에서 혼술 하고 잤다. 먹고 바로 뻗었다. (웃음) 그렇게 나 스스로를 안정적으로 컨트롤해야 되는 것이 좀 힘들더라.

10. 큰 사고 없이 촬영이 마무리됐나?

곽경택: 마지막 해안가 후퇴 장면이었다. 최민호 군의 얼굴에 파편이 튀었다. 철렁했다. 응급 요원이 와서 급하게 처치하고, 병원에 보냈다. 그런데 민호가 치료를 받고 현장에 다시 온 것이다. 나머지를 찍겠다면서. 보니까 얼굴이 이만큼 부었는데도…. 그래서 찍었다. 그리고 서울 병원으로 올려 보냈다. (민호가)병원에 갔더니 미세한 파편들이 다 파고 들어갔다더라. 파편을 미세 나이프로 절개해서 다 뽑아냈다고. 너무너무 미안했다.

10. 큰 부상에도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배우라니 마음가짐이 대단하다.

곽경택: 민호랑 재필이로 나온 민규랑 둘 다 자세가 너무 좋았다. 둘 다 되게 이뻐했다.

10. 공동 연출인 김태훈 감독과는 어떻게 역할 분담을 했는지?

곽경택: 일단 전력을 보면 나보다 비주얼에 강한 사람이다. CG 회사 대표도 했고. 그리고 이 영화는 CG가 없으면 완성이 안 되는 영화다. CG가 결합한 부분, 특히 비주얼적으로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한 부분은 김태훈 감독이 했다. 나는 주로 인물들 간의 드라마, 액션 중에서도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액션들, 예를 들면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죽어가는 장면 등을 했다. 일단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왔다고 생각될 때, 둘이 나란히 앉아서 시나리오에 색깔을 칠하기 시작했다. 내가 찍을 분량은 까만색, 김태훈 감독이 찍을 분량은 파란색으로. (웃음)

10. 앞으로도 공동 연출에 대해서 긍정적인가?

곽경택: 유닛을 쓸 수는 있을 것도 같다. 이번에는 내가 승선도 늦었고, 김태훈 감독이 워낙 앞에 해놓은 일들이 많아서 공동감독 타이틀이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 찍으면서 또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준비해 갈 텐데, 대신 그럴 때는 미국처럼 B유닛, C유닛을 가동하는 것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제작물, 방송물은 지금 유닛 활용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효율적이기도 하고.

10. 혹 시대극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

곽경택: 하고 싶다. 제일 해보고 싶은 시절은 1940년대,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그야말로 혼란의 격동기다. 그때는 진짜 총 들고 다니고, 달리는 짚차에서 쏘고 숨고 난리도 아니었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그때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10. ‘똥개’의 계란 프라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요즘도 프라이를 먹을 때마다 영화가 생각날 만큼. ‘똥개’를 보기 전까지 프라이는 1인 1개라고만 생각했기에 더더욱. (웃음) 개인적 바람이지만 ‘똥개’ 같은 영화로 다시 마주하고 싶다.

곽경택: (웃음) 진짜 감사드린다. 나도 ‘똥개’ 같은 영화를 진짜 좋아한다.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동네 오밀조밀한 캐릭터들의 약간 유머러스한, 정감 넘치는 이야기. 이런 것을 하고 싶은데 투자가 잘 안 된다. 주연배우도 잘 안 꼬이고.

10. 끝으로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곽경택: 시나리오 각색 중인 것이 하나 있다. 소방관들 이야기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